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온다.
자리에 누워 장래의 현실을 '머릿속 계산기'로 톡톡 톡톡 두드려본다. 나의 미래가 어찌 될지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면, 답답하여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머릿속 계산기는 수시로 발동한다. 이제껏 살아온 햇수를 따져보면 계산기가 닳고 닳아 오작동을 일으킬 수도 있을 법하다.
학생 시절엔 친구 간 우정, 인류애에 대한 관심이 많아 계산적으로 나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도 기꺼이 희생해야 한다는 사고가 강하였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에는 머릿속 계산기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직장을 얻고, 인간들이 생존을 위해 매진하는 삶의 정글에 내던져진 느낌을 가지고서부터 머릿속 계산기가 활성화되어 활발히 작동하였다.
업무의 배분, 인사이동, 승진을 앞에 두고는 머릿속 계산기를 어찌나 두드려 대었는지 모른다. 상대방의 업무는 나에게 주어진 업무에 비해 쉽고 양이 적은 것 같고, 상대방이 좋은 부서로 이동하고 승진하면 내가 피해를 입은 것만 같아 배가 아팠다.
게다가 친구와 형제자매와의 관계에도 머릿속 계산기는 발동이 된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나의 이익과 편리를 내어줄 수 있는 관계인데도 머릿속 계산기는 나의 허락도 없이 두드려지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었든지.
세상의 뉴스에 가끔씩 그려지는 인륜을 저버리는 사건들을 보며 마음 놓고 비판할 수 없었던 것은 나도 그러한 상황에 놓이면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스쳐갔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때때로 머릿속 계산기가 작동이 안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가끔 세상이 일컫는 착하다는 친구들을 보면 본인만 손해 보고 상대방은 이익을 얻는 행동을 고민 없이 척척 행한다. 옆에서 바라보던 나는 답답해하며 왜 상대방이 고마워하지도 않고 본인만 손해 보는 일을 하는지, 'No'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배에 힘주어 No를 외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가끔은 나도 인간인지라 머릿속 계산기는 손해가 난다고 경고하지만 무시하고 잠시 계산기를 꺼놓을 때도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감동으로 가슴이 벅찬 순간들이 온다. 예배를 드릴 때, 영화 등 예술작품을 관람할 때, 독서를 할 때 가슴이 뻐근해지거나, 눈시울이 붉어지며 마음속으로 되뇌게 된다. '그래, 한번 사는 인생 인간답게 살아보자' 이러한 때에는 마치 순교자처럼 작디작은 선행을 해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순간, 한 번의 사건에 불과하다. 머릿속 계산기는 여지없이 붉은 불을 깜빡이며 다시 켜진다.
이렇게 머릿속 계산기에 지배받는 삶을 구차하게 변명하자면, 이 험한 세상 타인에게 뒤지지 않고 실속을 차리며 야무지게 살아가려면 착한 사람보다는 똑 부러진 사람이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착하게 보이려 거절을 못해서 지금 이 고생이야'라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휴일이 다 지나가고 다시 하늘이 하얗게 밝아온다.
아무도 내 머릿속 계산기가 분주하게 작동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주 계산기를 꺼놓고 싶다. 이제 인간의 숲에서 점차 발을 빼고, 새벽공기 마시며 고요한 전나무 숲을 걷는 시간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머릿속 계산기는 붉은빛이 사라지며 "뚝"하고 꺼질 때가 더욱 많아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