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사이 Jun 03. 2024

장미허브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온 장미허브


단골 미용실이 있다.

미용실은 3,4개월에 한 번이거나 반년만에 갈 때도 있다.

기간이 길어진다고 다른 곳을 가는 것은 아니니 나는 단골이 분명하다.

기간이 길다는 것은 스스로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민망한 백발 마녀의 몰골로 간단 뜻인데 타박 한마디 없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고,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변신시켜 주신다. 그것은 감사한 일이다.


단골 미용실의 매니저님은 식물을 잘 키우신다.

언제 보아도 미용실의 식물들은 반짝이며 건강하고, 드문드문 가는 만큼 식물들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보인다.

파마를 말고 앉아있을 때 잡지나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거울 앞에 있는 또는 거울을 통해 미용실 여기저기에 놓여있는 식물들을 관찰한다.

스투키와 산세베리아, 몬스테라, 보스턴고사리, 호야, 아이비, 단골손님이 가져다주신 예쁜 소엽 풍란 등등..

식물들의 건강 상태를 보고 있으면 어쩜 그렇게 식물을 잘 보살피는지 늘 감탄스러웠다.


미용실이란 특성상 손님과 미용사는 가까운 거리에서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있어야 한다.

비닐 보자기로 목을 조이고 나면 할 수 있는 건 말밖에 없는 무능력한 상황에 처한다.

부자연스러움을 피하려 의미 없는 사회, 경제, 가십의 얘기들을 나누게 되는 것이 불편했지만 그냥 그냥 맞장구를 치며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일반적인 미용실의 풍경이다.

어느 날 식물 키우기가 우리의 공통 관심사란 것을 알았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끼리는 통하는 반가운 마음이 있다.

금손이시라고 칭찬을 해드리며 식물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면 마음이 편하고, 어색한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그날은 잘라야 할 내 머리카락처럼 치렁치렁 늘어진 장미허브가 눈에 들어왔다.

그사이 : “연말이라 바쁘시죠? 장미허브 제가 좀 잘라드릴까요?”

매니저 : “그러게요. 잘라줘야지 잘라줘야지 하면서 요즘 자꾸 잊어버려요”

우리는 함께 늙어가는 동갑의 미용사와 손님이다. 자꾸 잊어버리는 것은 진심이며 그 변화를 이해한다.

내 머리에 롤을 다 말고, 마침 매니저님에게 틈이 생겼다.

그러자 장미허브의 가지를 싹둑싹둑 단정하게 자르셨다.


그사이 : “그 줄기 나 한 개만 주세요”

매니저 : “그러세요”

원장님 : “뭘 줄기를 드려. 숱도 너무 많은데 몇 뿌리째 뽑아서 드려. 그래야 더 잘 자라지”

앗! 달라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잘린 가지가 버려지는 게 아까워서 한 말이었는데..

옆에서 듣던 원장님이 말을 거드셨고, 장미허브는 결국 뿌리째 뽑혔다.

매니저님은 뿌리째 뽑은 장미허브를 가는 동안 목마를세라 키친타월에 물을 흠뻑 묻혀 뿌리를 감싸고, 테이크아웃 컵에 뚜껑까지 덮어 담아 주셨다.


선물처럼 주신 귀한 장미허브를 가지고 집에 돌아와 이가 나갔지만 버리지 못하던 아끼던 유리잔에 물꽂이를 해주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봄이 되니 뿌리가 제법 나와 흙으로 옮겨 심었다.

잘 자라기를 바랐는데 자꾸만 잎을 떨어뜨리고 노랗게 변해갔다.

불안한 마음에 그나마 잘 자라고 있는 한줄기를 잘라 다시 물꽂이를 한 후 뿌리가 나오자 흙에 심어 주었다.

다행히 잘 자리를 잡았고, 원하는 높이까지 키가 무럭무럭 자랐다.

더 이상 키가 자라면 부러질 수도 있으니 생장순을 잘라주었다.

