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언제쯤부터일까
사실 어릴 적부터 늘 함께해 온 영화를 두고 내가 그를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와 함께 하는 주말에 대화보다는 텔레비전 앞에서 본 영화들 덕분일까,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이 없는 평일에 홀로 집을 지키며 마주한 영화들 덕분일까, 친구들과 함께 찾은 영화관의 암흑 속에서 나를 스크린 속으로 데려갔던 영화들 덕분일까.
생각해 보면 영화는 늘 함께였다. 부모님과 텔레비전을 볼 때도 영화 채널 속 영화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당시에는 지상파 채널에서도 다양한 영화 프로그램을 편성해 늘 다채로운 영화를 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친구들과 함께 한 약속에는 영화관이 빠지지 않았다. 친구와 애인을 만나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게 당연했다. 영화관에는 늘 보고 싶은 영화가 최소 두 편은 있었기에 영화를 고르기가 어렵지 않았다. 학기가 끝나가는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영화를 틀어주고는 하셨다. 시험은 끝났지만 방학이 오지 않은 그 애매한 시간,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 함께 보는 영화는 우리를 웃기고 울렸다.
스무 살 때까지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게 있어 영화는 더욱 자연스러운 환경이었다. 동네에는 영화 촬영을 위한 세트장이 있는 요트 경기장이 있었고, 학교와 가까운 해운대 바닷가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 행사가 열렸다. 몇 년이 지나니 집 앞에 영화의 전당이 들어오고,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 레드카펫이 보이기 시작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개최되는 영화제를 보며 '그래, 내가 부산 사람인데 부산국제영화제는 한 번 가봐야지'하는 생각으로 2013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찾았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영화제에 방문하며 나도 모르는 새 서서히 영화라는 것에 젖어들었다.
'나는 언제부터 영화와 영화제를 좋아했을까?' 하는 질문에 아마 나는 평생 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 속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건네받은 안성기 배우님의 이름표였다.
아마도 2013년이었을 거다. 그 해의 부산국제영화제는 여느 축제와 같이 연예인을 보러 온 학생들이 가득했던 영화제였다. 레드카펫을 걷는 배우들을 봤으면 됐다고 개막작을 끝까지 보지도 않고 나가던 학생들 사이, 친구 하나를 꼬드겨 개막작이 궁금하다며 쌀쌀해져 가는 밤바람을 맞으며 처음 듣는 인도 영화(<바라: 축복>)를 끝까지 봤다. 인도의 아름다운 선명한 색감과 주인공 무희의 춤선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은 영화 속 장면이 아니었다.
개막작의 상영이 끝나 레드카펫을 따라 행사장을 나가던 길, 제일 앞 구역의 연예인들 자리에 붙은 이름표를 떼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름표라고 해봐야 A4 용지에 배우의 이름이 프린트된 게 전부였지만,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젊은 배우의 이름표는 당연히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남아있는 이름표들 사이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표가 눈에 띄었다. '아직도 이분 이름표가 남아 있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럼 내가 가져갈래!' 하는 생각으로 안성기 배우님의 이름표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한 아주머니 관객 분이 "어머, 그거 떼가면 안 될걸?"하고 말리셨다. '아차, 내가 무례한 행동을 했구나' 싶은 생각에 손을 떼는데, 누군가 활짝 웃으며 이름표를 떼어 내 손에 꼭 쥐어주었다.
"가져가도 돼, 왜 안돼! 안성기 배우님을 좋아하는구나." 활짝 웃으며 내게 안성기 배우님의 이름표를 건넨 사람은 멋진 정장을 입은 한 남자분이었다. 가슴팍에 황금색 나무 배지를 단 그는 어린 내가 안성기 배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기쁜 듯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너무도 행복한 그의 미소 앞에서 '내가 이걸 받아도 될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기뻐할까' 싶은 생각으로 어벙벙한 상태의 나는 이름표를 건네받았다. 물론 지금은 그 사람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으며, 그때의 그 이름표는 본가의 책장 어디에 있을지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어린 친구는 그 장면을 평생 품고 살 듯하다. 어쩌면 그 이름표와 함께 그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옮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