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 단풍길 로드
해남 천년숲길
11월 셋째 주 남도여행
가을을 곱게 물들이던 단풍이 벌써 떠날 준비를 한다. 단풍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길을 나서보자. 한반도에서 가장 마지막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은 ‘땅끝’ 해남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두륜산이다. 해남군 삼산면을 중심으로 네 개의 면이 맞닿아 있는 곳에 자리한 두륜산은 한반도 땅 끝에서 다도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우뚝 솟아 있다. 두륜산에는 난대림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데 아름다운 계곡 숲길을 따라서 단풍나무 숲이 약 4km에 걸쳐 이어져 있다. 백양사 단풍이 절정을 맞이할 때 물들기 시작하던 두륜산 단풍이 11월의 마지막 단풍철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두륜산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두륜산 입구에서 대흥사까지 이어지는 숲길이다. 장춘길 또는 천년숲길로 불리는 이 길은 사시사철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봄의 꽃길이 여름 신록으로 이어지고 가을 단풍이 한겨울 눈길로 이어진다. 오랜 세월 자연이 빚은 숲길은 어머니의 아늑한 품처럼 포근하고 자연의 생명력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힐링 산책로다. 각양각색의 난대림이 단풍으로 물든 가을이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데 호젓한 단풍구경에 이만한 곳이 없다.
< 두륜산 단풍 >
< 두륜산 대흥사 천년숲길 단풍로드 >두륜이라는 이름은 산 모양이 사방으로 둥글게 솟아있는 ‘둥근머리’ 또는 ‘둥글넓적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해발 703m에 자리한 주봉 가련봉 아래로 해발 630m에 있는 고계봉과 두륜봉이 두륜산 등산 코스로 많이 찾는 곳이다. 산길이 험하지 않아서 등산 초보들도 정상인 가련봉까지 왕복 4~5시간이면 충분히 오르내리는데 이른 아침을 먹고 출발하면 점심 전에 돌아올 수 있다.
< 두륜산 오심재의 아침 >
등산에 자신 없다고 해도 두륜산 정상 구경은 할 수 있다. 해남 두륜산에는 고계봉으로 연결된 ‘케이블카’가 매일 운행한다. 두륜산 케이블카의 운행거리는 약 1.6km이며 편도 8분 거리다. 발밑으로 펼쳐진 오색 물결이 숲길에서 볼 수 없었던 두륜산 단풍의 매력을 더해준다. 케이블카 종점에서 내려서 나무 계단을 10분 정도 오르면 고계봉 정상에 도착하는데 주위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날이 좋을 때면 멀리 영암 월출산과 광주 무등산까지 손이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는데 부드럽게 이어지는 유려한 산세가 한 폭의 멋진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 두륜산 고계봉 >
대흥사는 2018년에 순천 선암사와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천년고찰이다. 오색 단풍길 끝에 자리한 대흥사는 두륜산 정상부가 사찰 뒤편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산자락 경계선이 누워있는 부처(와불) 형상으로 보여 이름 높은 사찰의 기품을 느끼게 해 준다.
대흥사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대흥사와 인연이 깊은 명승들의 활약 때문이다. 특히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나라를 지킨 서산대사는 대흥사를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요, 만세토록 파괴됨이 없는 곳이다’라면서 자신의 의발을 대흥사에 맡겼다고 한다.
대흥사와 인연이 깊은 또 한 분의 명승은 바로 초의선사다. 일지암이라는 암자에서 차를 재배하며 한국의 차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강진으로 유배를 왔던 다산 정약용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와도 교류를 하며 대흥사에 발자취를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흥사에서 머물던 때가 있었는데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1978년에 대흥사에서 8개월 동안 공부를 하고 1차 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대흥사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천년고찰이다 보니 보물급 문화재들이 많다. 대흥사의 문화재들이 보고 싶다면 사찰 옆 성보박물관에 들러보는 게 좋다. 서산대사가 맡겼던 의발부터 초의선사와 친분이 깊었던 추사 김정희가 쓴 ‘무량수각’ 편액의 진품까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해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를 두륜산 자락에서 만날 수 있다. 고산 윤선도 선생의 종갓집인 녹우당 대문 앞에 서 있는 5백년 된 은행나무다.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주옥같은 문학작품을 남긴 윤선도 선생의 녹우당은 구례 운조루와 함께 최고의 명당 터로 이름난 곳이다. 기운 좋은 땅에서 자란 은행나무는 여전히 왕성하게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으며 녹우당을 지키고 있다. 후손의 진사시 합격을 기념해 심었다는 은행나무는 가을마다 한 점 얼룩 없이 노랗게 물이 드는데 멀리서도 그 존재감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