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해보지 않고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 있다.
그는 학교의 슈퍼스타였다. 소설 작품을 냈다 하면 큰 대회에서 수상하고 대학교수님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그는 어딘가 모르게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감에 쫓겨 밤새 잠도 못 자서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들과는 다르게 언제나 상쾌한 미소를 띠고 후배들에게 사인도 해주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의 상상력은 누구나 부러워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밥 먹을 때도 걸을 때도 소설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작품을 쓸 수 있었느냐고 물으면 평소에도 농담 같은 재미있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에 대한 선생님들의 신임은 날이 갈수록 점점 커졌다. 그래서 그가 원하던 대학에 입학이 결정되었을 때 후배들에게 성공담을 들려주는 시간을 가졌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아, 정말 멋지다.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질투가 났던 나는 그를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경쟁은 나날이 심해지고 매일 차기작을 쓰는 게 일상이었다. 새벽 버스를 타고 지방 대회에 나가서는 장려상도 수상하지 못해서 눈물이 도르륵 흘렀다. 뭐가 문제였을까. 뭐가 또 부족했을까.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곱씹었다.
학생다운 글을 뽑았다고 했다.
학생들만이 할 수 있는 생각과 감정. 그게 아니면 잘 쓴 글을 뽑았다고 했다.
나는 내가 학생임을 자각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면서 집 주변 공장 트럭에 깔려 죽는 쥐와 나를 동일시했기 때문일까. 지금에서야 그때 내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청소년 소설을 읽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미숙하고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고 질투심이 많아서 갈등을 일으키고 때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유쾌함으로,
“왜 열심히 살아야 하죠, 엄마?”
이런 가벼운 질문으로 말문을 막히게 만들면 됐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죽음과 비존재,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쓰고 싶었다. 또 하나, 미리 어른이 되는 걸 겁먹고 있었기에 그런 주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노동자가 되면 프롤레타리아, 혹은 투쟁가, 스파이가 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상상했다. 너무 작가가 되고 싶은 나머지 작가가 아닌 그 어떤 직업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부적응자가 되어 버리는 것 말이다. 하지만 자꾸 낙방하게 되자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하는 것이 좋을까. 물론 자신이 천재라면 당연히 진학하는 것이 옳다. 문학계의 슈퍼스타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예술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내가 혹시 그 천재일지도 몰라, 그건 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하면서 부모님을 설득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차라리 공부를 할 걸 그랬다고 뼈아픈 후회를 맛보기도 했다. 내 최종 순위는 소설 실기 부문 전교 2등이었다. 하지만 상복이 없어 대학 입시에 애를 먹었다.
좋은 대회에서의 수상 경력을 가지고 러브콜을 받았던 그는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말없이 웃기만 했다. 마치 며느리도 모르는 비법이 따로 있으나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는 밝힐 수 없다는 듯이 후배의 질문에만 성실히 대답하는 그의 태도에 나는 실망하곤 했다. 실제로 고등학교 때 나는 소설을 잘 쓸 수 있는 비법보다도 내가 얼마나 작가가 되고 싶은가만 확인했다. 예술고등학교에 가면 글을 쓰는 기계가 된다던데, 아닌가?, 하면 그 소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깔끔한 주제, 구성, 문체는 지금의 챗 GPT가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
떠먹여 줄 수 있는 비법은 거기까지다.
일단 예술고에 진학했다면 내가 썼던 글을 전부 삭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글을 삭제하는 버릇이 있었던 아이들은 완성한 글에 대한 감각도 없었고 대학 진학에도 실패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에 성장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퇴고하기 전의 원고가 더 나았을 수도 있다. 나 자신의 무능력함을 견뎌낼 용기가 필요했다.
예술고 학생들은 최고의 기량을 뽐내야 하는 운동선수다.
그러니 자신의 전성기가 지금이라고 믿고 자신감 있는 학교생활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