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이 쓴 <바벨의 도서관>은 29권으로 되어 있다. 40인의 작가 164편의 단편을 모았다. 모든 언어의 모든 작품을 읽었다고 하는 보르헤스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단편도 고전이 될 수 있다.
'단편은 약간 하찮게 보고 대작에 도전해야지.'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보르헤스의 단편, 또한 그가 모은 단편은 하나하나가 고전이다. 그의 단편 <뇌물> 또는 <매수>로 번역되는 작품 The Bribe를 읽었다. 분량은 10쪽 남짓이다. 세 번을 읽었다. 무엇이 '뇌물'인지, 어떤 '뇌물'인지를 발견하는 게 과제다.
미국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
미국인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때는 1960년대 미국 남부 텍사스 오스틴의 대학의 영문학과에 세 교수가 있었다. 정교수 정도되는 에즈라 윈드롭 교수(Dr.Ezra Winthrop)가 있었고, 부교수 정도로 보이는 허버트 로크(Herbert Locke)와 유럽의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아이슬랜드에서 1969년도에 텍사스대학의 교수로 온 에릭 에이나르손(Eric Einarsson) 교수가 있다.
에즈라 윈드롭 교수는 안식월을 보내기 때문에 다가오는 위스콘신에서 열리는 게르만 언어 전문가 학술대회에 1명의 학자를 보내야만 한다. 윈드롭 교수는 과묵하고 소심하지만 로크를 보낼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에이나르손은 거만하고 반감을 일으키며, 논쟁을 일으키는 성격이어서 불편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에이나르손이 예상을 뒤엎고 위스콘신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가도록 발탁되었는데, 에이나르손이 윈드롭 교수에게 먹인 '뇌물'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에이나르손이 윈드롭 교수에게 먹인 뇌물은 윈도롭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학습법을 문제 삼아,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상하지만 끝까지 차분히 들어보시라. 에이나르손은 예일대학의 학술지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앵글로색슨 문학과 언어의 대학교수법에 관한 긴 글을 썼다. 본명을 밝히지 않고 약자로 E.E.로 썼으며 '텍사스'라고 썼다. 자신을 숨기려는 듯했지만, 그 글을 에이나르손이 썼다는 것을 윈도롭은 너무도 잘 안다.
이 글은 윈도롭의 심기를 건드렸다. 기분이 좋지 않다. 윈도롭의 앵글로색슨 영어학습법을 비판한 글이기 때문이다. 후보를 결정할 때 윈드롭은 처음 생각했던 후보 대신에 에이나르손을 추천하여 보내게 되었다. 왜 그럴까? 이게 '보르헤스식 뇌물'이다.
3월 19일, 학술대회로 떠나는 전날 밤, 에이나르손은 윈도롭의 교수 연구실을 찾아간다. 그는 어떻게 자신이 윈도롭 교수를 매수했는지를 설명한다. 그것은 심리적인 전략이었다. 북부 출신인 윈드롭 교수는 남부 텍사스에 적응하려고 했는지, 남부의 입장에 대하여 공정하려고 매우 애를 썼다. 예를 들면, 북부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군의 용기를 과장되게 설명하고, 남부의 대의명분을 이해하려고 했다. 이게 윈드롭 교수의 허영이었다.
에이나르손은 '공정한 사람이 되고, 복수심이 없는 사람이 되려는' 윈드롭 교수의 심리를 정확히 관찰하여 파악하고, 예일대학 학술지에다 그를 공격한 것이다. 학술대회에 참여하는 것은 돈도 많이 들고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지만, 경력을 쌓아서 인정받고 타국에서 대학교수로 경력을 쌓는데 유용하다는 것을 에이나르손은 잘 알고 있다. 에이나르손에게 공격을 받은 윈드롭은 1순위였던 로크 교수 대신에 에이나르손을 추천하게 되어 그가 가게 되었다. 윈드롭 교수는 공정한 사람, 복수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로크 교수를 추천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그런 목표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맘에 들지 않지만, 과묵하고 소심한 로크 교수보다는 논쟁적인 에이나르손이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임무를 더 탁월하게 수행할 사람이었다.
에이나르손이 털어놓은 과거의 전략을 듣고서, 윈도롭 교수 연구실에 오랜 침묵이 흘렀다. "당신은 나를 정복한 최초의 바이킹의 후예요." 하고 윈드롭은 굴복을 인정했다.
원죄가 우리를 뭉치게 했군.
윈도롭이 에이나르손에게 한 말.
"원죄가 우리를 뭉치게 했군." 오랜 침묵 후에 윈도롭이 에이나르손에게 말했다. 에이나르손은 으스대기 위해 경력을 쌓으려는 욕망으로 윈도롭 교수의 심리를 이용해서 자신이 발탁되도록 했고, 윈드롭 교수는 정직하고 곧은 사람임을 자랑하려는 허영에 이용당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미국 시민이란 공통점이 있군요."라고 에이나르손은 말한다.
보르헤스는 이전에 생각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독자를 이끈다. 값진 물질이나 돈을 주어서 사람의 마음을 매수한다고 생각하는데, 보르헤스식 뇌물은 상대를 잘 관찰하고 상대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렇다. 밥사주고, 선물 준다고 사람들을 내맘대로 조작(manipulation)해서는 안된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조작할 수는 없다. 보르헤스의 <뇌물>은 상대의 심리를 이용한 뇌물이었다. 상대방을 깊이 관찰하고, 그를 움직이는 방법을 알았던 에이나르손의 전략에 감탄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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