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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코믹 Nov 03. 2022

위기에서 재앙으로

2008 금융위기 (4)

은행들의 위기와 금융 시스템의 붕괴는 그 문제 자체의 범위를 넘어선다. 뱅크런이 일어나 너도나도 현금을 찾으러 오는 바람에 은행들이 파산한다면 은행들은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대출을 중단하기 시작한다.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는 것이다. 은행들이 대출을 해주지 않게 된다면 돈을 빌려야 하는 건전했던 수많은 기업들이 자금난으로 파산하기 시작한다. 건설 회사 자동차 회사 등등... 1930년대 대공황에는 미국 은행의 3분의 1 가량이 파산했다. 붕괴한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사람들의 생계와 관련된 실물 경제로 급속히 퍼져나간다.


그래서 정부는 비이성적인 뱅크런을 막기 위해 은행들에게 급한 경우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중앙은행을 설립했다. 중앙은행의 이러한 역할을 최후 수단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라고 부른다.

그런데 문제는 중앙은행이 설립되고 그 배경이 된 연방준비법안(Federal Reserve Act)이 제정될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금융이 발달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중앙은행으로부터 빌릴 수 있는 권한을 시중 은행들로 제한했었다. 이번에는 시중 은행이 아니라 투자 은행 등 그림자 은행(shadow banking)으로부터 비롯된 위기였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해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Federal Reserve Act 13조 3항에는 이러한 조항이 있다.


"In unusual and exigent circumstances, the Board of Governors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 by the affirmative vote of not less than five members, may authorize any Federal reserve bank, during such periods as the said board may determine, at rates established in accordance with the provisions of section 14, subdivision (d), of this Act, to discount for any participant in any program or facility with broad-based eligibility, notes, drafts, and bills of exchange when such notes, drafts, and bills of exchange are indorsed or otherwise secured to the satisfaction of the Federal Reserve bank 

연방준비제도(Fed)는 정상적이지 않은 급박한 상황이라면 5명 이상 총재들의 승인을 받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증권을 담보로 다른 주체들에게 대출을 할 수 있다"


이 조항을 해석해보자. 원칙적으로 중앙은행은 연방준비제도가 대출을 해 줄 수 있는 기관은 시중 은행들로 한정된다. 이러한 법률적 제약은 시중 은행이 아닌 곳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연방준비법안(Federal Reserve Act)은 13조 3항에 이러한 예외 조건을 달아놓은 것이다.


연방준비제도는 7명으로 이루어진 이사진을 구성한다. 이 이사진들을 각각 총재라고 부른다(다른 국가에서는 중앙은행을 대표하는 한 명을 총재라고 부르지만 특이하게도 미국에서는 7명을 모두 총재라고 부르며 대표하는 한 명을 의장(chairman/chairwoman)이라고 부른다). 긴박한 상황이 온다면 시중 은행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주체들에게도 이사진 7명 중 5명 이상의 승인을 받아 대출을 할 수 있게끔 규정한 것이다. 물론 대출을 받으려는 주체들은 자신의 상황이 급박하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자금을 빌릴 때에는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자산의 담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금융 위기 후에 도드 프랭크 법안(Dodd-Frank act)이 제정되면서 여기에 재정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제약이 추가된다).


이 조항은 역사상 대공황 이후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는 조항이었다. 하지만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여지게 되자 연방준비제도는 이 조항을 발동한다. 

연방준비제도는 13조 3항을 발동하여 자금난에 직면한 금융 기관들에 대출을 제공한다. 그 후 베어 스턴스(Bear sterns)는 JP모건 체이스에, 메릴린치(Merrill Lynch)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에 합병 인수된다. 물론 금융 위기의 주범이었던 금융 회사들을 구제하는 이런 구제금융이 대중적, 정치적으로 달가웠을 리가 없었다. 당시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버냉키(Bernanke)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의원들의 비난을 견뎌야 했을 뿐만 아니라 언론과 대중들의 뭇매를 견뎌야 했다.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정책이기에 의회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집에 불이 난 상황에서 범인을 찾고 책임을 묻기보다 우선 마을 전체에 불이 옮겨 붙기 전에 빨리 불을 먼저 꺼야했다. 여러 금융회사가 구제되자 금융시장은 한동안 잠잠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건이 발생한다. 6개월 후 2008년 9월 14일 투자 회사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가 파산을 선언한다. 안타깝게도 리만브라더스는 경영을 엉망으로 한 나머지 신뢰할 수 있는 담보가 충분히 있지 않았다. 그래서 연방준비제도는 대출을 해 줄 수 없었던 것이다. 훗날 많은 사람들이 리먼 브라더스를 구제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지만 실은 이것은 법적으로 권한 밖이었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자 이제는 정말로 금융 시장에 패닉과 공포가 불어 닥쳤다. 은행들은 돈을 빌려주지 않고 현금을 미친 듯이 모으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람들은 기업들에게 빌려준 돈을 연장해주지 않기 시작했다. 곧이어 본격적으로 금융 시스템의 붕괴가 실물 경제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들이 파산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일상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약 3달간 240만 개의 일자리가 증발해 버렸다. 이듬해 상반기에는 이어 38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기 시작했고 기업들은 투자를 멈추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재앙이 시작되었다.


더 큰 문제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금융 시장이 붕괴하자 그다음 타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티은행, JP모건을 비롯해 위험을 알리는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보험회사 AIG였다. 여러 기업들과 전 세계 곳곳에 보험을 제공했던 AIG가 파산할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AIG의 규모는 전에 구제했던 베어스턴스(Bear sterns)와 금융 시스템을 혼란으로 빠뜨린 리만 브라더스(Lehman Brothers)를 합친 규모였다. 이 회사가 파산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것은 끔찍했다.


"헨리 폴슨(당시 재정부 장관)과 당신의 판단을 저는 믿습니다. 지금 필요한 일을 해 주십시오. 정치적인 공격은 최대한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조지 부시, AIG 대책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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