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프라하에서의 4일 차, 아빠 출근 후, 나 홀로 아이들과 프라하에서의 낮시간 보내기 3일 차다. 이날은 진짜 무계획이었다. 오늘은 뭐 하지? 구글맵을 들여다보면서 재밌어 보이는 박물관 몇 군데를 눈여겨봐두고, 아이들에게 보여줬지만,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결국, 하벨시장에 가서 구경 좀 하다가 기념품을 쇼핑을 하기로 했다. 10세는 마트료시카 인형을 사고 싶어 했다. 마트료시카는 러시아 전통인형이지만, 프라하 기념품 상점들에도 프라하의 예쁜 풍경들이 그려진 마트료시카가 진열되어 있었다. 언젠가 학교에서 각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와 물건들에 대해 배우고 온 날, 마트료시카를 갖고 싶다고 사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갖고 싶다고 바로 다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하고 넘겼었는데, 이날 기념품 샵에서 마트료시카를 보자마자, "난 이거!!"라고 정했다. 프라하에서도 기념품을 하나씩 사주기로 한 상태였기에, 가장 맘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라고 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10세는, 프라하 풍경이 그려져 있는 마트료시카 대신, 고양이 디자인의 마트료시카를 집중적으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보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맛있는 게 더 좋은 5세는, 하벨시장 입구에서 딸기를 보더니! 바로 딸기를 픽했다. 한국에서는 늦가을 초겨울부터 볼 수 있는 딸기였기에, 한여름 프라하에서 목격한 딸기가 너무나 먹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딸기는 한국 딸기가 최고다. 유럽의 딸기는 당도가 높지 않다. 생각보다 맛이 없을 거라고 얘기했는데도 민찬이는 오랜만에 본 딸기를 너무 먹고 싶어 했다. 딸기가 담겨있는 플라스틱 통들 사이, 가격 표지판에 19.90 코루나라고 적혀있다. 1 코루나에 60원 정도 하니, 1200원?! 딸기가 이렇게 싸다고? 하고 눈을 씻고 다시 보니, 옆에 작은 글씨로 100g이라고 쓰여있었다.
그럼 그렇지, 아무 생각 없이 큰 글씨만 보고 바구니 채로 사면 안된다는 거~~ 어차피 통에 담긴 딸기를 다 사도 다 먹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어, 50 코루나 어치만 달라고 했다.
50 코루나 어치도 생각보다 양이 꽤 되었다. 하벨시장 입구 옆쪽에는 과일을 씻어먹을 수 있는 음수대가 있어서, 그곳에서 바로 씻어서 먹을 수 있다. 두 아이 모두 딸기를 엄청 좋아하는데, 다인이는 하나 먹어보더니, 시다고 더 이상은 먹지 않았다. (역시 한국 딸기가 최고!!) 민찬이 입에는 체코 딸기도 맛있었다. 계속 먹고 또 먹고.. 입 주변이 시뻘게지도록 길가 벤치 자리 잡고 앉아 실컷 먹었다. 나도 옆에서 하나 맛보았는데, 많이 달진 않았지만, 생각했었던 것보다는 맛있었다.
자리 잡고 앉아서 잘 먹고 있는데, 빨리 이동하자는, (맘에 드는 마트료시카를 찾을 때까지 온갖 상점들을 들락날락할 심산인) 누나의 성화에, 5세 프라하 여행남은 결국 딸기통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부둥켜안고 먹으면서 하벨시장 거리를 거닐었다.
누나가 딱 맘에 드는 마트료시카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배회하는데, 그때 또 5세의 눈에 들어온 단 거~~!! 마카롱이다! 딸기를 다 먹어치운 민찬이가 이번에는 마카롱을 먹고 싶다고 했다. 평소에 안 먹어본 마카롱이기에, 아이들이 혹시나 안 먹을 것을 대비(?!)해 2개만 샀다. (나는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 애들이 남기면 먹을 생각이었다.. 엄마의 삶이란!) 다인이는 안 먹어본 음식에 기본적으로 의심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한입 쪼금 베어 물고 나에게 줄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다인이랑 민찬이 둘 다 맛있다고 다 먹었다...!!
하벨시장의 상점들을 다 돌고도, 가격대와 디자인이 딱 이거다!! 싶은 마트료시카를 못 찾은 우리는, 하벨시장을 벗어나 길거리 상점들을 더 구경해 보기로 했다.
