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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ru Jun 26. 2024

[각각의 계절]

#책발제 10_

각각의 계절 _ 권여선 作



소설을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작품이 있다.

대게는 부러 가슴한켠 묵혀둔 이야기인데

그것들이 무방비 상태로 들추어내어지다 보면

숨이 가빠 온다.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中

어떤 말은, 특정 음식이 인체에 계속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듯 정신에 그렇게 반복적인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오익은 생각했다. 말의 독성은 음식보다 훨씬 치명적이었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음식은 기피할 의지만 있다면 그럴 수 있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킨 말은 아무리 기피하려 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기피하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점점 더 그 말에 사로잡혀 꼼짝달싹도 할 수없게 된다.




그렇게 생채기가 다시 생기고

새로운 딱지가 앉을 때까지 난 아프다.


<사슴벌레식 문답> 中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 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 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어떻게 생채기가 생긴 걸까?

어떻게든 생채기는 생겨.

새로운 딱지가 앉을까?

새로운 딱지는 어떻게든 앉아.

난 왜 아픈 걸까?

어떻게든 아파.




심연의 어둠이 난 반갑지 않은 사람이다.

심연의 육중한 무게가 억압으로 다가오는 사람이다.

[각각의 계절]은 자꾸만 그 심연을 마주하게 한다.

불편하고 답답함을 인지하란다.

싫은데.


<기억의 왈츠> 中

그러나 과거를 반추하면 할수록 내게 가장 놀라웠던 건 그 시절의 내가 도무지 내가 아닌 듯 무섭고 가엽고 낯설게 여겨진다는 사실이었다.... (중략)... 내가 손쓸 수 없는 까마득한 시공에서 기이할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내가 지금의 나로서는 결코 원한 적 없는 방식으로, 원하기는커녕 가장 두려워해 마지않는 방식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부인할 수도 없지만 믿을 수도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런 게 놀랍지 않다면 무엇이 놀라울까. 시간이 내 삶에서 나를 이토록 타인처럼, 무력한 관객처럼 만든다는 게.


마주하면 익숙해 질까?

마주하면 어떻게든 익숙해져.

익숙해지면 편안해 질까?

익숙해지면 어떻게든 편안해져.

편안해지면 묵은 이야기들이 해방되는 걸까?

편안해지면 어떻게든 해방되.


사슴벌레식 문답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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