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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3일 차(2)-블타바강 보트 타기

by 지니

2022년 8월 17일 수요일. 프라하 3일 차 낮에 아이들과 공원, 장난감 백화점, 바츨라프 광장의 바닥 분수에서 물놀이까지, 나름 알차게 놀았다. 아이들 몸이 젖어있었기에 숙소까지 걸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을 씻기고 정리하니, 남편의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겨울엔 5시만 돼도 캄캄했지만, 한여름이라 저녁 6시도 대낮 같다. 돌이켜보니 프라하에서의 평일은, '남편 퇴근 전 & 남편 퇴근 후' 이렇게 하루를 이틀처럼 보낸 것 같다.


남편이 프라하에 머물면서 가족들과 꼭 해보고 싶었던 위시리스트 중 하나. 패들 보트를 타기로 했다. 해 질 무렵 선선한 바람을 쐬며 석양을 바라보며 보트 타기 딱 좋은 때였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다리, 까를교와 프라하 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블타바강으로 향했다. 보트 타는 곳엔 사람들이 꽤 많이 줄을 서 있었다.


보트 타기 전에 신분증을 검사하므로, 외국인은 꼭 여권을 챙겨가야 한다. 보트 타는 곳에 줄을 서서, 어떤 보트를 탈지 아이들과 들떠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녀 커플, 혹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맥주 한 병씩 들고 즐겁게 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젊은이들'이라니!! 단어 선택에서부터 이미 늙었...?!) 우리도 가뿐하게 맥주 한 병씩 들고 보트를 타고 싶었지만... 남편은 운전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있기에 물과 감자칩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발권 담당자가, 우리 여권을 확인하더니, 대뜸 촌스러운 주황색 구명조끼를 건네주었다. 구명조끼를 입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구명조끼를 입고 보트를 타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응? 왜 우리만 조끼를 주지? 어린애들이 있어서 그런가?' 구명조끼를 입으라고 준 사람에게, 아이들만 입히고 우리는 안 입겠다 했더니, 한국 정부에서 내려온 방침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다른 국적의 사람들은 구명조끼 착용이 자유이지만, 한국 사람은 구명조끼를 입는 게 "의.무." 인 것이다. 왜 한국 정부는 유럽을 여행하는 국민들에게 이런 의무를 주었을까 하니, 남편은 2019년 '헝가리 유람선 사고'의 영향일 것이라 추측했다.


글을 쓰면서 그 사고에 대해 다시 찾아보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겪은 우리인데, 2019년에 지구 반대편 다른 나라에서 또 이런 슬픔을 겪은 것이다. 당시의 수많은 기사들은, 유람선 탑승 시 구명조끼가 의무가 아닌 것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고 있었다.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한국 정부에서는 이런 지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png 네이버 지식백과 퍼옴


그리하여, 우리는 프라하 블타바강에서 한국 정부의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으며, 구명조끼를 단디 입고 보트에 탑승했다. 앞자리는 페달을 밟아야 했기에 아빠와 다인이가 탔고, 뒷자리에 나와 민찬이가 탔다. 낮에서 저녁으로 가고 있는 시간이었으므로 하늘빛과 붉은빛이 적절히 섞여있어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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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의자는 캠핑 의자처럼 반정도 뒤로 젖혀져있어서, 반쯤 누워 눈앞에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보트 타기 전 매점에서 산 과자 한 봉지는 아이들이 보트 주변으로 몰려드는 천둥오리와 백조들에게 몽땅 양보했다. 반씩 나눠서 먹으라 했더니, 주변으로 오리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과자를 먹는 것보다, 오리들이 주변을 따라다니며 과자를 먹는 모습을 보는 걸 더 즐거워했다.


프라하성과 까를교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석양을 즐기고, 보트에서 내렸다. 까를교에 가서 한 바퀴 산책을 할까도 했지만, 다음날 저녁에 까를교에 가서 화가아저씨에게 가족 초상화를 그려보자고 해서, 까를교 방문은 다음날로 아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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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교와 저 멀리 프라하성이 보이는 그 어딘가의 다리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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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이들이 손잡고 걷는 뒷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아이들의 뒤통수에서도 이날의 신남과 행복함이 느껴진다. (아빠의 뒤통수에서는 약간의 피곤함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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