"이것이 프라하 기념품이다!" 대놓고 "프라하프라하스러운(?)" 기념품을 사지 못한 게 아쉬워, 하벨 시장을 떠나기 전에 아이들에게 프라하의 또 다른 상징인, 천문시계 모양으로 디자인된 수첩을 2개 골라서 사줬다. 색깔만 다른 수첩을 각각 하나씩 골랐는데, 여기서도 두 아이의 성격이 극명하게 갈렸다. 5세는 그날 바로 수첩에 그림도 그리고, 알 수 없는 낙서들도 끄적였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들고 다니며 이런저런 그림들을 그렸다. 그래서 한 페이지도 남김없이 다 썼다! 5세의 즉흥적인 귀여운 그림들이 수첩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그려져 있어서 버리지 않고, 책꽂이 한켠에 디피해 두었다. 10세는 포장도 뜯지 않고, 그대로 가져와서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지금도 쓰지 않고 아끼고 있다. "아끼다 똥 된다~그냥 써~~"라고 말해도, 이 외에도 아끼는 수첩들이 서랍에 아직도 쓰지 않은 채로 쌓여있다. 언제 쓰려고? 시간 좀 지나서 서랍 정리하다가 '이런 게 있었네?' 하며 보물찾기 할 게 자명하다.
결국, 하벨시장에서 상점들을 구경하며 걸어 걸어 걷다 보니 어느새 까를교까지 와버렸다. 해질 무렵 여기에 와서 가족 그림을 그리기로 했지만, 기왕 자연스럽게 오게 된 거, 이 시간대의 까를교도 살짝 구경했다. (결국, 목표였던 마트료시카는 못 고르고, 몇 가지 맘에 드는 거 사진으로 찍어두기만 한 채, 나중에 아빠 퇴근하면 같이 골라보기로 했다.)
.... 까를교의 아름다운 감성을 느껴보는 것도 잠시, 이곳에서도 아이들이 원하는 건 어김없이 백조와 오리 먹이 주기였다. 전 날, 보트 타서 먹이 주던 게 참 좋았던 아이들의 참을 수 없는 동물 사랑! 아이들의 성화에 물가로 내려가 백조 먹이를 줄 수 있는 스폿을 찾아야 했다. 프라하를 잘 아는 아빠에게 물어 강가로 내려가 백조를 만날 수 있는 스폿을 구글맵 주소로 받았다. 그리하여 우리가 가게 된 곳은..!
백조들이 징그러울 만큼 많고, 그들의 털과 배설물들까지 있어 위생상으론 썩 좋아 보이지 않았던 이곳!! (까를교 기준으로 프라하성이 더 멀어지는 아래 방향으로 걷다 보면, 강가로 내려갈 수 있는 스폿들이 있다. 아빠가 알려준 곳은 식당가도 있고 놀이터도 있는 곳이었는데, 거기에도 백조들이 있었지만, 좀 떨어진 위에서 아래로 먹이를 던져줘야 하는 곳이었다. 뭔가 좀 아쉬워하던 차에, 다리 건너편에 백조들의 아지트 같은 게 보였다. 물이랑 땅이랑 연결되어 있어 백조들이 올라와서 바로 코앞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기어이 그 뙤약볕에 다리를 건너 백조들이 떼로 있는 이곳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과자 한 봉지를 사서 신나게 백조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여행 중에 아이들 배고플까 봐 가방에 챙겨 다니던 비상 간식들까지 탈탈 털어 백조들에게 나눠주었다.
나는 저 멀리 떨어져 나무 그늘에 앉아 아이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지만 지켜보며, 다음 행선지 물색에 나섰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와 음식을 먹고 싶어서, 구글맵에서 근처 카페를 검색해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CAT CAFE"!!
(구글맵 정식 명칭은 "CatCafePrague")
누구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다인이 취향 저격인 카페다. 고양이를 너~무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라, 한국에서도 종종 고양이 카페를 데려가곤 했는데, 체코에도 고양이 카페가 있었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당연히 좋다고 한다!! 이곳의 고양이 카페는 어떤 시스템일지 나도 궁금해졌다. 마침 거리도 멀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걸어왔던 다리를 다시 되돌아 건너가야 했다.
우리는 다시 다리를 건너, 구글맵을 의지에 'CAT CAFE'에 도착했다. 응? 잘 찾아온 거 맞아? 구글맵이 알려준 곳에 도착하니, 간판하나 없고, 입구도 없고, 그냥 주택가 느낌이었다. 여기가 맞나? 잘못 왔나? 하지만 구글맵에 있는 리뷰 사진을 보니 여기가 맞다! 의심 한가득 품고, 벨을 눌러보았다. 벨을 누르니, 주인이 나와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그곳은 고양이 카페가 맞았다!
벨을 눌러서 문을 열어주면 입장가능한 곳이었고, 주택을 개조해 만든 느낌의 고양이 카페였다. 입장료는 1인에 시간당 120 코루나였고, 나갈 때 머문 시간만큼 추가로 계산해야 한다. 꽤 넓은 공간에 방이 여러 개 있었고 빨간 천 소파들이 많이 있어서 앉아서 쉴 수 있었다. 카페테리아에서 셀프로 커피와 음료와 쿠기를 무료로 먹을 수 있었다.
