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ff Jung Jun 27. 2024

나는 너의 푸른 새벽을 알고 있지

조동진 [새벽안개]

1995년 충주, 저녁이 내리면 터미널에는 한숨 섞인 시외버스가 정차한다. 조용한 거리들, 삼십 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작은 시내에 위치한 레코드 가게. 복귀를 앞둔 군바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A부터 Z까지 앨범들을 이 잡듯이 훑고 있는 풍경이 있다. 그리고 조동진의 무뚝뚝한 얼굴이 강물 위를 흐르는 듯한 테이프를 발견, 흡족한 듯 품에 안고 부대로 돌아가던 시간이 있다. 음악을 섭취할 재료 자체가 몹시 제한적이었던 환경,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들었던 새벽 라디오 방송, 불빛펜을 가지고 어둠 속에서 써 내려갔던 편지들, 세상의 감수성을 똘똘 뭉쳐 가슴속에 넣어두고 있었던 시간들. 과연 그가 들려주던 음악들이 얼마나 깊숙이 다가왔을까 말이다.


신기했던 게 나는 지금껏 그와 동년배로 함께 살아왔다는 착시를 느껴 왔다. 연배로 보자면 아버지 뻘인데도 말이다. 1979년 데뷔앨범 이후 37여 년 간 단 여섯 장의 앨범만 발매하였던 그 느린 속도, 그 아껴서 내어 놓는 앨범들 중 다섯 번째를 공교롭게도 가장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기에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21년이 지난 후 여섯 번째 마지막 앨범 [나무가 되어]를 발매하기까지, 그가 살아낸 삶의 무게만큼 나 자신도 동일 시간대를 치열하게 관통하였던 것 같다. 그 담금질을 기다려 왔던 연대 의식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앨범 발매를 기념하여 콘서트를 준비하였고, 나 역시 티켓팅을 하며 지나 온 시간들을 반추하려던 찰나 그만 지병으로 작고하였던 안타까움까지. 결국 깊은 강물 같은 앨범들은 이제 가슴속 어느 심연에 도사린 후 남아 있는 시간들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앨범과 함께 위로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동아기획에서부터 하나뮤직, 푸른곰팡이까지 흔히들 조동진 사단이라고 일컬어지는 제왕적인 면모도 존재한다. 그가 끼친 영향력이 한국 음악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는 것은, 함께 했던 동료들의 활동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느리지만 평생 동안 자신의 앨범을 발매하고 공연을 하는 ‘가수 조동진’의 면모로만 집중하고 싶다. 그가 나직이 전해 주는 풍경에만 단지 집중하고 싶다. 왠지 그도 앨범을 통해서만 얘기하는 뮤지션이기를 바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발매된 앨범 라이너 속지를 펼쳐놓고 음악을 흘리고 있자면 ‘결국 넘쳐흐른 시간이 모여 금번에 작은 이야기를 한번 엮어 보았습니다.’라고 담담히 얘기를 걸어오는 듯하다. ‘한번 찾아 봐 주세요’라는 당부조차 인색한 그.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에는 세월을 쌓아 올린 단단한 자신감이 보인다. 아마 그는 그 자리에 붙박여 있으면서 쉬어가는 나그네를 위한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필요할 때 찾았다가 무수히 떠나더라도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나무.


빠르게 변하고 정신없고 상처받고 배신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듬직함은 소중한 덕목이다. 그래서 그의 앨범은 휴식과도 같다. 어쭙잖은 위로 같은 다정함이 아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겪어 내려간 만큼의 의미를 곡에 담아서 노래를 한다. 거기에는 거짓도 없고, 누구를 위하겠다는 사명조차 없을 것이다. 단지 자신의 갈증이 임계점을 넘어섰을 때 한 곡씩 갈무리했던 자취들이 모여 작품으로 만들어져 왔을 뿐이다. 심지어 그 시간이란 이십 년이 걸린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그의 음악이 정체되어 있는 고리타분함과는 괘를 달리한다. 동생 조동익의 편곡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음악은 시간을 지나며 세련된 면모를 함께 가져간다. 이는 특히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앨범에서 두드러진다. 그의 목소리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표현방법이라면 적극 활용하는 마음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옷을 입히더라도 그의 노래에는 바뀌지 않는 주된 정서가 있는데, 뭐랄까.


새벽에 비치는 안개, 해 저무는 공원, 달빛 아래 떠나가는 배, 시간 속을 지나는 바람, 너와 나 사이에 있는 먼 섬, 언제나 다가갈 수 없는 그 자리의 나무, 묵묵히 흐르는 검은 물결….


이런 비슷한 결을 가지는 풍경들 말이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함께 읽어보면 비슷한 줄기로 수렴하는 듯한 모습 말이다. 그는 음악으로만 얘기하는 사람이기에, 이게 그가 남긴 흔적이라면 나는 그에게서 평생에 걸친 어떤 신념 같은 실마리를 본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의 쓸쓸함과 불가항력적인 고독을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탐구하였는지 모른다. 물론 길을 가는 중  그 속에 피어나는 한 떨기 아름다움을 놓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존재의 무거움이란 게 내게는 어떤 어두움이나 부정적인 감정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데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고독이란 달콤함과도 등가교환되기 때문이다. 그 또한 존재가 느끼는 필연의 무거움에 대해 잔잔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끝없는 물음들을 화두로써 잡아 나갔을 것이고 그 대답을 앨범을 통해 서로 공명하게 된다. 나로서는 자석처럼 끌리는 게 필연이기도 하겠다.


앨범을 걸고 시간을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

벼린 이야기들은 트레이드 마크라 할 만한 안개 같은 목소리를 통해 하나씩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뱃사공도 없는 작은 나룻배에 앉아 새벽안갯속을 유영하고 있는 나 자신만이 존재하는 시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공간 속을 강을 따라 흐르고 있지만, 단지 몸을 맡겨도 좋을 것만 같다. 우리에겐 그런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들이 필요하다.

    

어느 순간 프렛리스 베이스가 호른처럼 울리며 강물에 짙은 파장을 드리운다.



조동진 [새벽안개] 1995년 <친구들에게>

https://youtu.be/97QZQqqPg4Y?si=2xXatH4N26hDNwmC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의 황야를 찾아가는 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