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지 않았어
중학교 신입반 수업에 들어갔다. 가장 두근두근 거리는 순간이다. 새로 만나는 학생들은 어떤 녀석들이고 책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첫 수업부터 눈에 띄는 두 명이 있었다. 이마에 '난 책 싫어해요'라고 쓰여 있었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다
"자, 최근에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는 사람?"
열 명의 학생 중에 한 두 명이 손을 든다.
"무슨 책 읽었니?"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집요"
그렇다. 책을 읽는다고 대답하는 학생들도 대부분은 시험에 관련된 책이다. 그래도 책을 이렇게 읽는 녀석은 기특한 학생이다.
"자, 혹시 나는 최근 2-3년 동안에 교과서 외에 책을 읽지 않았다. 손들어 봐라"
정확하게 이마에 난 책 싫어요를 쓰고 있는 학생 두 명이 자신 있게 손 들었다.
"그래 괜찮다. 그런데 너희 둘은 최근에 읽어 본 책이 뭐니?"
"없는데요. 최근에 읽은 책이 없는데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뭐니?"
"내 짝꿍 최영대요", "전 종이 봉지 공주요"
"그나마 억지로 읽었구나"
"오~~ 어떻게 아셨어요?"
"그거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거잖아"
두 명이 읽은 책은 초등학교 2-3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도서였다. 아마도 부모님이 학교 공부를 위해서 억지로 읽힌 것 같은데 그나마 그게 마지막이었다.
"너희 둘은 이따가 도서관으로 올래. 두 명은 책을 따로 골라보자"
점심시간에 두 명은 위축된 모습으로 도서관으로 왔다.
"잘 왔다. 낯선 곳에 와서 겁먹지 말고 책이 너희 둘 잡아먹지 않는다. 자 도서관을 둘러보면서 너희들이 읽을 책을 골라와라"
미아가 된 녀석들은 도서관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어떤 책이 좋을지 나름 토론을 하면서 길을 찾고 있었다. 그러더니 '톰 소여의 모험'을 들고 온다.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로 나름 두꺼운 책을 골라왔다. 아마도 중학생이니 이 정도 책은 읽어야 할 것 같고, 제목은 많이 들어봐서 괜찮을 것 같아서 골라온 것 같았다.
"너희 이 책 못 읽을 것 같은데. 다른 책 골라와라"
"선생님 저희 이 책도 두꺼운데..."
"두꺼운 책 골라오라는 게 아니라, 이 책 보다 더 쉬운 책 가져오라고 얇아도 괜찮아. 진짜 너희 둘이 읽을 수 있는 책을 가져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다음 주까지 읽을 수 있는 책"
다시 두 녀석은 길을 떠난다. 한 참을 고르고 골라 가져온 책은 권정생 선생님의 '비나리 달이네 집'이었다.
"선생님 이것도 괜찮을까요?"
"아주 좋아. 작가도 훌륭하고, 내용도 좋은 책이야"
"진짜 이 책을 읽어도 된다고요?
"응"
아이들에게 잠깐 앉으라고 말했다
"너희 둘 진짜 책 안 읽었던 거 알지? 선생님이 부탁이 있는데, 너희들에게 절대 무리가 되는 책은 주지 않을게, 다만 쉬고 얇은 책이라도 꼭 읽어 올 수 있을까? 한 학기 동안 한번 열심히 해 보자"
"선생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이 책 읽습니다."
두 명은 의기양양하게 다음 주 수업에 들어왔다. 물론 숙제도 완벽하게 해 왔다.
"선생님 제가 몇 년 만에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하하하하"
"그래 멋지다. 그런데 독서 감상문 써야 하는데"
"네!"
"독서감상문 어렵지 않아"
"그거 어릴 때부터 너무 싫어했는데"
"나도 너희들이 쓴 독서감상문 읽는 거 싫어"
"지금부터 독서감상문 쓰는 것을 알려주겠습니다. 집중해 주세요. 자 내가 너희들에게 안 읽은 책을 숙제로 줄까? 안 줄까?"
"안 주십니다."
"그러면 내가 책 내용을 알까? 모를까?"
"아십니다"
"그걸 아는 녀석들이 종이 가득 내용을 쓰냐? 나를 시험하냐?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책도 제대로 안 읽은 너희들의 악필 요약을 종이 가득 읽어야 하니? 제발 독서감상문에 책 요약 쓰지 말아라. 그리고 너희들이 뭘 안다고 자꾸 작가와 글에 대해서 평가하니? 너희들이 평가할 자격이 되니?"
"안됩니다."
"그러니까 제발 독서감상문에 작가 평가질 하지 말아라"
"그럼 뭐 씁니까?"
"너희들 생각을 써라. 그런데 생각을 쓰라고 하면 힘들지? 그러니까 주말 드라마나 영화를 봤다고 생각하고 써라? 지금 학교에 와서 그 수다를 떠는 거야. 자 옆에 친구에게 지난주에 본 책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말로 해 본다. 시작!"
처음 해 본 수업에 학생들은 다들 어색해한다. 그래도 다들 얼마나 좋은가?
"다들 수다 많이 떨었니? 넌 비내리 읽고 무슨 수다 떨었니?"
"저희 집 강아지가 생각났어요. 제가 가끔씩 저희 집 강아지에게 말을 걸거든요. 그래도 우리 집 개가 제 말은 끝까지 잘 들어줘요. 그래서 지금은 죽은 강아지가 생각났어요"
"그럼 그 이야기와 가장 생각 많이 나는 대화를 써 줄 수 있니?"
"그래도 되나요?"
"응 그게 진짜 독서감상문이야"
학생들은 나머지 시간 동안 자신들의 수다를 글로 적었다. 평생 독서감상문 다섯 줄도 못 적던 녀석들이 종이를 더 받아가면서 자기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종이를 받아서 읽을 때마다 마음 한편에 늘 눈물이 담긴다.
비나리 달이네 집을 읽던 이 두 녀석은 그렇게 독서를 하고 감상문을 쓰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나면 약간 더 두꺼운 책을 주고, 한 한기가 지날 무렵에는 더 두꺼운 책을,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는 이미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서가가 되었다. 지금은 훌륭한 사회인이 된 두 녀석이 너무나 멋지다. 걸음마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천히 단계를 밟아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선생님 아무래도 저희가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것 같습니다."
"무슨 주입식?"
"이제는 책을 읽지 않으면 죄를 지은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