고양이들이 도도한 건 전 세계 공통!! 고양이들은 아이들이 다가가면 저 멀리 달아났다. 놀자고 고양이 장난감으로 유혹해 봐도 소용없었다. 그래도 그중에 개냥이가 한 마리 있어서 다행이다. 고양이 한 마리가 다인이에게 다가와 무릎냥이를 해주는 게 아닌가! 다인이는 그것만으로 감격이었다. (고양이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도도한 성격이어서 더 끌리는 걸 수도...)
하지만 이 행복도 잠시!!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 땐, 그곳에 손님이 우리뿐이었는데, 우리가 머무는 동안 2-3팀 정도가 더 와서 안 그래도 도도한 고양이들이 더 분산되고 숨어버렸다. 결국 고양이를 졸졸졸 쫓아다니며 애 태우며 나머지 시간이 흘러갔다.
남편에게 퇴근하면 이곳으로 오라고 연락을 한 후, 아이들이 그렇게 고양이들과 밀당을 하는 사이, 나는 그곳에서 제일 편해 보이는 소파에 앉아 셀프바에서 커피와 쿠키를 가져다 먹으며 쉴 수 있었다.
남편이 퇴근해서 이 앞에 와서 전화하면 나가려고 했는데, 남편도 소리 없이 입장을 해버렸다...! "응? 들어오지 말고 나오라고 전화하지!!" 그도 체코의 고양이 카페가 궁금했나 보다. 어쨌든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30분 정도를 더 놀다가 퇴장했다.
이제 아빠도 왔으니, 우리가 예전부터 계획했던 까를교의 화가님에게 가족 그림을 그리러 갈 시간이다!
까를교에 화가아저씨들이 몇 분 상주해 계신다. 각자의 그림스타일이 다 달라서, 어떤 그림을 그릴까 훑어보고 있는데, 다인이는 어떤 한 화가아저씨의 화풍이 맘에 들었나 보다. 그분에게 혼자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열되어 있는 그림들이 죄다 독사진? 독그림?!, 그리고 간혹 커플 그림이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한 소년을 고객으로 초상화를 그리고 계셨는데,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너무 신기하고 완성작도 너무너무 예뻤다. 그 그림에 마음을 빼앗긴 다인이는 자기도 자기만 그리면 안 되냐고... 음...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았다. 아빠는 좀 아쉬워했지만, 아빠랑 아들이랑 둘이 그림을 그리라고 하고 나는 빠졌다. (나는 내 얼굴이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될지 살짝 두려웠다고나 할까?!) 그리하여, 다인이는 까를교에서 맨발의 화가 아저씨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다.
아빠와 민찬이는, 옆에 또 다른 화가 아저씨에게 캐리커쳐를 그리기로 했다. 사실적인 초상화가 조금 더 비쌌고, 캐리커쳐는 조금 더 저렴한 데다, 짧은 시간에 빨리 그려준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게 함정~~!
다인이가 옆 자리 화가아저씨 옆에 줄 서있는 동안, 아빠와 민찬이가 먼저 캐리커처를 그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얌전히 앉아있는 게 쉽지 않은 5세는 계속 꼼지락꼼지락 앉았다 일어났나를 반복했다. 빨리 그려주는 캐리커처로 하길 잘했다 싶기도 하고...!
민찬이와 아빠의 그림이 다 끝나고 나서야, 다인이의 차례가 돌아왔다. 이때 다인이는 머리를 묶고 있었는데, 예쁘게 그려주시려고, 머리를 풀라고 코치해 주셨다. 순순히 머리를 풀고 얌전히 자리에 앉은 10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길이 멈추기 시작했다. 우리가 다인이 앞타임에 그리던 소년의 그림을 뒤에서 구경했듯이, 사람들이 멈춰서 다인이의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림이 끝날 때까지 동영상을 찍더라는... (누군가의 사진첩에 저장되어 있을 우리 다인이 초상권...ㅋ)
다인이는 자신을 모델로 해서 그리는 화가아저씨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하는 걸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저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그림이 얼마나 기대가 됐을꼬! 한 호들갑하는 내가 또 "와~ 진짜 너무 예뻐"를 연발했으니... 나도 그 분위기에 취했었나 보다.
프라하 화가 아저씨에 눈에 비친 다인이의 모습은 저렇구나.
때마침 까를교 아래의 레스토랑에서는 파티분위기가 펼쳐지고, 해는 뉘엿뉘엿-
그리하여 우리는 이렇게 아름답게 프라하의 밤을 보냈다.
덧. 낮동안 찾아 헤매던 마트료시카는 초상화를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까를교 옆에 있는 기념품 샵에서 겟했다. 다인이는 기어이 고양이 모양, 민찬이는 프라하 전경이 그려져 있는 마트료시카를 적당한 가격에 만족할만한 디자인으로 잘 모셔와서, 지금도 간혹 잘 가지고 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