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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향수집가 May 14. 2024

<미드나잇 인 파리>_낭만, 그리고 낭만이라는 착각

[계졀영화 # 시간의 틈에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슬그머니 날씨의 눈치를 보며 창문을 열어 놓아도 괜찮은 걸 보아하니 겨울과 여름 사이, 일 년 중 가장 소중한 계절이 찾아왔다. 뚜렷한 사계절이 장점이라던 한국의 계절 변화는 어느샌가 겨울과 여름, 그리고 그사이 짧디 짧게 스쳐 지나가는 봄가을로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이 짧디 짧은 완벽한 계절에는 매 순간을 만끽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텅텅 비었던 거리는 산책에 나선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공원의 잔디밭에는 돗자리를 펴고 하하 호호 청춘을 즐기는 이들이, 서늘한 그늘에 앉아 책이나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겨울과 여름 사이, 혹은 여름과 겨울 사이, 일 년 중 가장 짧고 소중한 이 계절에서 열심히 즐겨야 할 것은 바로 밤 산책과 재즈다.

 

이 계절의 밤 산책은 그 여느 때와도 다른 낭만을 품고 있다. 은은한 바람 속 상쾌하게 산들거리는 녹색 잎사귀와 그 너머의 달빛. 평온한 이 계절에는 자연스럽게 재즈 음악을 흥얼거리게 된다. 여유와 낭만이 가득한 이 계절, 홀로 밤 산책을 즐기며 익숙한 거리를 모험한다. 그렇게 자유로운 낭만에 취해 돌아온 방을 노란 조명으로 가득 밝힌 후, 창문을 열고 살랑이는 밤바람을 즐긴다. 쉬이 가라앉지 않는 밤 산책의 흥에 재즈와 와인의 페어링을 즐기다 보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찾게 된다.


좌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포스터 / 우 : 주인공 길(우)과 과거의 여인 이네즈(좌) © 2011 Gravier Productions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주인공인 작가 길이 밤거리를 산책하던 중 과거로 가게 되며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다. 약혼녀와 그녀의 부모님과 함께 파리에 여행을 온 주인공 길. 그런데 약혼녀와 길의 사이는 그다지 돈독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각자의 일정을 보내던 중 길은 과거로 가는 택시에 올라타게 된다. 오래된 재즈와 샹송으로 가득한 1920년대 파리 속에서 길은 과거의 예술가들을 만난다.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매혹적인 여성도.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불편한 이야기 하나를 하자면, 본 영화의 감독 우디 앨런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러한 그의 면모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왜곡된 인물상으로 드러나고는 한다. 대표적으로 그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여성은 주로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바람인 듯 아닌 듯 애매한 외줄 타기를 하던 남성은 결국 상대 여자가 바람나며 영화의 마지막이 되어 제삼의 여인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는 존재로 등장한다. 감독 우디 앨런의 이러한 왜곡된 인물상과 행태에도 불구하고 오늘 그의 작품을 가져왔다. 그 이유는 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이맘때만 되면 떠오르는가를 알기 위해서이다.


영화의 도입부, 감독 우디 앨런이 담아낸 베이지색 파리의 전경 © 2011 Gravier Productions


파리를 사랑하는 이에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낭만이다.

 

빈티지 필름 카메라로 담아낸 듯한 베이지색의 파리 풍경이 음악 <Si Tu Vois Ma Mere>의 색소폰 선율을 따라 흐르며 영화는 시작된다. 음악에 어우러진 파리의 풍경은 현실보다 더욱 클래식하고 낭만적으로만 느껴진다. 그렇게 이 영화가 그려내는 파리의 낭만은 영화 도입부부터 펼쳐진다. 첫 대사부터 “정말 대박이야! 이런 도시는 어디에도 없어. 과거에도 없었고!”라며 파리를 찬양한다. 시작부터 몽환적인 음악과 색감으로 관객들을 홀린 듯이 파리로 데려가더니 주인공의 대사로 파리는 환상적이라는 인식을 박아 넣는다.

 

영화 내내 펼쳐지는 파리의 모습 또한 환상적이다. 주황빛 가로등이 밝히는 고풍스러운 파리의 거리와 건물들. 예술가들의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파리의 명소들. 재즈와 함께 흐르는 환상적인 파리의 모습은 주인공 길을 홀린 것과 같이 관객들을 파리에 빠져들게 한다. 영화 속에서는 특히 주인공이 사랑하는 1920년대 파리의 매력을 매혹적으로 담아내었다. 빛바랜 오래된 사진으로만 기억되던 당대 파리의 패션, 음악, 파티와 같은 그 시대의 문화를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과거가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담아낸다.

 

그렇게 자존심 상하게도 감독 우디 앨런은 낭만의 도시, 파리의 매력을 너무도 잘 녹여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감독 우디 앨런이 필름에 담아낸 파리에 대한 예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화 속 헤밍웨이(코리 스톨), 달리(애드리언 브로디), 피츠제럴드 부부(알리슨 필, 톰 히들스턴) © 2011 Gravier Productions


예술을 사랑하는 이에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낭만이다.

