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 Oct 25. 202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10년만의 지브리 여행

지브리 스튜디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후기와 해석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을 극장에서 보았다. 나의 어린 시절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낸 꿈들로 가득하다. 살아 움직이는 그의 그림 속 세계는 나의 어릴 적을 책임졌고,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 속에 숨어 사는 어린아이를 보살펴주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의 작품들과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있어 우리가 살아온 또 다른 세계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게 해준 존재였다. 지난번 극장에서 그의 작품을 보았을 때는 아주 어린 꼬마였다. 이후 그가 제 아들에게 스튜디오 지브리를 넘기며 자신은 붓을 놓겠다고 발표했을 때는 그렇게 내가 아는 세계로의 문이 하나 닫히는 건가 생각되었다. 하지만 은퇴를 번복하고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찾아왔다.

 

요즘 들어 늘 텅텅 비어있던 영화관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치 문을 닫아야 할 것만 같던 놀이공원에 다시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는 듯한 어리둥절하고 설레는 기분이었다. 관객으로 가득 찬 영화관으로 들어가 경건히 좌석에 앉아 상영을 기다린다. 일부러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찾아보지 않고 영화를 기다렸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세계는 한두 문장 따위로 요약할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이 미지의 세계를 방문하는 나의 경건한 마음가짐이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전쟁 시기를 살아가는 일본인 학생, 마히토가 실종된 새어머니 나츠코를 찾아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탑으로 들어서며 겪는 이야기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는 감히 문자 따위로 정의할 수 없다. 이는 영화의 시작 배경에 대한 설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영화의 내용은 스크린으로 만나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영화에서 발견한 이야기들을 풀어내 보도록 할까.


* 본 게시글은 영화에 대한 후기이자 해석이기에 영화 내용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 (C) 스튜디오 지브리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히미와 와라와라

탑 속의 히미는 불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어린 소녀다. 그녀는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하늘로 오르는 와라와라들을 펠리컨들로부터 구하기 위해 불을 쏘아 올리며 등장한다. 하지만 그녀는 더 많은 와라와라들을 구하고자 무작위로 일부 와라와라들에게 불을 붙여 무기처럼 활용한다. 마히토는 그런 히미에게 와라와라들을 불태우지 말라고 소리치지만, 키리코는 히미에게 고맙다고 소리친다. 히미는 와라와라의 일부를 죽인 것으로 비난받아야 할까, 아니면 더 많은 이들을 구한 것으로 칭송받아야 할까?

 

# 펠리컨과 와라와라

마히토는 히미의 공격을 받아 화상을 입어 죽음을 앞둔 펠리컨을 발견한다. 하지만 물고기가 없는 저주 받은 바다의 세계에서 펠리컨들이 살기 위해 먹을 것은 와라와라 뿐이었다. 새로 태어나는 새들은 점차 나는 법을 잊어버리기 시작하고, 먹이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펠리컨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들은 아이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잊어가는 상황에서, 남은 이들이 죽음을 마주하거나 혹은 다른 존재를 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 사람을 잡아먹는 앵무새

앵무새는 마히토와 주인공 일행을 잡아먹으려 하는 악당과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그들의 선조는 탑의 주인인 마히토의 할아버지가 탑으로 데려와 키운 앵무새들이다. 탑 속의 앵무새들은 세대를 거쳐 주인조차 위협할 만한 기괴한 괴물로 변화했다. 하지만 지난 시간 그들은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그 때문에 탑의 상부, 주인의 정원에서 마주한 풀과 나무, 열매가 가득한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탑 속에서 살아온 그들은 흉측한 괴물로 변해버린 걸까, 혹은 살아남기 위해 발전한 것일까?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 제목처럼 우리들에게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던진다. 아마 정해진 답은 없을 것이다. 온전하게 깨끗한, 모든 면에서 올바른 선택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앞에 주어진 선택지들에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뿐 아닐까.


그런데 <모노노케 히메>의 정령들을 연상시키는 '와라와라'들은 지브리의 다음 마스코트가 될 수 있을까? (C) 스튜디오 지브리


▶ 탑의 세계와 마히토


탑의 주인, 마히토의 할아버지는 하늘에서 떨어진 돌에서 얻은 힘으로 탑 속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탑 속의 세계는 할아버지가 쌓아 올린 돌로 된 작은 블록 탑으로 유지된다. 그런데 그 작은 블록 탑은 위태위태하기 그지없다. 마히토가 머릿속에 떠올렸던 이미지와 같이, 분명 더 견고한 탑을 쌓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할아버지의 블록 탑은 어린아이가 마구잡이로 쌓아 올린 장난감 블록처럼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그런 탑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새로운 블록들로 새로운 블록 탑을 세워 지금을 유지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새로운 주인이 되면 마히토는 자신이 살아온 바깥 세계에서는 실종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탑의 주인이 되면 마히토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일정한 시간마다 블록을 쌓고, 계속 새로운 탑을 만들어가면서 그 세계를 지켜야만 한다.

