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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Oct 22. 2022

코페르니쿠스와 루터의 일화

신학과 과학의 대화 어떻게 해야하나?

 코페르니쿠스와 루터, 개혁자라는 공통점


폴란드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그가 죽던 해인 1543년에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발표하여 "태양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지 않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발표했다. 지구중심설(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주장했다. 당시에 천동설로 우주를 바라보는데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관측을 통하여 우주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했다. 빠르게 변하는 오늘날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코페르니쿠스는 당시 가장 오래된 대학인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이론보다는 관측과 계산을 하는 실질 천문가였다. 그는 열린 사고, 역동적인 사고를 한 듯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할 정도로 나는 내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그는 분명한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도 소크라테스처럼 무지의 지를 강조했다.

"우리가 아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음을 알고, 우리가 모르는 것을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것이 참된 지식이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마르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마인츠 대주교에게 95개 조의 반박문을 색소니의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붙임으로써 종교개혁의 도화선을 마련했다. 이것은 당시의 기독교에 면죄부 판매를 구원의 행위와 연결시켜서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하고 기독교가 부패한 것에 저항하며 항거하였다.


루터의 핵심 주장은 구원은 교황의 축복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시의 잘못된 관행과 공로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그러면서 성경 말씀에 비추어서 종교적 관행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루터의 개혁 정신은 참으로 위대하다.

"나는 내 양심과 내가 인용한 성경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는 내 주장을 철회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내 양심과 성경을 거스르는 것은 옳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마르틴 루터


16세기 종교개혁자 루터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부인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주장한 책이 1543년에 나오기 전인 1539년, 루터는 이미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알고 있었다. 루터는 코페르니쿠스가 잘난 척하고 주목을 받고자 '지구가 태양을 회전한다'고 주장한다고 주장하며, 1500년 동안 내려온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믿었다. 그 근거는 여호수아 10장 12절에서 14절에, 여호수아가 "태양아 멈추어라!"라고 한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것은 태양이지 지구가 아니라고 보았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부인한 것은 칼뱅도 마찬가지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갈릴레오 갈릴레이, 요하네스 케플러, 아이작 뉴턴 등에 의해서 수정되고 보완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는 여호수아서를 근거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부인했으나, 성경의 오류와 해석의 오류를 구분해야 한다고 R.C.Sproul은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교회는 자연과학에서 배울 준비를 해야 한다.


"지구와 태양의 회전에 관하여는 우리가 성경을 잘못 해석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이해를 교정해주어서 자연과학자에게 감사합니다."라고 교회는 말할 수 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


루터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부인한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전공(신학)으로 다른 사람의 전공(과학)을 판단하는 것은 조심하지 않으면 창피를 당한다. 폴 틸리히는 <역동적 신앙>(Dynamics of Fatih)이란 책에서 "철학적 진리, 과학적 진리, 신학적 진리가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루터와 코페르니쿠스의 일화를 보면서, 틸리히의 말이 생각났다.


이번에 조직신학자 김명용 장신대 전 총장이 과학과 신학에 관한 책을 출판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제목은 <진화인가, 창조인가?> 부제: 최근의 과학적 발견과 신학이 내린 새로운 결론이다. 이 책에서 과학과 신학이 서로 무례함을 범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서로 배워가는지 주목한다. 저자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진화인가, 창조인가? 이 주제에 대한 바른 답은 무신진화론에도 창조과학에도 유신진화론에도 없습니다.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한 새롭고도 확실한 답을 찾아 쓴 책입니다. 목회자들, 지성인들, 청년들, 교회학교 교사들 그리고 선교현장에 꼭 필요한 책입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0월 19일에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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