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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Sep 10. 2024

46. 친구에 관하여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즈음도 가끔 만나는 사람이 있다.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넉살 좋게 나를 "형님"이라 부르던 친구다.


직장업무 때문에 만나는 고객들은 사적 감정을 섞지 않고 공과사를 확실히 구분하던 나였다. 그런데 이 친구는 꽤 긴 시간 직장생활에서 알게 된 고객들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교분을 이어오는 사람이 되었다.


오랜만에 그와 저녁을 같이하며 그간의 삶의 사건들을 나누던 중, 그가 긴 한숨과 함께 크게 상심했던  일을 테이블 위에 놓인 해장국과 소주병 사이에 두서없이 늘어놓는다.


이야기인즉슨, 최근 정기적으로 만나 교류하던 친구들과 사이가 틀어져 속이 많이 상했다. 본인은 그들을 좋아해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최선을 다했으나 그들의 반응은 미지근했고, 이러한 일들이 쌓이다 보니 자신만 손해를 본듯한 느낌이어서 화가 났고, 결국은 그들과의 친분을 단절했다는 것이었다.


그를 관찰해 온 바에 의하면, 그는 예전부터 사람들에게 정을 많이 주고, 그들로부터 돌아오는 응답이 그가 원하는 만큼 크지 않으면 가끔씩 상처를 받곤 하는 인간유형이었다.


물론 인간관계로부터 상처를 입는 경우 이와 같은 사유가 부분 것다. 그렇지만 그는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보다 상처가 더 크고 오래가는 것 같았다.


이러한 그가 인간관계에서 받는 상처를 줄여주고 싶은 마음에  친구 사귀는 방법을 슬며시 그의 앞에 꺼내 놓았다. 


"친구를 사귈 때는 2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면 좋을 것 같. 하나는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은 괘념치 상대방에게 온전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주는 거야. 그러면 상처받을 일 없을 . 그러나 신이 아닌 인간인 이상 거의 불가능하겠지. 또 하나는 미리 '관계의 틈'을 만들어 놓고 우정을 나누는 거야. ''은 도로의 방지턱 같은 역할을 하여 완전히 밀착 관계 막아 수 있을 거야. 그래서 혹여 상대방이 서운하게 하더라도 본인이 입는 타격 크지 않을 거야."


친구가 되는 것은 감정적 이끌림으로 비교적 쉽게 시작될 수 있으나, 친구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서로의 존중과 노력이 필요.


친구이므로 편하게 이야기하고 쉽게 행동하다 보면 어느 순간 오해의 순간들이 쌓이고 관계가 멀어지게 된다. 친할수록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방은 어떤 생각이 들까?', '내가 이러한 행동을 하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한번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관계의 틈'은 인간관계로부터 상처받기 싫은 내가 본능적으로 갖게 된 나름의 스킬이다. 친구관계이긴 하지만 천생의 인연이 아닌 바에야, 성격의 차이나 오해로 언젠가는 이별이라는 차가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구관계를 맺을 때에야 최선을 다해 정을 주고받고, 인생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같이 하며 지내는 행복감을 누리게 되지만,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 그 관계가 소원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쿨하게 손 흔들어 헤어질 수도 있는 틈이 나를 감싸는 보호막 역할을 해준다.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 맺었던 우정은 사라져 버리고 서울로 상경하여 직장생활에 세월을 다 써버린 지금은 직장동료들과의 친구관계만 남아있다.


젊은 시절 겪었던 친구와의 헤어짐으로 인한 상실감이 나만의 '친구 맺기' 방식을 구축하고 '관계의 틈'을 통해 나 스스로를 방어하고 위로한다.


지금의 친구들도 나이 먹어 갈수록 물리적으로 또는 관계적으로 내 곁을 떠날 수 있고, 어느 날은 나 혼자라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에 치를 떨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태연하게, 나이 들어 쭈글 해진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고 소파에 앉아 돋보기 너머로 책을 들여다보거나, 나의 거처에서 함께하는 식물에 물을 주며 말을 걸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나의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의 웃음소리가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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