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1)
자산은 얼마에 거래되는 것이 적정한 가격일까?
주택, 주식, 채권을 비롯해 특정한 권리를 사고팔 수 있는 것을 자산이라고 한다.
실재로 존재하는 주택, 회사의 지분을 의미하는 주식, 후에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인 채권처럼 자산들을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넘겨준다면 얼마에 거래되는 것이 타당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먼저 우리가 왜 자산을 가지려고 하는지 생각해보자. 자산을 가지려고 하는 이유는 그 자산이 우리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가령 주택은 거주할 수 있는 행복을 주거나 임대를 해주어 임대 수익을 가져다주는 혜택을 준다. 주식은 회사를 나누어 갖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수익이 곧 주식의 혜택을 의미한다. 채권 역시 채권을 가짐으로써 받게 되는 이자와 원금이 채권의 가치가 된다.
그렇다면 자산의 적정한 가격은 이 자산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경제적 효익에 달려있어야 합리적이다.
그런데 인간은 같은 가치라도 빠른 시일 내에 얻는 가치를 먼 훗날에 얻는 가치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50년 후의 100만 원보다 당장 오늘의 100만 원이 더 큰 가치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산을 갖고 있거나 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자산을 가짐으로써 미래에 얻게 되는 경제적 효익은 당장 지금의 효익과 같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경제적 효익은 더 낮다고 생각해야 한다. 가령 50년 후의 100만 원은 오늘날 100만 원이 아니라 80만 원의 가치를 갖는다. 이것을 우리는 할인한다고 표현한다.
고상하고 딱딱한 표현으로 오늘날의 자산 가치는 앞으로 자산을 갖게 되면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익을 당장의 가치로 환산해서 생각한 가격이 된다. 앞서 예시에서 50년 후에 1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지금 거래한다면 80만 원에 거래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것이 50년 후 100만 원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식의 합당한 가격은 그 회사가 벌어들일 수익들을 오늘날 가치로 환산한 가치로 거래되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택의 합리적인 가격은 그 주택을 갖고 있으면서 얻을 수 있는 임대 수익들을 오늘날 가치로 환산 것이 된다.
정확한 설명은 아니지만 주택의 가격은 주택을 사는 돈만큼 그대로 은행에 두고 이자와 원금으로 임대료를 낼 때와 동일해야 한다. 만약 주택 가격이 그것보다 더 높다면 임대료를 주고 사는 것이 더 이익이고 반대로 주택 가격이 그보다 더 낮다면 집을 임대하는 것보다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시장에서 매겨지는 가격들이 이것을 정확하게 반영한다면 바람직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기 때문에 자산의 가격이 합리적인 가치와 달라지는 경우들이 종종 발생하고는 한다. 이것을 우리는 거품(bubble)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자산의 가치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자산을 사기도 하고 패닉에 빠져 빨리 팔아 넘기기도 한다.
적절한 임대료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그중 근본적인 요인은 사람들의 임금이다. 크게는 사람들이 버는 돈에 비해서 임대료가 결정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인 집값은 대개 임금에 비해서 일정해야 한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여러 자산 시장에서 자산들의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한다. 그중 먼 훗날에 재앙을 불러일으킨 주범은 주택 시장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택의 가격은 끝을 모르고 계속 올라가기 시작한다. 집값이 계속 오르자 사람들은 집의 본질적인 가치는 생각하지도 않고 너도나도 집을 사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지금 집을 사서 나중에 시세 차익을 남겨 팔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가격이 오를 것이라 생각하고 행동하자 정말로 주택 가격은 생각한 대로 움직였다. 투기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듣자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마저 주택 투기에 빠져들어 마구잡이로 집을 사대기 시작한다.
투기를 통해서 돈을 버는 방법은 간단하다. 사람들이 모두 미쳐있어 집을 살려고 해 가격이 오른다면 내가 가진 집을 그 뒤에 오는 사람에게 더 비싸게 팔아넘기면 된다. 또 그 사람은 그 뒤에 오는 얼간이들에게 더 비싸게 팔아넘기면 된다. 그리고 그 사람 역시 뒤에 오는 바보에게 더더욱 비싸게 팔아넘기면 된다. 이렇게 집값이 계속 오를 때는 모두가 행복하다. 하지만 언젠가 마지막 뒤에 오는 얼간이가 없다면?
자산의 가격이 끝이 어딘지 모르게 상승하다 어느 순간 그보다 비싼 가격에 산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면 가격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주택을 사기 위해 달려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돈으로 집을 사지 않았다. 집을 담보로 잡아 돈을 빌려 집을 구매했던 것이다. 100만 원 주택을 담보로 80만 원을 빌렸다고 생각해보자. 집값이 계속 100만 원이거나 집값이 계속 오른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집값이 120만 원이 된다면 20만 원을 투자해 20만 원을 얻었기 때문에 집값이 20%만 올랐지만 수익률은 100%가 된다. 모두가 미쳐있는 상황에서 운이 좋게 이런 일이 일어난 사람들은 투자의 귀재라느니 경제 전문가라는 칭호를 들으며 모두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반대로 집값이 20%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80만 원 집 가격이 80만 원이 된다면 투기한 돈을 모두 날린다. 실제로 변한 가격은 20%인데 가진 돈 모두를 잃는 것이다.
