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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코믹 Jan 29. 2023

무역은 전쟁인가

무역은 어디로부터 어디로 가나 (1)

세상에 정치인들이 모두 경제학자라면 관세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자신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냐하면 무역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상대방이 자유롭게 무역을 하지 않더라도, 즉 우리 수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불공정한 무역을 하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와 상관없이 자유무역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롭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외국에서 들여오는 물건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물건들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대가로 베푸는 호의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역은 돈을 모으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다른 사람들과, 도시들과 나아가 다른 나라들과 교환을 하는지 생각해 본다면 쉽게 알 수 있다. 거래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거나 만들기 어려운 것을 얻기 위해서다. 그러니 거래를 통해 다양하고 좋은 물건들을 싸게 사와 사용하는 것은 이로운 일이다. 

택배 기사님은 손흥민 선수 경기를 보고 손흥민 선수는 택배 기사님의 서비스를 이용한다. 택배 기사님께는 손흥민 선수처럼 뛰어난 축구 재능이 있지 않다. 손흥민 선수는 직접 택배를 가져오는 것이 지나치게 비효율 적이고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니 손흥민 선수는 택배 기사님과 거래를 통해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령 택배 기사님이 손흥민 선수 경기를 보지 않더라도 손흥민 선수는 택배 기사님께 택배를 부탁하는 것이 여전히 합리적이다. 손흥민 선수와 택배 기사님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


물론 더 논리적인 이유와 이론적인 근거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다른 국가들과 거래하는 무역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또 한 가지 기억할 점은 외국과 거래를 한다고 우리나라 산업은 모두 사라지고 외국이 생산한 물건들만 사용해 그들의 배를 불려주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거래는 우리가 주는 것이 있어야지만 받는 것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유로운 무역은 명확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는 경제학자들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여러 집단들은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 무역 정책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싶어 한다. 자신들의 산업에만 특별히 높은 관세를 부과해 외국 기업들과 경쟁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 대가를 짊어지는 것은 질 낮은 물건을 높은 가격에 사용해야 하는 사회의 다수다. 그리고 기술발전과 혁신이 더뎌지는 사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나쁜 선택은 사회에서 종종 일어나고는 한다. 그 이유는 멘슈어 올슨의 <집단행동의 논리 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 이론을 생각해 본다면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분명히 세상에는 사회 전체에 더 이로운 선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로운 정책들이 선택되고는 한다. 그 이유는 그 선택이 전체적으로는 해로움에도 불구하고 소수에게 혜택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쁜 정책의 이익은 집중되는 반면 손실은 분산되기 때문이다. 가령 십만 명에게 물을 공급하는 10명의 생수 업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지금은 외국과 거래를 자유롭게 하지만 정치적으로 압력을 행사해 생수를 수입하지 못하게 한다면 생수 가격이 500원 오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수 가격이 500원 오른다면 생수를 파는 집단의 수익은 5천만 원 증가하는 반면 사람들에게는 5천만 원의 피해가 생긴다 (실은 경제학적으로 사회 전체의 피해는 더 크다). 그런데 이 5천만 원이 생수를 파는 10명의 사람들에게는 각각 5백만 원이 돌아가는 반면 (5천만 원/ 생수를 파는 10명) 생수를 사 마시는 10만 명 각각에게 입히는 손해는 고작 500원뿐이다(5천만 원/ 10만 명). 이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집단은 10만 명의 시민이 아니라 10명의 생수 판매업자들이다. 왜냐하면 시민들이 5백 원을 위해 행동하기는 어렵지만 생수를 파는 사람들은 행동을 함으로써 5백만 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수가 비싸지면서 입는 손해는 넓게 분산되는 반면 이익은 특정 집단에 집중된다. 이익이 집중되는 작은 집단은 직접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이기적인 로비는 의회에서 계속되었다. 무역의 적은 외국이 아니라 나라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로 비롯된 가장 유명한 법안이 1930년 통과한 스무트 홀리 법안(SmootHawley Tariff Act)이다. 공화당의 리드 스무트와 윌리스 홀리 의원의 주도로 2만 여개의 수입품에 높게는 400%의 관세가 부과되었다. 

그리고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이러한 보호무역을 뿌리 뽑기 위해 다른 국가들과 호혜주의 무역을 체결한다. 이것은 오늘날 무역 시스템의 기반이 되었다. 그 내용은 한 나라가 특정 산업에 관세를 부과한다면 상대방 국가도 똑같은 산업에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국내 어떤 기업들이 로비를 통해 관세를 부과한다면 마찬가지로 외국에서 자신들의 물건에도 관세가 붙어 수출이 힘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니 더 이상 자신들에게 특혜를 달라는 요구는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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