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의 3일차가 밝았다. 이날은 아이들 눈 뒤집히는 장난감 백화점, 햄리스에 가서 시간을 보내보기로 했다. 햄리스는 영국이 오리지널이고, 프라하에는 지점(?)으로 들어와 있다. 영국에서 일정상, 햄리스까지 가보지 못했는데, 프라하에 머무는 기간이 긴 편이니, 프라하 일정으로 미뤄둔 것이다.
프라하 일정은 미리 짜놓지 않았기 때문에- 햄리스 외에, 아이들을 데리고 또 어디를 가보면 좋을까 구글 지도를 보면서 검색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프라하 시내 중심가에 이런 곳이 있다고?' 싶은 정원과 놀이터를 추천해 주었다. 마침 우리가 가려던 장난감 가게 '햄리스' 근처에 있었다. 천문시계, 화약탑, 바츨라프 광장, 까를교 등등 프라하 중심가 관광지는 사실 도보로 다 둘러 볼 수 있을만큼 골목 골목으로 이어져 있고, 거기서 거기다. 남편이 추천해준, '프란티슈칸스카 정원'은 관광지라기보다는, 그냥 도심 속 작은 휴게소 같은 느낌이었다. 좋아! 여기 놀이터에서 좀 놀다가, 햄리스 가서 또 실컷 놀자!
남편의 도움을 받아, 전날 실패했던 대중교통을 탈 수 있는 앱의 카드등록까지 무사히 해놓은 상태였다. 어플에서 '내가 곧 대중교통을 탑니다. 어디까지 갑니다-' 구역을 정해서 해당 금액을 미리 '활성화'를 시켜놓아야 한다. 탈 때 검표하지 않는다.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다. 남편은 아이들이 깨기도 전에 출근을 해버렸고, 우리는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먹고, 숙소 앞 트램 정거장으로 갔다. 트램을 기다리면서 도착 한정거장 전쯤에서, 어플에서 활성화를 시켜놓았다. 이게 뭐라고 괜히 긴장되고 그랬다. 마음의 준비가 무색하게도 세 정거장 정도만 가서 금방 내렸다.
(( 프라하에 오래 머문다면, 대중교통은 기간제 정액권 카드를 사용하는 게 좋다. 그 카드를 들고 있으면 지하철이든 트램이든 버스든 다 탈 수 있다. 카드를 찍는 곳도 없고, 입구에서 하나하나 검표를 하는 사람도 없다. 우리나라와 런던처럼, 카드를 대면 탄만큼 금액이 계산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아주 가~~~~끔 표를 검사하는 사람들이 올라타서 검사를 하곤 하는데 이때 만약 무임승차가 걸리면 몇배의 벌금을 내야 한다. 3년전 프라하 세달 살이를 할 때 3번 정도 검표를 받았던 것 같다. 검표를 하긴 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한달에 한 번 정도는 검표를 당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 ))
조금은 휑해보이는 건물들 사이로, 유동인구가 많음을 시사하는 사람들 복작거리는 스타벅스가 있는 건물 뒤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 여기 정원이 있다고?' 살짝 의심 하면서 걷다보니, 정돈된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넓진 않지만, 나무, 꽃, 새소리, 아이들 소리, 분수, 조각상 등이 어우러진 도심 속 작은 힐링공간이었다.
공원 한쪽에서 아이들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뒤섞인, 특유의 놀이터 소음이 들려왔다. 아이들은 꽃이든 나무든 조각상이든 관심없고, 놀이터로 직진이다. 벤치에 앉아 노는 모습을 조금 지켜보다보니, 이 정원 골목에 들어서기 전에 보았던 스타벅스가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라 하고 잠시 스타벅스를 다녀왔다. 주문 줄을 기다리느라, 애들만 놀이터에 두고온 사실이 조금씩 초조해졌다. 서둘러 발길을 돌려 종종걸음으로 놀이터로 돌아왔더니, 그새 놀이터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같이 섞여 놀고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그저 재밌게 놀고 싶은 마음은 하나다.
한여름 한낮이라, 놀이터에서 오래 놀기엔 아이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충분히 놀고, 정원을 한바퀴 휘~돌며 사진을 찍고, 아이들이 기대하고 기다리던 햄리스로 향했다.
햄리스는 장난감 가게이지만,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대형 미끄럼틀도 있고, 소소하게 아이들이 체험하며 놀 수 있는 공간들이 있어서,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곳이다. 나는 혹여나 아이들이 이거 저거 다 사달라고 떼를 쓰까봐, 미리 약속을 해주었는데, 다 구경하고 놀다가 나가기 전에, 갖고 싶은 거 딱 하나만 고르면 사주겠다고했다. (물론, 너무 비싼 거, 너무 큰 거를 제외하고 고르라고 단서도 달았다.)
와. 또 반전이다.
햄리스에 들어서니 아이들은 걱정과 달리, 장난감 쇼핑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 수 있는 놀거리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여기가 장난감 백화점이여, 키즈 카페여~~~
중장비 마니아 민찬이는 실제로 포크레인을 조종해서 볼풀을 옮길 수 있는 이 기구를 굉장히 좋아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움직이지 않는 포크레인에 앉아보는 건 무료지만, ;; 이 기계를 움직여서 볼풀을 뜨려면 결제를 해야 했다. 아이들은 당연히!! 너무나 기계를 움직여 보고 싶어했다. 1층 계산대에서 햄리스 카드를 사서 일정금액을 충전해서, 찍고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아이들은 포크레인, 회전목마를 꼭 타고 싶어해서 그 비용을 계산해서 금액을 충전했다. 정확한 비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카드에 대략 1~2만원 사이 정도의 금액을 충전했던 것 같고, 물론, 다 탕진하고 왔다! (키즈카페 맞네!!)
