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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현 Aug 14. 2024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출신의 사회적응기

1)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나는 사회에서 예술고등학교 출신의 선배를 만날 때마다 흠칫 놀라곤 했다. 학창 시절 그토록 특별한 생각에 목매던 우리가 사회에서는 무척이나 상투적이고 평범한 일상에 속하고 싶어 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속으로 또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몰랐다. 통상적인 기본 수칙을 뒤늦게 학습하느라 행동이 서툴고 말수가 적었다. 그중엔 등단을 한 사람도 있었고 기자가 된 사람도, 뜬금없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들어간 회사는 영화 제작사였다. 당시 제작사에서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있었다. 내가 참관할 수 있었던 첫 번째 회의에서 나는 감독에게 물었다.

  “배경을 예술고등학교로 하는 건 어때요?”

  내가 예술고등학교 출신이었기에 낸 아이디어였다. 감독이 말했다.

  “예술고는 그들만의 리그예요. 예술고 출신이 말하는 거 들어보면 정말 달라요. 그런데 내가 쓰고 싶은 건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예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영화과를 나와서 영화를 하는 감독님도 그리 평범한 것 같진 않은데.’

  프로듀서는 회의를 되짚어 내용을 정리하다가 말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예창작과 출신들을 신뢰하지 않아. 시나리오를 지적하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지적이라고 받아들이더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지 않은 줄 알았다.


  예술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영화과 진학을 희망하는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냈다. 책을 읽는 것이 너무 싫을 때마다 대신 영화를 보면서 스토리를 공부했다. 그만큼 영화를 보는 눈을 기르고 열정을 키워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전에 고용했던 문예창작과 학생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 아이는 다시는 영화 안 하겠다던데.”

  하고 겁을 주었다.


  내가 버틴 시간은 한 달이었다. 영화가 싫어질 것 같을 때 그만두었다. 프로듀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고수가 들어간 음식이었다. 나는 고수를 좋아했기 때문에 같이 밥을 먹었다. 그런데 매일 불같이 화를 내는 프로듀서의 이미지와 조건 형성 학습 반응을 일으켜 이제 고수 냄새만 맡아도 두려워졌다. 나는 오탈자에 민감하고 완벽한 시나리오를 위해 합평 자리에서 지적하는 걸 좋아했다. 지적받는 것에도 익숙했다. 하지만 감독이 써온 시나리오의 수정사항이 눈에 보인다고 해서 그걸 말하면 혼이 났다. 감독도 그 리스크를 이미 알고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프로듀서가 사실 한 번도 시나리오를 읽지 않고 회의에 참석해서 나를 방패막이로 삼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할 때였다. 나는 프로듀서에게 속은 것 같다는 장문의 메일을 남겼고 그날부로 해고되었다. 나는 자존감을 매일 도둑맞고 속고 있다는 뜻으로 쓴 것인데 프로듀서는 월급을 제때 주지 않아 속았다고 하는 것으로 알아듣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하지 못하게 월급을 더 주고 해고시켰다. 그러면서 요즘 애들은 이제 안 뽑을 거라고 못을 박았다.

 

  그렇게 영화사를 그만둔 나는 영화관에 취직했다. 면접을 보는데 매니저가 말했다.

  “아, 저도 예술고 문예창작과 출신이에요.”

  그 말을 듣자 이제 내가 있을 곳을 찾은 느낌이었다.


  누구나 작가가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나 직업은 필요했다.


  나는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던 때를 떠올렸다. 전국 각지에서 글을 좀 쓰는 아이들이 시험장에 모여들었다. 어딘가 비범한 생각을 하고 평범한 것을 거부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버스를 대절해서 지방으로 출장을 온 예술고 학생들이었다.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오늘은 몇 명의 예술고 학생이 상을 받게 될까. 저번에 일등을 했던 학생이 오늘도 일등을 하게 될까? 백일장이 시작되고 심사위원이 수상 후보를 호명했다. 선택받은 예술고 학생은 한두 명이었지만 일반고 학생의 입장에서 그것도 많아 보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상작을 읽어보았다. 세심하게 세상의 부조리를 짚어낸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이런 영감이 왜 나에게 오지 않았을까. 집에 도착하니 벌써 밤 열 시였다. 하지만 내일도 새벽부터 일어나 또 다른 지역의 백일장에 나갈 생각이었다.


  사회초년생이 된 지금,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글이 문예창작과를 지원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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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떤 사람이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에 가는 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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