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태엽 Dec 12. 2024

아픈 몸 수선하기 036

12월 12일


한의원에 다녀왔다. 기력이 명치 위로 올라온 뒤, 쇄골 아래와 명치 사이에서 한참을 오르내렸다.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며 가장 고생스러운 시기를 거쳐 이제는 나름 안정이 되었다. 밤이 아니면 낮에는 숨통이 좀 트였다. 조금 길게 산책을 해도 발목이 버텨줄 수 있어서, 며칠 전에는 바다도 보고 왔다. 비록 한번 기력이 상하면 회복되는데 많은 시간 고통을 다시 겪어야 해서 오래 머물 수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목격한 환상적인 노을은 몸에 각인된 고통을 잊기에 충분했다.

한의원에서는 이제 하루에 5포식 마시던 한약을 자기 전 1~2포 마시는 걸로 줄이자는 처방을 받았다. 위가 이제 음식을 소화하고 적게나마 영양분을 뽑아낼 수 있게 되어 한약으로 보충하던 비중을 축소하게 됐다.

물에만 잠겨있던 것 같았는데, 그래도 꾸준히 수면을 향해 헤엄치고 있었다는 걸 증명하듯 처방이 달라졌다.

이제 수면으로 가끔 깊이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정도는 된 것 같다.


1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환자도 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식단을 엄격하게 잘 지켜서 결과가 조금 더 빨리 나온 것 같다고 하셨다. 한의사 선생님은 긴 시간 투자해 몸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치료 기간을 거치며 마음도 성장해야 한다고 하셨다. 몸은 언젠가 스러지기 마련이나 성장한 마음은 죽을 때까지 가져가는 거라고.

아프기만 했던 시간이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의 말에 동의하고 나도 그렇게 성장하고 싶었다. 내 불안과 우울, 고통을 한 발짝 물러나 나의 상태를 정의 내리고 나름의 처방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흩어진 레고 조각을 조립하듯 몸을 다시 꾸려나가는 지금, 많은 응원과 조언을 들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

왜 아직도 우울할까? 나아지기만을 바랐고 9월보다 몸이 좋아졌다는 걸 머리와 마음 모두로 알고 있다.


인간은 항상성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뭐든 평형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게 유전자에 각인된 기능이라서, 우울함에 익숙해진 마음까지 우울하고 비참한 감정에 흠뻑 젖어버려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이 상태에서 벗어나는데 거부감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기뻐했다간 다시 몸이 무너졌을 때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본능이 거부하는 걸까? 마음이 낫는 속도와 몸이 낫는 속도가 맞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년 가까이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했고,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돼서일까.

아, 이래서 선생님이 마음이 성장해야 된다고 하셨던 것 같다. 24년도는 남들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갈 때 나는 멈춰있었던 시기가 아니라, 몸을 재구성하고 마음을 튼튼하게 만들던 시기라고 기억하기 위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유는 알지만 마음의 형태를 바꾸기란 어렵다. 나를 폄하하는 사고방식이 그래, 너는 몸이 조금 나아졌지만 마음은 끝내 성장하지 못한 거잖아? 두 가지 과제 중에 제대로 달성한 게 없다고 다그친다. 청소년기는 진즉 다 지났는데 내 마음은 어른이 되기엔 한참 멀었고 나는 언제나 자라고 싶기만 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