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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eammeow Mar 08. 2022

불안장애 인지행동치료(CBT) 2주 차 in 영국

Past or Present? 과거 아니면 현재?

2주 차 상담





1시간 정도의 상담. 매주 월요일 오전 9시에서 10시까지 치료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상담 전에는 질문지를 메시지로 전달받고, 심리와 관련된 질문지를 매주 상담 전 제출해야 한다.

그 답변을 바탕으로 내 상태를 그래프 화해서 보신다고 한다.


남편 말고 영어로 이야기할 때 편안함이 드는 사람이 없었는데, 조금씩 치료사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게 편해지는 거 같다. 내 문제는 나 스스로가 악순환의 꼬리에 갇힌 거 같은, 그런 문제라고 스스로 생각해오고 있었다. 이런 악순환의 갇힌 건, 어린 시절의 학대들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1. 늘 계획을 짜고 실행하던 사람이었다. 최악의 시나리오 몇백까지도 생각하고 어떻게 대처할지 늘 생각해 왔다. 미래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그게 너무 불안해서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불안함을 멈출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상상하는 과정 자체가 나 자신에게 이미 굉장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2. 현재 어떤 것들이 불안한지 물어보셨다. 현재 불안한 것들은 일하면서 실수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내가 영어를 했을 때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그에 대한 불안감, 내가 남들에게 멍청해 보이는 것에 대한 불안감... 굉장히 랜덤하고 많은 것들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걱정을 한다. 오늘은 오전 7시에 깼는데, 불안해서 깼다. 이유는 알 수 없음.


3. 내가 지금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어야 하는 것을 아는데 (주로 자기 발전 관련), 이런 온갖 걱정들 때문에 그러질 못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면서 더 불안해진다. 내가 뒤처지는 사람이 된 거 같다.




치료사 선생님은 첫날 들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과거 어린 시절과의 연관성을 제시하였다. 나도 그런 거 같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PTSD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PTSD.. 알고는 있지만, 과거의 그런 기억들이 나에게 트라우마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분명 십 대 후반의 난, 20대 초반의 나는 그런 지옥에서 살아 나온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었으니, 트라우마 적인 기억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오늘 검사지를 통해서 나온 점수는 굉장히 높았다.


질문지를 답하기 전 몇 가지를 물어보셨다.

나에 과거에 대한 질문



1. 과거에 특별히 기억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죠?

과거에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들은 보통 나를 때린 오빠보다는 그 옆에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더 뚜렷하게 기억난다. 내가 매를 맞기 전에,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늘 말대답한다고 미 X 년이라면서 옆에서 쌍욕을 하셨다. 오빠가 나를 때리는 걸 방관하셨고, 오히려 내가 또 X이라고, 미 X 년이라고 옆에서 거드셨다. 그런 모습들이 제일 강하게 기억 남는다. 맞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공부 안 하고 딴짓한 게 제일 컸다. 아니면 학교 끝나고 바로 집에 안 오고 피시방이나 어디로 놀러 갔다가 한두 시간 늦게 집에 들어오거나. 어머니의 막말들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집에서 아무도 내 편이 아니었지만, 나한테 하나 있는 부모님이 내 편이 아니라는 게 제일 상처였다. 이 집에서 나는 왕따 같고 나를 지켜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그런 기억들이 크게 상처가 됐고 뚜렷하게 기억이 남았나 보다. 나를 지켜줄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그 지옥에서 내가 날 죽일 수가 없었다. 죽지 말고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날 포기 하면 난 정말 끝이니까.


2. 이런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한 적이 있나요? 가족이나?

가족들한테는 절대 못 한다. 가족들한테 이야기하면 어떤 반응일지 뻔히 안다. 네가 맞을 짓을 했지, 네가 그렇게 행동했으니 미움받을 만했지. 평상시에도 그러신다. 네가 그때는 좀 말도 안 듣고 그랬잖아. 그런 식이다.


새언니에게 용기 내서 말씀드린 적이 있다. 심리 상담이 좀 절실했고, 금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해서 그나마 우리 집에서 내가 구박 많이 받고 자랐다는 걸 아는 새언니면 괜찮을 거 같아서. 같이 상담을 받으러 갔는데 별 도움은 안 됐지만(박사 학위 따신 전문 치료사가 아니라 그냥 자격증 따신 상담사였음) 한 가지 당부하신 건 내가 한 이야기 가족들에게 하지 말라는 거였다. 악화만 될 거라고. 그런데도 새언니는 우리 가족들에게 이야기했고, 그들은 역시나 화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사과를 받기보다는 또다시 훈계를 들어야 했다. 너무 화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듣지 않고 화내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나는 맞거나, 쫓겨나거나 둘 중 하나니까.


