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한의원에 다녀왔다. 어쩌다 보니 완전히 밤을 새워 버려서 움직이는 게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2주 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여전히 온몸이 가렵지만 울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온몸에서 기력이 줄줄 새는데 눈으로 나가는 구멍만큼은 메워진 셈이다.
의사 선생님은 진맥 후 에너지가 목 아래까진 차올랐다고 했다. 고통 강도에 따라 어떻게 대처하는지,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도 조금 이야기하셨다. 식사량을 조금씩 늘려도 좋겠다는 말을 들었는데, 식단 조정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아직도 가공식품, 밀가루, 육류는 금지인 것 같다.
사실 식사량을 늘리라는 말을 듣기 전부터, 먹는 양이 늘었다. 그게 밤에 못 자고 낮에 자느라 아침을 못 먹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위가 조금 더 많은 양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수면 문제가 너무 커서 한 끼에 과식하지 않기 위해 주의하는 정도만 식사 문제에 정신력을 할애하고 있다.
일단 오랫동안 밤에 잠들지 못해 굳어진 수면 습관을 제대로 바로잡을 때가 되었다. 요 앞 사나흘 정도 일찍 자려고 낮에 일부러 자지 않고 버티거나 밖으로 나가곤 했는데 낮에 안 자더라도 밤에 못 자서 그냥 통으로 못 자는 상황이 자꾸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도 한의원에서 집에 돌아와서도 다시 잠들지 못한 채 지금까지 깨어있는 것이다.
한의원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는 자기 전에 무조건 수면제의 도움을 받았다. 다른 약은 끊어도 수면제는 못 끊었다. 그게 없으면 아예 잠들지 못하거나 잠들어도 꼭 악몽을 꾸고 가위를 눌리곤 했다. 내 몸에 있는 성분으로는 스스로 잠들지 못했던 것이다.
한방치료 초반에 가장 잘한 것 중에 하나가 수면제를 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을 먹은 것을 중단하는 일이라 몇 주간 귀신처럼 살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중단하지 않았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수면제를 먹었을 것이다.
지금도 잠들지 못하니 수면제 생각부터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게 있으면 이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잠들었을 텐데. 그러나 방심하다간 곧 의존하게 될 테다.
아직도 가렵지 않은 건 아니라 눈을 감고 그냥 누우면 주변 소리도 없으니 내 몸에 집중이 너무 잘 되어 가려운 게 실제보다 배는 커다랗게 느껴져서 책을 읽어주는 영상이나 다큐멘터리를 틀어 놓는데 그래도 몇 시간은 지나야 잠드는 것 같다.
조금 더 빠르게 잠드는 방법은 없을까.
푸른 새벽과는 멀어질 때가 됐다. 새벽이 오는 모습을 하염없이 관람하는 관객이 아니라 눈을 떴을 때 새 아침과 마주칠 수 있는 삶을 찾고 싶다.
추신.
오늘 읽은 글에서 자기 암시가 무의식을 바꾼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또 내게 거짓말을 한다. 나는 안 아프다, 나는 안 아프다…. 그 말을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외치면 언젠가 진실이 되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