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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Jun 10. 2024

제라늄

그리고 이모의 제라늄


- 나의 분홍색 홑꽃 제라늄 -


지금 이 시기는 평범하게 제라늄을 키우는 환경에선 꽃이 거의 졌을 것이다.

우리 집의 제라늄도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는다.

한창 예쁠 때 글을 올렸어야 하는데 날짜 계산이 잘못됐다.

사실 계산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나는 제라늄의 고수는 아니란 뜻이다.

제라늄 고수의 집에선 사시사철 꽃이 피던데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제라늄 화분을 여러 개를 사망시킨 전력으로 보면

올해의 봄은 꽤 만족스러운 성적표다.


알사탕 꽃봉오리가 올라와
고개를 들며 한송이 두송이 활짝 피면
삐죽한 씨앗이 맺히고 그 안에서 깃털이 달린 씨앗이 나온다


봄이면 꽃화분을 파는 곳에선 각종 다양하고 화려한 제라늄이 눈길을 끈다.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꽃집 앞을 서성이는 나는 분홍꽃, 흰꽃, 겹꽃등을 여러해 봄마다 샀다. 예쁠수록 더 비쌌다.

처음 올 때 예쁘게 피었던 꽃이 지고 나면 더 이상 꽃이 피지 않았고, 어김없이 여름을 못 넘기고 죽었다.

‘대체 왜 그럴까?‘


“난 제라늄이랑 안 맞아. 뭐 꽃도 별로 안 예쁜 것 같아! “

국민꽃이라는 제라늄이 나에겐 참 어렵고,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다시 봄이 되어도 두 해쯤 제라늄을 사지 않고 걸렀다.


어느 봄날 아파트 장터에 주욱 늘어놓고 파는 꽃화분들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제라늄들은 모두 다른 색이었다.

한 할머니가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고르시느라 화분을 들었다 놨다 할 때마다 내 마음이 들썩 거렸다.

‘저 분홍색이 예쁜데..분홍색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톤의 분홍색이네..‘


드디어  “이 빨강 제라늄으로 줘요”

‘야호!’ 

어쩌면 마음의 소리가 들렸을지도 모른다.

‘이럴때가 아니지. 할머니의 마음이 바뀌실지도 몰라’

나는 주머니 속 한쪽 손에 이미 쥐고 있던 3000원을 재빠르게 내고, 분홍제라늄을 샀다.

혼자서 마음 졸이며 데려온 제라늄이라 그런가 더 예쁘고 더 소중했다.

운명처럼 분홍의 제라늄이 내게 왔다.


처음 온 날. 냉면의 둥지가 물받침이 되었다.


처음 왔을 때의 분홍색 꽃이 지자 여느 해와 같이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았다.

‘또 죽으려나?’

고수에게 물으니 여름에 물 주기를 게을리하라고 했다.

‘게을리하라고?’

물을 주고 싶은걸 간신히 참으며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었다.

‘오호! 죽지 않았네’

가을이 되고, 다이소에서 산 천 원짜리 작은 바구니에 들어있는 알갱이 영양제를 꽂아 두었다. 물을 줄 때마다 영양제가 조금씩 녹아내렸다.

‘음, 적당한 것 같아’

가을과 겨울을 지나며 이파리는 튼튼하고 짙은 초록이 되었고, 알사탕처럼 예쁜 꽃대를 올리고 있었다.

‘으아, 신통방통해라!’


그때 찬물을 끼얹는 남편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이거 곰취야? 먹는 것도 아닌데 왜 키우는 거냐? “

“작년에 꽃 예쁘다고 했잖아”


‘이런 C...... 처음으로 안 죽고 살아낸 내 귀한 제라늄한테 무슨 말이야! 이혼할까?‘

마음의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제라늄이 4년째 나와 살아주고 있다.  튼튼한 고목이 되어 가며 매해 분홍 꽃을 피워준다.

분홍제라늄 모체는 작년 가을의 가지치기를 통해 네 개의 작은 작은 화분으로 가족도 늘렸다.

올해는 고목이 동시에 꽃볼을 네 개를 올려 화려하게 꽃을 피웠고, 아기 제라늄들도 귀여운 꽃을 피웠다.


‘잘 살아줘서 참 다행이야. 고맙다‘


올해 봄. 모체와 아이들


- 이모의 제라늄 -


작년 여름, 막내 이모가 엄마 옆으로 소풍을 가셨다.

두 분은 늘 모든 걸 함께 하셨다. 살림도, 육아도, 김장도, 꽃꽂이도, 수영도, 똑같이 꽃화분도 사셨다.


홀어머니 슬하의 딸만 부자였던 집 막내인 이모는 종갓집 맏며느리가 되었지만 막내의 대명사로 이모가 떠오를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이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노래를 부르던 막내이모의 젊은 목소리와 모습이 떠오른다.

