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있던 주말 아침. 큰아이가 동생과 또 다퉜다. 사소한 일로 시작된 싸움이 서로 상처 주는 말로 번졌고, 결국 큰아이는 "동생만 편들어!"라고 소리치며 방문을 쾅 닫았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남매 사이의 질투와 원망, 사랑과 미움이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을 줄이야. 커피를 마시며 문득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이 떠올랐다. 그 소설 속 세 형제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우리 집 아이들의 모습과 겹쳐 보여서.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처음 읽은 건 20여 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였다.
외할머니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으셨고, 당연히 나에게도 정이 없었다. 외삼촌의 자식들만 예뻐하시며 "우리 손자들은 참 예쁘다"고 하실 때마다, 나는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그런 할머니였기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에도 큰 슬픔은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사실은 달랐다. 그 선택의 무게가 가슴을 짓눌렀다.
장례식장은 묘한 공기로 가득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엄마의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누구도 슬픔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큰외삼촌은 "어머니가 왜 그런 선택을 하셨을까"라며 한숨만 쉬어댔고, 작은 외삼촌은 "우리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들이 진심인지 자책인지 변명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조용히 울고 있었다. 사랑받지 못했던 딸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그런 어머니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죄책감의 눈물이었을까. 나는 20대의 어린 손녀로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의 복잡한 감정들 사이에서 내가 느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었다.
외삼촌들은 저마다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 속에는 서로를 향한 미묘한 원망이 섞여 있었다. "형이 더 자주 안부를 물어보셨으면", "동생이 어머니 마음을 좀 더 헤아렸으면"... 죽음 앞에서도 형제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묻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슬픔, 그리움, 죄책감, 그리고 왠지 모를 어색함까지.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던 사람의 죽음 앞에서 느껴야 할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 복잡한 감정들이 정리되지 않아 괴로웠다.
그날 밤 잠들지 못하고 서재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들었다. 『카라마조프 형제들』이었다. 몇 페이지를 넘기다가 만난 조시마 장로의 이 문장이 내 마음을 콕 찔렀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죄가 있다.
나는 모든 사람 앞에서, 모든 사람보다도 더 죄가 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외할머니의 마지막 선택도, 장례식장에서 본 어른들의 복잡한 모습도, 그리고 내가 느꼈던 혼란스러운 감정들도 모두 이 한 문장 안에 들어있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죄가 있다. 나는 모든 사람 앞에서, 모든 사람보다도 더 죄가 있다.
얼마나 무겁고도 깊은 깨달음인가.
『카라마조프 형제들』 이야기를 해볼까.
『카라마조프 형제들』은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작으로 여겨진다.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방탕한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와 그의 세 아들, 그리고 서자인 스메르댜코프의 이야기다.
이 소설은 가족사라기보다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들 - 신앙과 의심, 선악, 자유의지와 책임 - 을 다룬 철학적 대작이다. 맏아들 드미트리는 감각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으로, 아버지와 같은 여자 그루셴카를 두고 경쟁한다. 요즘으로 치면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타입이랄까. 그는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아버지와 닮아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돈 문제로 아버지와 자주 다투고, 결국 아버지 살해 용의자로 체포된다.
둘째 이반은 지식인이자 회의주의자다. 그는 "만약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한다. 현실의 악과 고통을 보며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특히 무고한 아이들의 고통을 보며 신의 정의에 의문을 품는다. 그의 "대심문관의 전설"은 문학사상 가장 깊이 있는 종교 철학적 텍스트 중 하나로 여겨진다. 오늘날로 치면 합리적 사고를 추구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고뇌에 빠진 지식인의 전형이다.
셋째 알료샤는 수도원에서 수행하는 신앙심 깊은 청년이다. 그는 조시마 장로 밑에서 영성을 키우며, 형들과 달리 순수하고 선량한 성품을 지녔다. 하지만 그 역시 완전하지 않다. 스승인 조시마 장로가 죽은 후 시신이 빨리 부패하자 잠시 신앙의 위기를 겪기도 한다. 현실의 선량한 사람들도 결국 의심과 흔들림을 겪는다는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서자 스메르댜코프는 음침하고 교활한 성격으로, 이반의 철학에 영향받아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논리로 실제로 아버지를 살해한다. 그는 지적으로는 뛰어나지만 도덕적 기준이 없는 인물로, 이반의 사상이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캐릭터다.
소설의 중심 사건은 아버지 표도르의 살해사건이다. 모든 아들들이 나름의 이유로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었기에 모두가 용의자가 된다. 하지만 진짜 살인자는 스메르댜코프였고, 그는 이반의 사상을 이용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결국 드미트리는 억울하게 시베리아 유배를 당하지만, 그는 자신이 "정신적으로는" 아버지를 죽였다며 속죄를 받아들인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이반이 알료샤에게 들려주는 "대심문관의 전설"이다. 예수가 다시 이 땅에 왔을 때, 스페인의 대심문관이 그를 체포하며 하는 말이 핵심이다. 인간은 자유를 감당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므로, 교회가 그들에게 빵과 안정을 주는 대신 자유를 거두어들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논리다. 이 이야기는 자유와 안전, 믿음과 의심이라는 영원한 딜레마를 다룬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소설이 자주 떠오른다.
특히 형제들 사이의 갈등을 볼 때마다. 큰아이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동생의 실수를 못 참아한다. 동생은 형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반항적이 된다. 둘 다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표현 방식이 달라서 서로 상처를 준다.
마치 카라마조프 형제들처럼.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팀 내에서도 각자 다른 가치관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어떤 동료는 드미트리처럼 감정적이고 직설적이며, 어떤 동료는 이반처럼 논리적이지만 냉소적이다. 또 어떤 동료는 알료샤처럼 선량하지만 때로는 현실감각이 부족하다. 이들이 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부딪히는 갈등들을 보면, 결국 인간은 어디서나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는 생각이 든다.
도스토옙스키의 천재성은 이런 복잡한 인간관계를 통해 철학적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던진다는 데 있다.
신은 존재하는가?
만약 신이 없다면 도덕은 무의미한가?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책임을 지는가?
이런 질문들이 추상적 논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물들의 고민과 행동을 통해 제기된다. 특히 알료샤가 조시마 장로로부터 받은 가르침이 인상적이다. "모든 사람 앞에서 모든 사람에게 죄가 있다"는 말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왜 죄가 있다는 걸까?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점 그 의미를 깨달아간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누군가의 고통에 무관심한 것도, 작은 불의를 외면하는 것도 결국은 전체의 선을 해치는 일이라는 것을. 며칠 전 아이들 싸움을 중재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형제라는 건 평생 함께 가야 할 사람들이야. 지금은 서로 미워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될 거야." 그러자 큰아이가 물었다.
"그럼 엄마는 왜 이모랑 삼촌이랑 안 친해?"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색한 관계로 지내고 있는 내 형제관계를 아이가 꿰뚫어 본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을 통해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각 인물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드미트리는 고통을 통해 구원을, 이반은 회의를 통해 진실을, 알료샤는 사랑을 통해 평화를 추구한다. 그리고 독자인 우리는 그들의 여정을 보며 우리 자신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 요즘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하며 생각한다. 이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까. 지금의 다툼들도 훗날에는 추억이 될까. 그리고 나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로 기억될까.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아버지처럼 원망받는 존재가 될까, 아니면 조시마 장로처럼 지혜로운 스승이 될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자식도, 완벽한 형제도 없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려 애쓰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도스토옙스키가 이 무거운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도 결국 그것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죄가 있다"는 조시마 장로의 말이 이제는 무겁지만 위로가 되는 진실로 다가온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더욱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고, 그것이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