 

블록 탑은 하늘에서 온 돌 위에 지은 할아버지의 탑이자, 그 탑 속에 만들어진 세계이다. 그 속에는 분명 앵무새와 와라와라들이, 펠리컨들이, 그리고 생명을 잃은 이들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위태위태한 탑에서 살아남기 위해 앵무새들은 기괴한 괴물로 성장해야만 했고, 펠리컨들은 불에 타오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다른 생명을 잡아먹어야만 했다.

 

할아버지는 탑은 생명과도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곰팡이가 피기도, 안 좋은 것들이 생기고 썩기도 한다고. 탑은 국가이기도, 민족이기도, 세계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그런 생명 같은 탑에 생긴 변화를 그저 곰팡이와 썩은 부분처럼 치부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고 변화해 온 존재들의 발버둥을 새로운 탑을 쌓는 것으로 무마하고자 했다.

 

그러나 마히토는 자신 또한 악의가 깃든 존재에 불과하다며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택한다. 그가 자신의 세계로 돌아올 때, 탑에 있던 앵무새와 펠리컨들도 탑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결국 그들은 환상의 존재가 아니라, 생명이 깃든 살아있는 존재들이었다. 진실처럼 보였지만 허상으로 가득했던, 너무도 위태위태하여 그 속의 존재들을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는 구석으로 몰아넣었던 탑으로부터 빠져나오며, 앵무새와 펠리컨은 모두 본연의 모습들로 돌아간다. 마치 마녀의 저주가 풀리 듯이 말이다.


탑의 주인, 마히토의 할아버지는 왠지 지브리 어딘가에서 본 듯하다 (C) 스튜디오 지브리


▶ 탑의 주인, 할아버지에게서 보이는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올린 탑의 주인은 왜인지 미야자키 하야오를 떠올리게만 한다. 탑의 주인, 마히토의 할아버지는 왠지 모르는 이끌림으로부터 만난 하늘에서 떨어진 돌로부터 우연과도 같이 세계를 만들 힘을 얻어 그만의 세계를 쌓아 올렸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후손에게 전하고자 했다. 후손이 자신이 만들어온 세계를 이어나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후손인 마히토는 탑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탑 밖의 자신이 살아온 세계로 나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를 택한다. 고난이 가득한 바깥 세계로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또한 스튜디오 지브리를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은퇴하였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작품들이 만들어낸 시간이라는 그림자에 가렸던 것일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은 재능이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다 몇 년 후, 그는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붓을 들어 지브리의 세계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할아버지와 마히토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그의 아들은 아닐까.


▶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안녕일까?


영화의 마지막 이르러 탑 밖으로 빠져나온 마히토에게 왜가리는 탑 안에서의 일을 기억하냐고 묻는다. 보통은 탑 밖으로 나왔으면 안에서의 일은 잊는다고 한다. 마히토처럼 탑 속의 물건을 가지고 있어 당장은 지난 일들을 기억하더라도, 결국 천천히 잊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을 남기고 잘 지내라는 인사와 함께 왜가리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탑 밖으로 마히토가 빠져나오며 관객들도 영화가 끝에 거의 다다랐음을 느낀다. 그렇게 주인공이 탑 밖으로 나오는 순간 관객들도 지브리의 세계로부터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런 우리에게 왜가리는 안에서의 일은 결국 잊게 될 것이라 전한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스크린 앞에서 지브리의 세계를 여행하던 그 순간으로부터 벗어나 각자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렇게 탑 속의 세계는 점차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우리의 어린 시절이자, 어른이 된 우리를 감싸주는 존재이다.


그렇지만 탑 속의 앵무새와 펠리컨들이 허상이 아니었던 것처럼, 지브리의 세계 속에서 우리가 만난 존재들은 허상이 아니다. 숲속 커다란 회색 친구, 하늘을 나는 빨간 리본의 소녀와 검은 고양이, 어느 숲속 깊은 곳의 사슴신, 강물의 푸른빛을 지닌 용, 별을 삼킨 소년, 두발로 걸어 다니는 고양이들. 그들은 모두 스크린이라는 다른 세계 속에서 만난 살아 숨 쉬는 의미 있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부디 미야자키 하야오가 쌓아 올린 세계로의 이번 여행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바라며, 내가 지브리의 세계 속에서 가지고 나온 추억의 조각은 부디 강한 힘으로 오래오래 나와 함께 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2023)

제작 스튜디오 지브리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산토키 소마 (마히토), 스다 마사키 (왜가리), 아이묭 (히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