양쪽으로 두 쌍의 잎이 돋아났고, 같은 방법으로 계속하니 가지와 잎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무성해졌다.

아래쪽의 기둥줄기에서는 나오는 새싹은 수형을 해치니 바로 잘라주며 기둥 줄기를 굵고 튼튼하게 키웠다.

마치 작은 나무처럼 예쁜 외목대 장미허브가 만들어졌다.

이 기간은 무려 1년이 걸렸다.


지난번 미용실에 갔을 때 외목대 장미허브의 사진을 보여드리니

“어머나! 이렇게 잘 키웠어요? 너무 예쁘다”

맡은 남의 집 아이를 잘 돌봐준 것 같은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미용실의 무성한 호야도 한줄기 얻어오고 싶다.

물론 장미허브도 호야도 흔하게 살 수 있으며 가격도 몇 천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왜 별것도 아닌 한줄기를 얻으려고 하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다.

식물은 줄기 하나로도 살아나고, 죽은 것 같던 흙속의 뿌리에서도 생명이 움튼다.

한줄기를 살려내려는 정성스러운 마음과 정성에 보답하는 식물에게서 느끼는 기쁨은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작은 줄기 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줄기 하나를 온전한 식물로 키워내는 일에 희열을 느낀다.

줄기를 키우는 것은 나의 보람찬 취미생활이다.



줄기 하나, 씨앗 하나는

언제나 나를 설레게 만든다.


장미허브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내게 왔다 (2021년)
물꽂이로 뿌리를 내린후 흙에 심어주었으나 시름시름 (2022)
튼튼해보이는 한줄기를 따로 심어 집중관리 시작 (2023 초)
곁가지는 잘라주며 키를 키운다
어느덧 원하는 키로 자라고, 동그란 수형이 되도록 가지를 치며 외목대수형을 갖추었다 (2024년 초)


식물에 대하여..


< 장미 허브 >

허브지만 식용이 아닌 관상용이다.

만지면 민트향 같은 깜짝 놀랄 강한 향기가 난다.


생육 환경 : 15~30도 정도의 환경에 적합하다. 직광 보다는 간접 햇빛에서 잘 자란다.

물 주기 : 과습은 좋지 않으므로 물 빠짐 좋은 흙을 사용하고, 잎이 쳐지거나 흙이 충분히 건조된 후에 물을 준다.

삽목 : 줄기를 잘라 물꽂이하여 뿌리를 내린 후 심는다 또는 흙에 바로 심어도 뿌리를 잘 내리는 편이다. (봄철이 무난하다)

장미꽃의 제일 작은 두개의 잎을 잘라주면 양쪽으로 두쌍의 잎이 나온다.

* 장미 허브를 외목대로 키우는 방법 *

1. 원하는 키가 될 때까지는 성장순을 자르지 않는다.

2. 원하는 키가 되면 성장순을 잘라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게 한다. (성장순-가장 마지막에 나온 잎 두장을 똑 끊어준다)

3. 성장순을 자르면 양 옆으로 잎이 두 쌍이 나오며 가지가 늘어난다.

4. 각각의 줄기에서 최소 잎 네 장을 남기고 생장순을 잘라준다. (같은 방법으로 생장순을 잘라주며 숱을 늘려준다)

5. 원하는 크기의 수형이 되면 주기적으로 가지를 쳐서 수형을 유지하며 키운다.


* 그사이의 한마디 추가

좁은 공간에서 키울 때는 외목대로 키우는 것을 추천한다.

장미허브는 과습만 주의하면 잘 자라는 편이어서 여름철 물 주기만 조심하면 된다.

공간에 여유가 있다면 풍성해지도록 가지를 치며 늘어지게 키우면 향기가 좋고, 동글동글한 잎이 아주 예쁘다.



새로 시작된 가지 하나
오늘 아침

비람결에 실려오는

장미허브의 향기가 아주 좋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한마디

효자 원장님의 백 한살이신 어머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 행복한 월요일이 시작되길 바랍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greenthumb



이전 09화 임파첸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