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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Mar 03. 2024

기타로 읊조리는 시

신윤철 3집 <서로 다른>

기타 하나로 일가를 이룬 신중현 옹은 한국 최초의 여성 드러머 명정강 씨와 결혼하여 세 명의 아들을 낳았으니 ‘철’자 돌림으로 장남이 신대철, 차남이 신윤철, 막내가 신석철이었더라.

신대철은 시나위를 위시하여 헤비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신윤철은 비틀즈와 싸이키델릭 시대의 음악을 하며 하드 락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막내 신석철은 형들의 음악 자양분과 스펙트럼으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다. 가히 음악 가족이라 할 만하다.


혹시, 형제자매의 위치에 따라서 성격이 달라진다고 믿는 편인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절대 성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단, 자신이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디에 자리매김하는가에 따라 후천적인 성격은 일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젠 핵가족 중의 핵가족인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빛이 바랜 얘기겠지만 말이다.

첫째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조금은 곧은 형태로 자라나려나? 부모님은 양육에 초보여서 첫째를 낳고 얼마나 섬섬옥수같이 안절부절했을까, 그에 따른 기대, 그리고 집안의 중심이라는 위치, 어린 동생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무의식 중의 의무감 등으로 말이다.

막내는 늦둥이로 좀 더 자유로운 영혼이려나?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모와 첫째, 둘째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게 되는 캐릭터일 테니 말이다. 때로는 혼구녕도 단단히 나지만 마음껏 장난쳐도 다 받아주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나서 활달하게 이것저것 시도하는 데 거리낌이 없을 수도 있겠다.

재미있는 것은 둘째, 혹은 중간의 차남, 차녀들인데 독특한 캐릭터를 가질 때가 많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독특하다는 의미가 튄다는 얘기는 아니고 막내의 자유로움과는 또 다른 약간 다른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 부모님은 두 번째 낳아 보았다고 훨씬 여유롭게 둘째를 대한다. 어릴 때부터 첫째와 다툼을 통해 위치를 선점해야 하는 눈치싸움도 필요하다. 어느 날 막내가 태어나면 주위의 시선은 더욱더 둘째의 바깥으로 돈다. 동생을 챙겨야 하는 의무는 있지만 왠지 그렇게 큰 부담은 없다. 첫째, 셋째 간에 다툼이 있을 때는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뭔가 하려고 할 때 큰 지원도 없지만 그렇다고 강한 반대도 없다. 그리하여 둘째는 가족 내에서 좀 더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자라날 여유를 가지게 된다.

결코 일반화될 수는 없지만 웃자고 하는 정도로는 쓸만할 것이다. 그리고 밖에서 바라본 신윤철을 개인적으로 이미지화할 때 나는 왠지 그런 프레임을 씌우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신윤철은 헤비메틀의 올곶음, 직선으로 질주했던 첫째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음악을 한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비틀즈를 위시하여 올드한 감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그 진정성도 진정성이지만 음악 가족 구성원 누구와도 비슷한 결이 없다. 그에게 스며든 삐딱한 시선이란,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옛 감성을 철저하게 자신의 내면으로 흡수하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의 초창기 솔로 활동은 매우 소중하다. 이후에야 원더버드, 서울전자음악단 등 밴드 형태로 음악을 했지만 처음 그의 작품들은 말 그대로 그가 간직했던 내면의 풍경을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고 생각한다. 솔로 앨범 3장 속에는 골방 속에서 매일 기타 치며, 손글씨로 삐뚤빼뚤 적어낸 가사를 자신의 내밀한 목소리로 부르는 잔잔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나는 어릴 적부터 신대철의 시나위에 시선이 가기보다는 이 신윤철의 내면에 더 관심이 가는 편이었다. 비슷한 위치가 주는 편안함인가?


명태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못 살았었지 명태는 양말을 며칠 동안 신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놀림감이었지’ 어린 시절에 박혀 있는 아릿한 기억을 드러내기도 하고.

여러분 이제 연극은 끝났어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날 시간’ 지금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삶이 연극이듯.

나의 친구가 연인같애. 눈 오는 날 밤 나의 친구와 밤새도록 기타를 쳤지. 네가 좋아하는 음악을 내게 들려주었지’ 친구와 함께 했던 좋았던 기억도 소환하고.

녹색정원에는 소박한 길과 나무들이 있고 작은 기와지붕아래 낙엽들이 떨어져 있지’ 자신의 세계에 가꾸어 놓은 정원을 불러내어 그와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 본다.

내 향기가 그대의 그림자이듯 그대 가는 모든 곳에 따라가면 좋겠네’ 이쁜 사랑을 순수한 마음으로 노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가 내어 놓는 사운드에 주목하게 된다. 그는 음악, 가사 이전에 자신의 기타 톤으로 마음을 표현하는데 누구보다도 능한 기타리스트이다.

약간은 수줍은 고개 숙임 너머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에 블루지한 기타 톤이 진한 사골 같은 그득함을 가득 풍기고 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칠이 다 벗겨진 오래된 스트라토캐스터를 메인 기타로 쓰는 실루엣은 이를 잘 표현해 주는 이미지로 쓸 만하다. 그러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된 센스 또한 겸비하고 있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윤병주 아저씨와 함께 https://brunch.co.kr/@b27cead8c8964f0/26 대한민국 기타리스트의 양대 산맥이라고 힘주어 얘기할 수 있다. 그만큼 그가 만들어 낸 톤은 손가락이 아니라 몸을 통과해 나왔다는 것을 대번 느낄 수 있으며, 그 절절한 깊이에 ‘아름다움’이란 단어를 기어이 붙이고 싶은 충동이 인다. 기타 사운드를 들을 때마다 매번 그가 만들어 낸 세상에 잠시 다녀온 것 같은 현실에서의 시간 단절이 있다.


이런 여러 가지 감정과 표현법들을 하나에 꾹꾹 밟아 놓은 곡이 있으니, 그의 솔로 앨범들 중 세 번째 앨범의 마지막 곡을 전하고 싶다. 자신의 철학이라고 생각하고픈 가사의 깊이도 좋지만 대미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기타 솔로 또한 함께 하기 때문이다.

‘입고 있는 똑 같은 옷자락 사이에 서로 다른 먼지들이 날아와 쌓이네. 서로 다른.

똑 같은 벽돌들 위에 서로 다른 아픔이 있네’


이후 펼쳐지는 물기 머금은 기타 사운드의 향연은 그야말로 찬란한 다짐과도 같다. 자신을 향했던 시선들을 조금씩 밖으로 돌려 세상을 향해 펼치는 것 같은 마음도 든다. 이 앨범을 처음 들었던 때는 아직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많았던 시기였는데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을 들으며 위안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떠오르네. 온스테이지 등 라이브 클립에서 종종 그가 온몸으로 토해내는 날것을 들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우선 오리지날을 정리해 본다.

후반부 3분 30여 초를 이어져 나가는 기타 사운드는 내게 하나의 시라고 얘기하고 싶다.


신윤철 3집 [신윤철] 1995년 <서로 다른>

https://youtu.be/wAl321qi6rk?si=2WJP7zOtGJaBH6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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