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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Apr 23. 2024

푸훗

언니네 이발관 [비둘기는 하늘의 쥐]

혼인 서약이 있은 후 기나긴 주례사가 지나간다.

이제 피아노 반주에 맞춰 행진만 하면 되는데 그냥 끝내긴 너무 아쉬운 법이다. 결혼식이란 일면 새롭게 나아가려는 두 연인들의 축제가 아니던가. 남편 되는 분이 밴드 음악을 하셨던 분이라 아내와 긴 상의 끝에 친구의 축가 대신 자신들이 직접 축하 공연을 하기로 한다. 결혼 준비 짬짬이 연습실에서 한참 호흡을 맞추었을 둘은 시선을 마주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다. 남편의 아르페지오 일렉 기타로 시작된 선율 우에로 아내분의 노랫소리가 결혼식장에 울려 퍼진다.


오늘은 나의 첫 번째 결혼인데

참 이상한 건 멀쩡하던 기분이

왜 이런 날만 되면 갑자기 우울해지는 걸까

난 정말 이런 날 이런 기분 정말 싫어 이런 기분 정말 싫어



지금까지 한국에서 기타 팝을 얘기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두 팀이 있다. 한 팀은  조휴일의 ‘검정치마’이고 한 팀은 이석원의 ‘언니네 이발관’이다. 두 팀 모두 지금까지 발매된 앨범 중 단 한 편도 아쉬운 수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20여 년 간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꾸준히 수준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말이다. 그리고 오늘은 언니네 이발관에 대해 우선 얘기하고 싶다.

언니네 이발관은 처음 인디 씬에서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2017년 6집을 마지막으로 잠정 해체를 선언하기 전까지 나름 많은 인지도를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더 이상 이들의 새로운 사운드를 들을 수는 없지만 그동안 하나하나 공들여 만들어 왔던 여섯 장의 앨범 만으로도 행복한 빚을 지고 있다. CD의 비닐커버를 벗기고 잔뜩 기대하고 있는 마음에 여지없이 훅 파고들던 시간들. 첫눈에 환하게 들리는 멜로디, 투명하게 비치는 감성은 인디 씬에서 보기 드문 ‘꿈의 팝송’이라고 해도 되겠다.

특히 앨범의 수준과 공들인 흔적은 회를 더해가면서 수준이 높아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앨범을 얘기하라고 한다면 1996년 1집으로 발매된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우선적으로 거론하게 된다. 우연과 필연이 마주하고 아마추어리즘과 프로의 충돌이 한데 섞여 만들어진 1집은 첫 스타트를 끊는 <푸훗> 제목과 같이 풋풋한 신선함으로 가득하다. 훨씬 강화된 연주력과 편곡, 수준 높은 녹음이 다른 앨범에서 빛나건만, 조금은 더 거칠고 성글은 데뷔 앨범이 유난히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앨범은 앞서 얘기했던 데로 한 번만 들어도 쉽게 들려오는 멜로디와 명징한 사운드, 징글쟁글한 기타 팝이 솜사탕처럼 가득하여 그 만으로도 한아름 선물을 받는 느낌이 있다. 거기에 더하여 1집은 개인적으로 시대성을 관통하는 감성이 가득했던 앨범이기도 하다.

1990년대는 여러 가지 가치들이 충돌하던 시대였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20대를 그 시간대에 보냈다는 것은 이 양쪽의 가치들을 사이좋게 섭취할 수 있었다는 말도 된다. 이를테면 아날로그와 디지털 감수성이 공존하던 시대, 메탈과 얼터너티브 락이 세대교체를 이루는 시대, 순수 미술 위에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던 때, 대중음악에서 인디 음악이라는 신생어가 수면 위로 떠오르던 시대, 라면 피킹의 치열함 뿐 만 아니라 냉소적인 심드렁함도 공존하던 시대, 짜장면으로 통일이 아니라 각자 원하는 메뉴를 선택해도 눈총 받지 않던 시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밸런스가 변하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그 양쪽을 각각 한 손에 쥐고선 이것도 베어 먹고 저것도 맛보니 얼마나 재미있었겠는가. 그리고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는 이런 기존 문화가 대체 문화로 변모하는 시기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앨범이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앞서 결혼식 축하 공연으로 개사한 오리지날 곡 <생일 기분>은 다음과 같다.


오늘은 나의 스무 번째 생일인데

참 이상한 건 멀쩡하던 기분이

왜 이런 날만 되면 갑자기 우울해지는 걸까

난 정말 이런 날 이런 기분 정말 싫어 이런 기분 정말 싫어


도대체 이런 가사라니 '뭐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노래란 원인과 결과가 인과관계로 연결되고 가수는 자신이 표현하려는 감정을 이에 맞추어 전달하지 않은가. 기뻐서 부르는 환희는 내가 왜 이다지도 행복한지를 설명하기 마련이고, 이별 노래는 내가 어찌어찌하여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를 구구절절이 표현해 낸다. 그런데 이런 혼잣말에나 쓸 애매모호한 표현이란 뭔가 말이다.

축하받고 기뻐야 할 생일날 이상하게 기분이 우울해진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에 더해 왜 이런지는 모르겠다는 내용을 화자는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다. 흠칫 놀랐던 이유는 우리도 실은 이런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창 기쁘고 행복해야 할 시간에 우울해지는 순간들, 그리고 그게 왜 그런지는 설명할 수 없었던 마음 말이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방구석의 모호함이 가사로 표현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평범한 멜로디로 불릴 때 의외로 마음을 울릴지도 몰랐다.

게다가 대충 흘러가다 지은 것 같은 밴드명부터, 앨범 제목, 발로 그린 것 같은 앨범 재킷, 못 먹어도 자작곡으로만 채운 인디 앨범의 상징성, 그 당시 보기드문 영국 유명 스튜디오에서의 마스터링 또한 그 너머에는 어떤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지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집단주의가 지고 개인의 개성과 내면의 풍경이 좀 더 힘을 얻게 되던 1990년 대. 그 신호탄은 사회 곳곳에서 여러 갈래로 시작되었지만, 나는 감히 언니네 이발관의 이 소박한 데뷔앨범 또한 음악 분야에서 아무 예고도 없이 매시브 급의 폭탄을 투하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아! 그러고 보니 이때가 하루키 또한 굉장한 힘을 얻던 시대였구나.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듣는 시간. 글을 쓰며 한 꺼풀 더 이해가 된다.  

그런 것이로군.



언니네 이발관 [비둘기는 하늘의 쥐] 1996년 <생일 기분>

https://youtu.be/phvqGRM_esk?si=t1gRPE8-murY1Z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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