어머니는 나보고 그러셨다 그때. 밖에서 랑 안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다며 네 아빠랑 똑같다고. 집 안에서 내가 도대체 어떻게 가족들한테 행동해야 하는 걸까? 말을 해도 맞았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맞았다. 밖에서의 내 모습이 진짜였고 집안에서의 나는 내 진짜 모습이 아녔다. 난 사람들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강아지 같은 ENFJ인데 (필자는 MBTI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혈액형 논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가 뭘 해도 싫어했고 집에서 뭐가 없어지면 다 나한테 뭐라고 하면서 날 의심했다. 막상 그러고 없어진 걸 찾으면 사과 한마디조차 안 했다. 그냥 난 미움을 받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게 다 내가 애초에 미운 짓을 하니까 그런 거라고 늘 그러셨다.


새언니에겐 매우 큰 배신감이 들었고, 그 이후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가족을 과거와 분리해서 보려고 하지만 가끔 누군가 과거 이야기를 꺼내면서 내가 그때 미울 짓을 했다고 그러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억누르느라 엄청나게 고생을 해야 한다. 좋은 기억 하나 없어서 얼굴 안 보고 사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나 스스로는 사랑을 갈구하는 느낌이다. 혹시 몰라, 그래도 지금은 다를까? 하는 기대를 하고 말이다. 결국 나도 사랑받고 싶어, 그거다.



PTSD 질문지 관련 기억이 나는 질문들



1. 과거 안 좋은 기억과 관련된 악몽을 꾸나요?

악몽을 꾸게 될 때면 대부분은 가족들이 나오는 꿈, 가끔은 내가 뭔가 굉장히 스트레스받았던 일,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일어난다거나…. 그런 식이긴 했었다. 꿈은 무의식을 반영하니까 그냥 내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가족들이 나오는 꿈이다.라고만 생각했다. 가족들만 나오지 실제로 일어난 적 없는 이야기로 흘러가는 악몽이었으니까. 오늘 이야기를 나눠보니 어쩌면 과거의 사건들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악몽엔 가족들이 많이 나오는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 과거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지나요?

맞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져서, 생각하면 사람이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생각을 피하려고 시작한 게 게임이었다. 지금도 가족들을 마주하면 그때의 가족들과 분리해서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들 얼굴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거 같으니까. 과거를 생각할 때면 그 속에 갇힌 느낌이 난다. 그때 당시로 다시 돌아간 느낌. 난 미래로 향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자꾸 이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며 괴로울 때면. 그리고 모든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너무 상처받아서 생생하게 기억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기억들이 트라우마가 되었구나.


3. 과거의 일들이 갑자기 떠오르곤 하나요?

늘 그런다. 굉장히 자주 그런다. 그냥 난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어느 날 그랬다, 보통 과거에 나쁜 일이 있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데..

내가 생생히 기억하고 아직도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트라우마가 돼서 내가 그렇게 생생히 기억하고 아직도 슬퍼하는 거였구나.


4. 큰 소리를 듣거나 누군가 소리 지르면 깜짝 놀라나요?

누군가 나한테 소리 지르는 걸 정말 싫어한다. 오빠가 나에게 소리 지르며 화내던 것들이 가장 큰 이유다. 늘 소리 지르며 내 이름을 부르며 나보고 나오라고 하면 난 맞았으니까. 그래서 누군가 소리 지르는 걸 정말 싫어한다. 울음이 나온다. 뭔가 스스로 무서워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5. 무슨 일이 생겨서 잘못되면 그게 다 내 잘못인 거 같나요?

이 문제 때문에 재작년 굉장히 힘들었었다. 나는 모든 걸 다 내 탓으로 치부해 왔다. 성추행을 자주 당했었는데, 당연히 한 사람이 잘못이라고들 하지만 분명 내 잘못도 있으니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거라고 나 스스로에게만 몰아세웠고, 이런 일 아니어도 어떤 일들이든 간에 다 나를 몰아세웠다. 나에게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때 느끼게 된 거다. 나 스스로 난 상처 주는 말만 하는 사람이라는 걸. 위로 한번 안 하는. 누군가 그랬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일이 있었다면 넌 그 사람한테 뭐라 할 거 같아?" 당연히 따뜻한 위로를 건넬 것이다. 근데 난 그런 거 하나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난 날 사랑하지 않아. 난 내가 싫어. 가족들이 과거에 나를 그냥 미워하고 온갖 나쁜 말을 하고 학대해 온 것 마냥, 나도 나 자신에게 그러고 있는 날 발견한 것이다.




한 세션당 12번의 상담인데, 이번 세션에서 현재와 과거를 둘 다 해결해 나갈 수 없어서 한 가지를 택해야 할 거 같다고 하셨다. 세션 한번 끝나면 더 하지 못하는 줄 알고 현재를 택했었는데, 현재를 택해도 과거의 일들 때문에 진전이 조금만 있고 그 이상은 없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셨다. 추가로 세션을 더 할 수 있다고 하셔서 안 그럼 과거를 이번에 하는 게 더 맞는 거 같다고 하셨다.


Past or Present, 과거는 트라우마 현재는 자존감. 과거를 택해서 진행할 경우 그런 기억들이 나에게 영향을 주는 걸 줄여나가는 식으로 치료가 진행될 거 같다. 나는 뭐든 좋다고 했다. 내가 바꿔나갈 수 없던 걸 전문가의 도움으로 뭐라도 조금 바뀐다면 난 그걸로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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