만약 80만 원보다 더 아래로 집 가격이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집을 담보로 빌려주었던 은행들도 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되어 문제가 되고 각국의 법에 따라서는 집을 샀던 사람들은 집도 잃고 빚더미에 앉게 된다. 담보로 잡았던 집을 팔아 대출금을 회수하기 어려워질 상황이 닥칠 거라 생각한다면 은행은 빨리 담보로 잡힌 집을 팔아넘긴다. 하지만 주택의 특성상 집은 빨리 팔리지 않는다. 더구나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또 이렇게 집을 팔아넘기려는 은행들이 많아진다면 집을 파는 것이 쉽지 않다. 결국 빨리 집을 처분하기 위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집을 팔아넘긴다. 이렇게 집 값이 하락하면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렸던 더 많은 사람들도 위태로워진다. 그러면 그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었던 은행들 역시 그들의 주택을 팔아넘긴다. 주택 가격은 더 하락한다. 이번에는 주택의 가격은 아래가 어딘지 모르게 곤두박질친다. 물론 빚을 져서 집을 샀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고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이성적으로 집 값이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물론 수많은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문제가 되었던 것은 파생상품이었다. 90년대부터 금융업계에서는 수학적, 기계적인 방법을 사용해 복잡하게 만들어진 파생상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택 시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주택을 담보로 빌려준 대출을 파생상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은행에서 이루어지는 대출은 은행 직원들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사람들의 상환 능력과 담보의 가치를 판단하며 직접 빌려주기 때문에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대신 주택을 담보로 빌려준 대출을 금융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대출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권리를 주식처럼 쪼개서 다시 사람들에게 팔아넘긴다. 그러면 한쪽에서는 돈을 빌릴 수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직접 돈을 빌려줄 수 있다. 메릴린치, 시티은행 등 여러 투자은행(investment bank)들이 중간 역할을 담당했다. 돈을 빌려주고 나서는 그 대출금으로 파생상품을 만들어 다시 팔아넘긴다. 그러면 투자은행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대출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겨버리니 전처럼 꼼꼼하게 검토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러한 파생상품을 주택담보증권(MBS, Mortgage Backed Securities)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렇게 만들어진 금융상품을 만지작거린다. 대출금을 쪼개 금융상품으로 만들었는데, 각각 파생상품들에 우선권을 주는 것이다. 가령 100만 원 집을 담보로 80만 원 대출을 주었다면 80만 원 대출금을 4개로 쪼개 20만 원씩 나눈다. 그리고 각각 상품마다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우선권을 부여한다. A라는 상품에는 가장 먼저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B에게는 두 번째, C와 D는 그다음으로 돈을 돌려받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집값이 하락하더라도 20만 원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A는 돈을 받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고 B 역시 그다음으로 안전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D처럼 위험이 비교적 높은 상품은 아무도 구매하지 않고 사람들은 안전한 A만을 찾는다. 여기서 금융회사들은 기가 막힌 발상을 한다. D 같은 상품들을 여러 개 섞은 후에 이것을 다시 나누어 여기에도 똑같이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다. 가령 D와 연동되어 있는 집 가격이 60만 원 아래로 떨어져 D가 돈을 못 받을 확률이 20%라면 D와 똑같은 20만 원 상품 E 두 개를 섞는다. 그러면 40만 원 가치를 갖는 증권이 만들어지는데 이론 상 D가 빌려준 집과 E가 빌려준 집 가격이 같이 60만 원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40만 원이 모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 40만 원도 두 개로 나누어 각각 우선권을 준다. 그러면 40만 원 중 우선권을 갖는 상품이 돈을 돌려받지 못할 확률은 두 집 가격이 모두 동시에 떨어질 확률로 더 낮아질 것이다. 증권 두 개가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증권을 섞은 후에 잘게 나눈다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품이 여러 개 생긴다. 물론 여기서 생긴 위험한 상품은 다시 다른 상품들하고 또다시 섞은 후에 나눈다면 또 안전한 상품이 나올 것이다.
신이 난 투자 은행들은 이런 일들을 계속했고 상품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에게 묻지마 주택 대출을 해주었다. 물론 덕분에 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게 된 사람들은 이렇게 빌린 돈으로 집을 샀다. 주택 가격은 더 올라가기 시작했다. 대출금으로 만든 증권을 산 사람들은 안전한 상품을 살 수 있으니 좋았다. 투자은행들은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기니 좋았다.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