 

이 영화를 처음 만났던 그때, 영화 속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드나잇 인 파리>에는 1920년대 파리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예술가가 등장한다. 스콧 피츠제럴드 작가 부부, 작사가 콜 포터, 화가 피카소 등. 관객은 영화 속 주인공과 함께 과거의 파리를 여행하며 이러한 희대의 예술가들을 만나게 된다. 당대 낭만의 도시 파리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으로 벅찬 상황에 희대의 예술가들을 던져놓는 것이다. 이같이 영화 속에 예술가가 등장하는 일이 그다지 드물지는 않다. 그런데도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예술가들의 등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남다른 싱크로율 덕분이다.

 

갑자기 과거로 던져져 음악과 문화 등 색다른 배경만으로 충분히 흥분해 있는 주인공과 관객 앞에 마치 아무런 특별한 점 없는 등장인물인 마냥 대작가 헤밍웨이가 등장한다. 특히 과거로 향하는 택시 속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으로 전쟁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는 헤밍웨이의 모습이 롱테이크로 잡히는 순간에는 저도 몰래 숨을 죽이게 된다. 반면 오묘한 발음으로 “달리!”를 외치는 맑은 눈을 가진 기괴한 사내, 화가 달리가 등장하는 순간에는 절로 유쾌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속에서 예술가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과 실제 예술가들 간의 싱크로율이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로 유사하다. 그들의 행동과 말투, 대사 하나하나가 시간 여행을 통해 실제 예술가들을 만난 것만 같이 느껴지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각 예술가가 지닌 그들만의 독창적인 매력을 마치 빙의라도 한 듯이 뿜어낸다.

 

그렇기에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영화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을 많이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한층 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빠져들게 된다. 시간을 건너 희대의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는 일은 예술을 사랑하는 이라면 한 번쯤 꿈꿔보았던 낭만이기에.


지금에 적응하지 못해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 혹은 다른 무언가에 낭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던가 © 2011 Gravier Productions


이렇게 <미드나잇 인 파리>는 낭만을 보여주더니 현실을 던져 넣는다.

 

감독 우디 앨런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관객이 낭만에 빠져들게 만든다. 낭만의 도시 파리의 모습과 재즈의 선율로 사람을 홀리더니 희대의 예술가들을 등장시켜 혼을 빼놓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현실을 던져 넣으며 영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 아름답고도 유약한 존재

영화 속 예술가들은 아름답고도 쉽게 부서질 듯하다. 작가 젤다 피츠제럴드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며 한밤중 센 강에 뛰어들려고 한다. 화가 피카소는 애인이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여행을 떠나자 치밀어 오르는 화에 진정하지 못한다. 희대의 예술가들은 아름답다. 하지만 여느 인간과 같이 유약하고 쉽게 부서질 듯하다. 그들은 당장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열정적으로 분노하고, 사랑하고, 노력하고, 슬퍼하며, 온몸으로 이에 부딪힌다. 이처럼 한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로서 인간이란 존재는 무척이나 유약하고도 불안정하며, 동시에 아름답게 빛난다.

 

# 낭만이라는 착각

1920년대 빗속의 파리에 살고 싶다는 길을 두고 약혼녀와 친구들은 비웃는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주인공을 비웃고 따돌리듯 행동하는 약혼녀와 친구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시 영화를 보다 보면 현대의 사람들 속에 쉬이 어울리지 못하는 길의 행동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주인공 길은 과거에서 만난 여성 이네즈와 함께 또 한 번의 과거로 여행을 가게 되면서 과거가 현재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이 낭만적인 착각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이야기한다.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족스럽죠. 삶이란 그런 거니까.”

 

 

사람이란 존재는 늘 삶에 대해 온전히 만족하지 못한 채 인생을 살아간다. 그렇게 조금 더 발전하기를,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기를 꿈꾸며 노력한다. 그런데 때로 이러한 노력은 우리를 잡아먹기도 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노력하는 우리가 현실을 놓치게끔 만든다. 반대로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는 한다. 행동하지 않는 이는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채 머나먼 곳을 바라만 보게 되니 말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꿈꾸는 그 환경 혹은 미래 또한 낭만이라는 착각에 지나지 않고는 한다. 결국 우리가 그 환경, 미래에 도달해 살다 보면 우리는 이내 또 다른 낭만을 가슴속에 품게 될 테니 말이다.


낭만 속에 살게 되면 그 또한 현실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그럼 그다음 낭만은 무엇이 될까? © 2011 Gravier Productions


시대와 시대 사이, 계절과 계절 사이,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러면서 다가올 시간의 어느 순간, 지난 기억 속의 과거, 지금의 장소가 아닌 다른 어딘가, 지금이 아닌 언젠가를 꿈꾼다. 한겨울의 살을 에는 추위를 마주한 사람이 따뜻한 휴양지의 여름 바다를 꿈꾸고, 한여름의 살인적인 더위에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꿈꾸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이 계절과 계절 사이, 시간의 틈에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더욱 보고파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와 같이 우리가 갖지 못한 것에 낭만이라는 착각을 품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현재를 살아보자. “둘러봐요, 모든 거리가 각각 하나의 예술품이에요.”라는 주인공 길의 대사와 같이, 찬찬히 살펴보면 지금의 순간 또한 아름다운 미래이자 과거, 그리고 짧디 짧게 빛나는 현재다.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

감독  우디 앨런

주연  오웬 윌슨

조연  마리옹 꼬띠아르, 레이첼 맥아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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