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고층빌딩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신도림의 도림천을 지나 북쪽으로 가면 나오는 문래동. 푸석한 머리칼의 철강 노동자들, 이들의 공간은 무채색이다. 그 옆 철공소는 빨강, 파랑, 노랑이 섞인 녹슨 셔터가 굳게 닫혀있었다. 좁은 골목을 지나 남색 포터와 흰색 다마스가 주차되어있는 큰 골목, 통유리로 된 젊은 감성의 카페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낮에 일하던 철공 노동자들은 오리 감자탕을 삼십 년째 팔고 있는 ‘골목집’으로 향한다. 그들의 회식 자리는 주로 골목집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골목집은 철공 노동자들만의 아지트가 아닌 인스타그램 맛집을 찾는 젊은이들의 밥집으로 변모되었다. 해가 저문 문래동은 노동과 창작의 거리가 아닌, 분위기 좋은 술집을 찾는 청년들이 누비고 다니는 골목이다. 회사 로고가 이름표마냥 박힌 남색 잠바를 걸친 아저씨들은 해와 함께 사라지고, 무릎까지 올린 부츠를 또각거리는 젊은이들이 슬금슬금 들어온다. 그들은 미국 물먹은 ‘양키 통닭’과 홍콩을 표방한 ‘초쟁’ 앞에 떠듬떠듬 줄 서 있다.
‘올드 문래’ 개성 있게 꾸민 사람들은 낮은 회전율의 술집인 이곳 앞에서 서성인다. old mullae (올드 물래) 문래는 본래 ‘물레’이다. 일제강점기에 있던 방적공장에서 마을의 흔적을 가져온 이름이다. 올드 물래는 ‘문래동’의 낮과 밤이 지닌 공간적 의미를 한눈에 연출한다. 주황 텅스텐 조명 밑에 비친 인테리어는 할아버지의 시계 공장 같기도, 아니 어쩌면 과거에 문래의 성장을 이끌었던 방적 공장의 기구들과 닮아있다. 엔틱한 우드 테이블과 따뜻한 음식들의 뒤편에는 거무틱틱하고 짜 맞춰진 톱니바퀴가 장식되어있다. 또, 그 공간의 천장은 한옥의 형태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갈비뼈 모양의 서까래였다. 공간은 오묘하게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고 있지만, 공간의 직원들이 전해주는 음식은 현재임을 다시금 상기시키듯이 따끈했다. old mullae는 문래에 오래 거주하는 사람들이 아닌 문래 여행자들의 공간이다. 문래가 낯선이들에게 골목의 분위기를 한 번에 느낄 수 있으면서도, 다른 여행자들을 구경할 수 있는 동네 사랑방이다.
젠트리피케이션 _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기존 상권이 그 지역에서 쫓겨나는 현상
그러나 여행자가 많아질수록 때로는 주객전도가 일어나기도 한다. 여행자들이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그곳에서 장사를 시작하자, 원주민들은 집을 잃고 쫓겨난다. 철강 노동자들에게 ‘핫플레이스’라는 명칭이 마냥 좋은 수식어는 아니다. 카페와 술집이 생기면서 그곳의 땅값은 오르고 건물주가 아닌 이상 내야 할 세는 자연스럽게 오른다. 3차 산업은 2차 산업을 밀어내고 있다. 여행자들은 ‘공존’을 생각하고 들어왔지만, 원주민과의 ‘경쟁’ 구도가 만들어졌다. 문래동의 터줏대감들은 환한 카페 옆에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그림자 혹은 이방인의 구경거리로 보여지다. 만약 기술자들과 상인들이 ‘공존’ 해야 한다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면, 가로수길과 삼청동처럼 기존의 동네를 알아볼 수 없는 형체가 될 것이다. 이는 문래에 거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남은 과제만이 아니라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방인인 우리들에게도 주어진 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