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나를 괴롭히는 것들에게, 노인과 바다

by 바나나 슈즈

오늘 아침 창문을 열었더니 비가 내린 뒤의 상쾌한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나무들이 더욱 짙푸른 빛을 띠고, 길가의 작은 웅덩이에는 하늘이 담겨 있다. 출근길에 우산을 받쳐 들고 걸으며 생각했다. 이 빗물도 결국에는 바다로 향하겠지. 아득히 먼 바다. 내가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게 언제였더라. 작년 여름, 가족 여행으로 간 동해안에서였나.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던 그 해변에서 문득 떠올랐던 책 한 권.


지난겨울, 친정어머니가 길에서 넘어져 팔을 다치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할머니가 된 어머니가 병실 침대에 누워 계신 모습이 너무 작고 여려 보여 마음이 아팠다. 입원 첫날, 어머니 곁을 지키며 밤을 보내야 했는데, 병실 한쪽 책장에 누군가 두고 간 책들이 몇 권 있었다. 그중 낡은 '노인과 바다'가 눈에 띄었다. 어머니가 잠드신 틈에 그 오래된 책을 집어 들었다. 중간쯤에서 문득 마음을 콕 찌르는 한 문장을 만났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 법이다."


얼마나 강인하고 담담한 진리인가.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 삶의 위기 앞에서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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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이야기


'노인과 바다'는 쿠바의 노어부 산티아고의 이야기다. 그는 84일 동안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불운한 어부다. 요즘 말로 하면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는 셈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살라오(불운)'라고 부르며, 그의 소년 도우미 마놀린마저 부모의 명령으로 더 운 좋은 배로 옮겨가야 했다.


그러나 85일째, 노인은 혼자서 바다로 나간다. 그날, 그는 평생 본 것 중 가장 큰 청새치(marlin)를 낚는다. 하지만 이게 시작일 뿐이다. 청새치는 너무 커서 배에 끌어올릴 수 없고, 오히려 청새치가 노인의 작은 배를 끌고 바다 깊숙이 들어간다. 지금으로 치면 10kg짜리 도미를 낚았는데, 오히려 그 물고기가 당신을 끌고 바다로 들어가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노인은 이틀 밤낮을 청새치와 사투를 벌인다. 손은 밧줄에 베어 피가 나고, 등은 아프고, 음식과 물은 바닥나간다. 요즘 회사원이라면 벌써 "저 그만둘게요" 하고 사표를 던졌을 법한 상황이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청새치와 대화하며 존경과 사랑을 표하면서도, 끝까지 싸운다. "물고기야, 나는 널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너를 죽여야만 해."


마침내 사흘째 되는 날, 노인은 청새치를 작살로 찔러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피냄새를 맡고 상어 떼가 몰려온다. 노인은 상어들과 필사적으로 싸우지만, 결국 배에 묶어둔 청새치는 상어들의 밥이 되고, 노인이 마을로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뼈만 남은 물고기 골격뿐이었다.


마을에 돌아온 노인은 지쳐 쓰러져 잠든다. 다음 날 아침, 해변에 나온 어부들이 노인의 배에 묶인 거대한 청새치의 뼈를 보고 놀란다. 그제서야 그들은 노인이 얼마나 대단한 물고기를 잡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처절한 싸움을 벌였는지를 깨닫는다. 소년 마놀린은 노인에게 돌아와 앞으로도 함께하겠다고 약속한다. 노인은 다시 바다의 생선들과 야구 선수 디마지오에 대한 꿈을 꾸며 잠이 든다.



언뜻 보면 실패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는 인간 정신의 승리를 그린 소설이다. 노인은 물리적으로는 패배했을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밍웨이는 말한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 법이다."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노라니,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가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어머니는 평생 삼남매를 키우느라 자신을 돌볼 겨를조차 없이 살아오셨다. 배운 것이 많지 않아 돈을 벌 길도 막막했고,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늘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고 어머니를 구박했고, 그 속에서 어머니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뎠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어머니의 아침은 늘 재래식 부엌에서 시작됐는데. 연년생 삼남매의 아침밥을 차리고, 허겁지겁 도시락을 싸고, 등교 준비를 도우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곤로 대신 들여온 가스렌지 2구가 집안의 유일한 조리기구였고, 그마저도 불이 약해 조심스럽게 국을 끓이고 밥을 지으셔야 했다. 세탁기는커녕, 작은 짤순이 하나에 의지해 다섯 식구의 빨래를 돌리던 어머니의 손은 늘 거칠고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런 날들이 모여 어머니의 인생이 되었고, 그 인생의 무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이 이제 와서야 깨달아진다. 어머니의 지난 삶이 얼마나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와 닮아 있었는지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단한 싸움, 매일같이 반복되는 생존의 투쟁. 비록 눈에 보이는 승리도, 누군가의 칭찬도 없었지만, 어머니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


누군가의 어머니로, 한 가정의 버팀목으로, 어머니는 자신만의 바다에서 매일 청새치와 싸우고 계셨던 것이다. 세상의 상어들이 삶의 살점을 뜯어가도, 남은 뼈마저 지켜내며 묵묵히 버티던 그 시절. 그 손을 꼭 잡고 있자니, 이제는 내가 어머니의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에 함께 떠 있는 것만 같다.



직장에 다니는 누구나 한 번쯤은 ‘내 인생의 청새치’와 같은 프로젝트나 목표를 만나게 된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준비했지만,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혀 결과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순간도 있다. 회의실에서 발표가 외면당하거나, 수개월간 준비한 기획이 단 한 번의 평가로 무산될 때, 그 허탈함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퇴근길에 조용히 한숨을 내쉬거나, 집에 돌아와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다시 일상에 뛰어드는 나날. 누구나 그런 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


이럴 때마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가 떠오른다. 그는 거대한 청새치를 낚아 올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하지만, 결국 상어 떼에게 거의 모든 것을 빼앗겨 뼈만 남은 물고기를 끌고 돌아온다. 그러나 산티아고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구가 부러지면 새로운 도구를 만들고, 마지막에는 맨손으로라도 싸우며 자신의 싸움을 완주한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곤 한다.


헤밍웨이가 이 소설을 집필한 때 역시, 그의 명성이 바닥에 떨어지고 비평가들로부터 “이제 끝난 작가”라는 평가를 받던 시기였다. 산티아고가 84일 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던 것처럼, 헤밍웨이도 오랜 슬럼프와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글을 썼고,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다시 일어섰다. 이 소설이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바다에서 각자의 청새치와 싸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만의 바다를 건너고 있다. 일터에서, 가족 안에서, 혹은 마음 한구석에서 크고 작은 청새치와 씨름한다. 매번 이겨내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버거워 힘겨워지기도 한다. 그럴 때 오래도록 남는 문장이 있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 법이다."


삶은 늘 뜻대로 흘러주지 않는다. 한참을 애써도, 결국 남는 게 뼈뿐일 때도 있다. 그래도 그 과정에 깃든 의지와 존엄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 산티아고가 그랬듯, 세상이 등을 돌려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싸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게 바로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아닐까.


결국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손에 쥔 자기만의 끈기와 태도라는 걸, 이 한 문장이 가만히 일러준다. 살아가다 힘이 빠질 때, 문득 이 말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조금 단단해진다.


아무리 파도가 거세도, 아직 패배한 것은 아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다시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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