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바람을 담아 달큰한 겨울의 맛
시금치는 일 년 내내 마트에서 만날 수 있는 채소이지만 겨울에 그 맛이 더 달아진다. 하지만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맛이 있는데 바로 포항초와 섬초다. 포항초는 포항에서 동해의 해풍을 맞고 자란 시금치를 이야기하고, 섬초는 남해와 서해의 해풍을 맞고 신안 비금도에서 자라난 재래종 시금치를 말한다. 섬초는 발아율도 낮고, 수확량도 개량된 일반 시금치에 비해 낮지만 가격이 비싸다.
섬초는 갯벌에서 자라는 것이 특징이며 잎이 두껍고, 그 잎이 바닥에 붙어서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시금치 종류 중에서 가장 단맛이 강하며, 평소에 먹는 것처럼 데쳐서 나물로 먹어도 맛있지만 높은 온도에서 재빠르게 볶아서 먹으면 새우와 같은 갑각류에서 느껴지는 달달한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일반 시금치처럼 나물로 무쳐도 맛있지만, 시금치보다 단맛이 강하기 때문에 국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섬초를 데쳐서 페스토를 만들었다. 데친 섬초는 물기를 꽉 짜고, 올리브오일과 마늘, 그라나파다노 치즈, 크러쉬드 페퍼를 넣어 페스토를 만들었다. 올 한 해 바질, 고수 등 푸릇푸릇한 채소들을 이용해서 페스토를 만들어 먹었지만, 섬초로 만든 이 페스토를 특유의 달달함에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그런 매력을 선물한다.
| 페스토의 온전한 맛을 즐길 수 있는 페스토와 크래커
사실 페스토는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빵이나 크래커레 발라먹어도 맛있고, 파스타를 만들어도 맛있고, 섬초의 달큰한 맛을 그대로 담은 페스토를 즐기기 위해 편의점에서 크래커를 사 왔다. 사실 크래커와 페스토가 만나면 끊임없이 들어가기 때문에 크래커는 딱 먹을 만큼만 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페스토가 바닥을 보일 때까지 크래커를 까게 되는 마법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나라의 제철 식재료들은 향이 강한데, 섬초는 특유의 향이 있다기보다는 그 어느 엽채류(잎을 위주로 먹는 채소)보다 달달한 맛을 가지고 있다. 촉촉한 수분감을 가지고 있는 섬초의 물기를 꽉 짜내어 촉촉함과 달달함이 느껴지고 꼬릿꼬릿한 감칠맛의 그라나파다노 치즈와 알싸한 마늘의 향이 아주 잘 어우러진다. 여기에 크러쉬드 페퍼로 더한 은은한 매콤한 맛은 나도 모르게 자꾸 손이 가게 만든다.
보통 크래커에 페스토를 곁들이면 와인과 함께 먹으면 좋은데, 단맛이 없는 드라이한 와인을 한 잔 곁들였더니 아주 잘 어울린다. 섬초의 달달함과 페스토 특유의 약간 껄끄러운 텁텁함이 입 안에 남아있을 때 드라이한 화이트와인 한 모금이 입 안을 깔끔하게 해 준다. 섬초, 너.. 와인이랑 잘 어울리는 식재료였구나?
| 페스토를 즐기는 가장 완벽한 방법 섬초페스토파스타
연남동에서 가게를 운영했을 때, 대표메뉴가 해산물에 바질페스토로 맛을 낸 파스타였다.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페스토를 즐기는 방법으로 선택하듯 페스토로 맛을 낸 오일 파스타는 페스토의 맛을 온전히 즐기면서 든든하게 한 끼를 즐길 수 있는 맛있는 한 그릇이 된다.
달궈진 팬에 오일을 넉넉하게 두르고 다진 마늘과 슬라이스 한 마늘을 넣고 충분히 볶았다. 거기에다 굵직한 사이즈의 돼지고기를 넣고 볶았다. 돼지고기가 익으면 삶아놓은 파스타면을 넣으면 되는데, 나는 이번에 링귀니면을 선택했다. 일반 스파게티면보다 면적이 넓은 링귀니는 페스토로 파스타를 만들었을 때 페스토의 맛을 더 충분하게 즐길 수 있다. 면수를 함께 넣어 익히다가 불을 끄고 섬초 페스토와 소금으로 마무리 간을 하면 된다. 여기에 요즘 마트에서 샐러드 용으로 판매하는 시금치 순을 얹어주면 완성!!
돼지고기와 섬초의 궁합은 꽤 나이스하다. 돼지고기의 담백함에 달달하면서 촉촉한 섬초의 조합.. 어쩌면 우리는 시금치라는 채소를 너무 단순하게 먹어오고만 있었던 것을 아닐까 생각된다.
짙은 초록빛의 섬초가 달달하게 느껴지는 어느 겨울날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