장례식장 영상 화면엔 꽃꽂이를 하는 예쁜 이모의 사진이 보인 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한참동안 화면에 머물렀다.

잠이 안 오던 그 밤

어두운 실내중 가장 밝은 모니터 아래의 불빛으로 귀천을 메모지에 필사했다.

이모이고 엄마였던 막내 이모를 보내드렸다. 나는 정말 완전히 엄마가 없어졌다.


온기가 사라진 이모의 집으로 갔다.

이모의 무언가를 하나쯤 갖고 싶었다.

엄마의 집처럼 베란다엔 주인 잃은 식물들과 각종 화분들이 보였다.

내 것과 다르게 줄기가 가늘고 하늘하늘한 제라늄 세 뿌리와 작은 빈 화분을 가져왔고, 나는 꽃을 기다린다.


사진을 찍어 검색해 보니 엔젤아이스 랜디 제라늄이 가장 흡사한 것 같다.

엔젤아이스 제라늄은 봄에 오렌지색이나 분홍색의 작은 나비 같은 꽃이 핀다고 한다.

집으로 와 물꽂이를 해두었다가 화분 세 개에 심어 줬다.

외목대로 키우면 돋보인다는 정보를 입수해 아랫쪽 가지를 치고 윗쪽을 풍성한 수형으로 키우고 있다.

올 봄이 다 지나도록 꽃을 피우지 않았다.

여름을 잘 보내고, 내년 봄엔 꽃이 피길 기대한다.


이모의 연분홍 치마처럼 제라늄은 작고 예쁜 분홍 꽃을 피울까?


우리집에 온 이모의 흙과 제라늄..



식물에 대하여


< 제라늄 >


제라늄, 유럽 제라늄, 페라고늄, 랜디 제라늄, 구문초 등등의 많은 종류와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꽃은 홑겹과 겹꽃이 있다.

솔직하게 제라늄에 대해 잘 모르니 아는 만큼만의 경험담을 적어보려한다.


생육 환경 : 물을 좋아하지 않고,고온다습에 약하다

햇빛 : 햋빛을 많이 보아야 잎이 초록이 짙어지며 꽃을 잘 피운다.

흙 : 배수가 좋은 흙을 사용한다. 펄라이트 또는 마사토를 1/3 정도 섞어주거나 제라늄 전용 흙을 사용하면 좋다.

물주기 : 과습에 취약하다.  줄기와 잎이 두꺼운 것은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는 뜻이니 흙이 충분히 마른후 물을 준다.

꽃 : 꽃이 피었을때는 물을 충분히 주어야 꽃을 오래 볼수 있다.

영양제 주기 : 꽃이 진 후나 봄 또는 가을에 주며, 봄 가을의 분갈이를 한다면 영양제를 더 주진 않아도 된다.

가지치기 : 꽃이 진 후의 봄 또는 가을에 한다. (소독된 가위나 칼을 사용한다)

삽목 : 잎을 2~3장 남기고 자른 가지를 물꽂이 또는 흙에 심어준다. 가지를 자른 후 단면의 살짝 건조해지면 심어준다.


* 실패담 *

제라늄이 죽어나간 계절이 모두 여름철이었던 것은 과습 때문이었다.

조바심에 뿌리가 건조해지기도 전에 물을 주고 또 주었으니 뿌리와 줄기에 무름병이 온 것이었다.

여름철은 많은 식물들의 성장이 멈춘다.

그러므로 과한 수분이나 과한 영양도 도움이 되지 않고 악영향을 끼칠수 있다.

여름엔 말라죽지 않은 정도의 물을 주고, 통풍에 신경을 쓴다. (약하게 선풍기를 틀어주어도 좋다)

여름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 제라늄에게 절대적으로 주의할 점 *

과습! 특히 여름철 과습주의!

여름철 물주기는 게을리 하기!


( 엔젤 아이스 랜디 제라늄은 아직 초보자의 입장이라 후에 업데이트 하거나 추가 하겠습니다 )

윗쪽 이모의 랜디 제라늄과 아랫쪽 분홍 제라늄 모체와 아이들 (여름 준비중인 현재 모습)


제라늄은 워낙 재야의 고수들이  많으니 목록에 넣을까 말까 고민을 했다.

잘 키우는 법도 모르면서 목록에 넣은건 이모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길어진 오늘의 식물 이야기가

천상병 시인의 호처럼 깊은 따뜻함으로 전해졌기를 바란다.



귀 천  

- 심온(深溫). 천상병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장표 답지않은 우아하고 예쁜 나의 제라늄의 자른 꽃대도 아까워 물꽂이 하여 조금더 본다




* 행복한 월요일이 시작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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