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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Jan 15. 2024

30. 건망증과 혼잣말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학생시절. 나는 뛰어나게 영특하진 못했지만 기억력 하나는 좋았었다. 암기과목은 들인 노력에 비해 높은 점수를 곧잘 받았으며, 암송 미션이 주어지면 빠른 시간에 암송을 해내어 칭찬을 받기도 했다. 암기가 어렵다는 어린 둘째에게, 아빠는 기억력이 뛰어나 암기는 너무 쉬웠다며 자랑질을 해댔다.


게다가 7, 8년 전만 하여도, 뛰어난 기억력, 이를 바탕으로 한 냉철한 분석력 빠른 판단력으로 직장에서 펄펄 날던 나였다.(글에 맛을 더하기 위한 심히 과장된 표현이다)


그런데 어느 땐가부터, 늙어감의 상징처럼 기억력이 급속히 감퇴되고 있다. 그리하여 아내와 나는 하나의 개그 코너 같은 진풍경을 종종 만들어 낸다. 상황은 이렇다. 거실 소파에 앉아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를 나누다 나나 아내 중 누군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문장 가운데 어느 한 단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면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그거 있잖아" 하며 상대방의 도움을 구하나, 상대방도 생각지 않는다는 듯 두 눈만 그르르 굴리며 깜박인다. 결국은 생각나지 않는 단어를 이렇게 저렇게 풀어 설명하면 "맞아. 그런데 나도 그 단어가 생각이 안 나"로 끝을 맺게 된다. 물론 이후에 치매 예방 차원에서 인터넷을 모두 뒤져서라도 끝끝내 그 단어를 찾아내어 다시 외운다.


어디 이뿐이랴. 냉장고를 향해 직진하던 나는 냉장고 문을 연 순간, 멍하니 서있다. 마침 근방에 있던 아내가 "우유 꺼내려고 했던 것 아니야?"라고 힌트를 준다. "아. 맞다" 그제야 최면이 풀린 듯 내 다음 동작이 생각 나 움직인다.


큰일이다. 늙어감에 따른 건망증 외에도 요즘은 혼잣말까지 하고 있다. 분명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끔 그 생각이 살며시 입 밖으로 흘러나와 중얼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젊었을 때 나이 드신 어른들이 겪던 건망증과 혼잣말을 나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ㅇㅇ구에서 배회중인 ㅇㅇㅇ씨를 찾습니다(남, 77세)' 요즘 핸드폰에 자주 뜨는 '안전안내문자'이다. 아마도 건망증이 심화되어 치매에 이르신 노인들일 것이다. 문자가 뜰 때마다, '치매 걸리신 어르신이 너무 많아져 걱정이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와 아내도 치매 없이 건강한 정신으로 살다가 하늘나라에 가야 할 텐데'라는 염원이 가득해진다.


근래 들어 치매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치매가 심해지면 요양원에서 마지막 생을 마치는 경우도 많아지는 것 같다. 물론 함께 하는 가족의 일상적인 삶의 보전을 위해 요양원 입소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마지막 시간들을 온전한 정신과 육체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다 숨을 거두고 싶은 작은 소망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참 전에 어머니가 나에게 던지셨던 말씀 하나가 요즈음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늙어 정신이 없어도 요양원은 가기 싫은데..." 차가운 바람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베란다 창밖으로 넘겨 보면서, 새해의 소원을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저의 소망을, 부모님과 뭇 어르신들의 건강을 허락해 주소서"

출처: 네이버(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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