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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의 개척자 Feb 17. 2022

05. 책은 그렇게 읽는 거야

늦지 않았어

중학교 신입반 수업에 들어갔다. 가장 두근두근 거리는 순간이다. 새로 만나는 학생들은 어떤 녀석들이고 책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첫 수업부터 눈에 띄는 두 명이 있었다. 이마에 '난 책 싫어해요'라고 쓰여 있었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다


"자, 최근에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는 사람?"


열 명의 학생 중에 한 두 명이 손을 든다. 


"무슨 책 읽었니?"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집요"


그렇다. 책을 읽는다고 대답하는 학생들도 대부분은 시험에 관련된 책이다. 그래도 책을 이렇게 읽는 녀석은 기특한 학생이다.


"자, 혹시 나는 최근 2-3년 동안에 교과서 외에 책을 읽지 않았다. 손들어 봐라"


정확하게 이마에 난 책 싫어요를 쓰고 있는 학생 두 명이 자신 있게 손 들었다. 


"그래 괜찮다. 그런데 너희 둘은 최근에 읽어 본 책이 뭐니?"

"없는데요. 최근에 읽은 책이 없는데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뭐니?"

"내 짝꿍 최영대요", "전 종이 봉지 공주요"

"그나마 억지로 읽었구나"

"오~~ 어떻게 아셨어요?"

"그거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거잖아"


두 명이 읽은 책은 초등학교 2-3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도서였다. 아마도 부모님이 학교 공부를 위해서 억지로 읽힌 것 같은데 그나마 그게 마지막이었다.


"너희 둘은 이따가 도서관으로 올래. 두 명은 책을 따로 골라보자"


점심시간에 두 명은 위축된 모습으로 도서관으로 왔다. 


"잘 왔다. 낯선 곳에 와서 겁먹지 말고 책이 너희 둘 잡아먹지 않는다. 자 도서관을 둘러보면서 너희들이 읽을 책을 골라와라"


미아가 된 녀석들은 도서관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어떤 책이 좋을지 나름 토론을 하면서 길을 찾고 있었다. 그러더니 '톰 소여의 모험'을 들고 온다.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로 나름 두꺼운 책을 골라왔다. 아마도 중학생이니 이 정도 책은 읽어야 할 것 같고, 제목은 많이 들어봐서 괜찮을 것 같아서 골라온 것 같았다.


"너희 이 책 못 읽을 것 같은데. 다른 책 골라와라"

"선생님 저희 이 책도 두꺼운데..."

"두꺼운 책 골라오라는 게 아니라, 이 책 보다 더 쉬운 책 가져오라고 얇아도 괜찮아. 진짜 너희 둘이 읽을 수 있는 책을 가져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다음 주까지 읽을 수 있는 책"


다시 두 녀석은 길을 떠난다. 한 참을 고르고 골라 가져온 책은 권정생 선생님의 '비나리 달이네 집'이었다.


"선생님 이것도 괜찮을까요?"

"아주 좋아. 작가도 훌륭하고, 내용도 좋은 책이야"

"진짜 이 책을 읽어도 된다고요?

"응"


아이들에게 잠깐 앉으라고 말했다


"너희 둘 진짜 책 안 읽었던 거 알지? 선생님이 부탁이 있는데, 너희들에게 절대 무리가 되는 책은 주지 않을게, 다만 쉬고 얇은 책이라도 꼭 읽어 올 수 있을까? 한 학기 동안 한번 열심히 해 보자"


"선생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이 책 읽습니다."


두 명은 의기양양하게 다음 주 수업에 들어왔다. 물론 숙제도 완벽하게 해 왔다.


"선생님 제가 몇 년 만에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하하하하"

"그래 멋지다. 그런데 독서 감상문 써야 하는데"

"네!"

"독서감상문 어렵지 않아"

"그거 어릴 때부터 너무 싫어했는데"

"나도 너희들이 쓴 독서감상문 읽는 거 싫어"


"지금부터 독서감상문 쓰는 것을 알려주겠습니다. 집중해 주세요. 자 내가 너희들에게 안 읽은 책을 숙제로 줄까? 안 줄까?"

"안 주십니다."

"그러면 내가 책 내용을 알까? 모를까?"

"아십니다"

"그걸 아는 녀석들이 종이 가득 내용을 쓰냐? 나를 시험하냐?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책도 제대로 안 읽은 너희들의 악필 요약을 종이 가득 읽어야 하니? 제발 독서감상문에 책 요약 쓰지 말아라. 그리고 너희들이 뭘 안다고 자꾸 작가와 글에 대해서 평가하니? 너희들이 평가할 자격이 되니?"

"안됩니다."

"그러니까 제발 독서감상문에 작가 평가질 하지 말아라"

"그럼 뭐 씁니까?"

"너희들 생각을 써라. 그런데 생각을 쓰라고 하면 힘들지? 그러니까 주말 드라마나 영화를 봤다고 생각하고 써라? 지금 학교에 와서 그 수다를 떠는 거야. 자 옆에 친구에게 지난주에 본 책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말로 해 본다. 시작!"


처음 해 본 수업에 학생들은 다들 어색해한다. 그래도 다들 얼마나 좋은가? 


"다들 수다 많이 떨었니? 넌 비내리 읽고 무슨 수다 떨었니?"

"저희 집 강아지가 생각났어요. 제가 가끔씩 저희 집 강아지에게 말을 걸거든요. 그래도 우리 집 개가 제 말은 끝까지 잘 들어줘요. 그래서 지금은 죽은 강아지가 생각났어요"

"그럼 그 이야기와 가장 생각 많이 나는 대화를 써 줄 수 있니?"

"그래도 되나요?"

"응 그게 진짜 독서감상문이야"


학생들은 나머지 시간 동안 자신들의 수다를 글로 적었다. 평생 독서감상문 다섯 줄도 못 적던 녀석들이 종이를 더 받아가면서 자기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종이를 받아서 읽을 때마다 마음 한편에 늘 눈물이 담긴다.


비나리 달이네 집을 읽던 이 두 녀석은 그렇게 독서를 하고 감상문을 쓰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나면 약간 더 두꺼운 책을 주고, 한 한기가 지날 무렵에는 더 두꺼운 책을,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는 이미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서가가 되었다. 지금은 훌륭한 사회인이 된 두 녀석이 너무나 멋지다. 걸음마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천히 단계를 밟아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선생님 아무래도 저희가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것 같습니다."

"무슨 주입식?"

"이제는 책을 읽지 않으면 죄를 지은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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