햄리스에 가는 이유 중 하나! 2층에서부터 1층까지 미끄러지는 뱀 모양 미끄럼틀!! 아이들을 2층 미끄럼틀 줄에 데려다주고, 나는 계단으로 재빨리 내려와 1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재밌다고 몇번을 탔는지 모른다...
아이들과 가볼만한 곳으로 남편이 업데이트해놓은 목록 중에 '버터플라이 하우스'가 있었다. 사진으로 보아하니,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정원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버터블라이 하우스가! 햄리스 2층에 있었다!! 비용이 저렴하지는 않았는데, 햄리스 카드를 가지고 있으면 10퍼센트 할인을 해주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가고 싶은 마음 반, 무서움 반이었다. (특히, 날파리도 무서워하는 10세가 그랬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본김에 가볼까 싶어서 티켓을 끊고, '버터플라이 하우스'에 입장을 했다.
장난감 가게에 안에 있는 나비 정원이라니!! 비밀의 화원에 들어서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습도가 높은 환경이 나비가 잘 자라는 환경인가보다. 나비 하우스의 공기는 음습한 느낌이었다.
나비가 이리도 사람 친화적인 곤충이었던가. 사람들이 손을 내밀면 다가와 앉았다. 어떤 사람은 머리에도 등에도 나비가 붙어있었다. 다인이는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본인이 해보기에는 겁이 났는가보다. 자꾸 엄마가 해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사실, 나도 곤충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ㅠㅠ) 그치만, 용기를 내서 나비에게 손을 내밀어 보았다. 나비 한마리가 날아와 내 손등에 앉아주었다. 나는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했지만, 아이들 보라고 꾹 참고 가만히 있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신기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진 표정으로 나비들을 관찰했다.
나비가 되기 전의 번데기들이 나무 가지에 달려있었다. 자세히 보면, 나비로 곧 변신해 날개짓을 할것 같은, 점점 나비의 모습으로 되어가는 번데기들이 보인다. 우리 아이들은 한참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비싼 티켓값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나비가 가끔씩 달려들거나 할 때, 다인이가 꺅~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다. 창피함은 나의 몫이지. 더 있다가는 민폐겠다 싶어서 서둘러 나왔다.
이제 햄리스를 나설 때가 됐다. 나가기 전에 갖고 싶은 장난감 하나씩 고르기로 한 약속이 있었다.
10세 다인이는 마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술도구 코너 앞에서 손가락 불빛 마술을 선보이는 유능한 직원 덕분에, 손가락 불빛 마술 도구를 구매했다. 꽤 비싼 가격이었는데, 다인이는 이 마술 원리가 뭔지도 몰랐기에 혹해서 꼭 갖고 싶어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건 한국에서 5천원도 안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거였다. 우리는 몇배는 되는 가격을 주고 샀다.)
민찬이는 솜사탕을 사달라고 했다. 역시 5세는 단 게 최고지!!
솜사탕을 먹으며 잠시 행복했지만, 누나처럼 손에 남는 장난감이 없었다. 솜사탕은 누나랑 엄마랑 같이 나눠먹었기에, 장난감을 못사게 된 민찬이에게도 누나꺼보다는 조금 저렴한 다른 장난감 하나를 골라주기로 했다. 민찬이 장난감 고르는 게 생각보다 어렵고 까다로웠다. 맘에 딱 드는 게 없었는데, 안사기는 아쉬웠기 때문에 계속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고심을 했다. 결국 퍼페트롤 캐릭터가 그려진 목욕놀이 장난감을 하나 샀다. 이 장난감은 지금도 목욕할 때마다 잘 가지고 놀고 있다. (누나는 마술손가락 사고 한국와서 한두번 해봤나?! 꺼내보지를 않는데 말이다)
실컷 잘 놀았다. 이제 집에 가서 조금 쉬다가, 아빠 퇴근하면 저녁에 보트타러 가자~~~!!
햄리스를 나와 숙소까지는 어떻게 갈까 생각하면서 거리로 나왔는데, 뚜둥~~!!
아이들이 바츨라프 광장 바닥분수에서 깔깔깔 신나게 놀고 있다.
그냥 지나치기 너무 아쉬워, 옆에 앉아 다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 엉덩이가 들썩들썩. 처음엔 신발 벗고 발만 적셨다가, 옷이 조금씩 젖고 있다. 에라 모르겠다.
"얘들아 그냥 맘껏 놀아. 집에는 걸어가자."
오늘의 일정 막바지고, 숙소까지의 거리가 걸어서 15분~20분 정도의 거리였기에 쿨한 엄마가 되어주었다.
이날 남긴 사진 속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예정에 없던, 생각지도 못했던 마지막 코스! 바닥분수에서 놀 때의 표정이 가장 행복해보인다. 이때 옷 적셔가며 놀게 해주길 정말 잘한 것 같다. 날도 무더웠기 때문에 숙소까지 걸어가는 동안 젖은 옷 덕분에 시원하게 갈 수 있었고, 이날 하루도 열심히 논 민찬이는 역시나 유모차에서 꿀낮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