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안녕

식목일에 봄비가 온다.

by 그사이

3월 23일.

날이 따뜻해지니 불현듯 생각이 났다.

작년 늦가을 비누와의 산책길에 주워 온 족두리꽃의 씨앗.

족두리꽃의 씨앗을 찾다가 옆에서 작년에 살리지 못하고 겨우 받아둔 분홍 일일초의 씨앗도 발견했다.

"심어보자!"

배양토도 무엇도 없지만 그냥 심어 본다.

제라늄 전용 흙이 가벼운 편이니 괜찮을 것 같다.

작은 화분에 양파망을 깔고, 흙을 반쯤 넣은 뒤 저면관수로 천천히 흙을 적신다.

씨앗을 불려 심을까 하다가 그냥 흙 위에 뿌렸다.

그리곤 부드러운 흙이불을 덮고, 다시 저면관수로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싹이 나오길 바란다.'


3월 30일.

"저기, 거기에 있는 거 맞니?"

매일매일 들여다보는 사람의 시간도 식물의 시간도 참 더디 간다.

아주 오래 걸릴 셈인가?


4월 1일

"앗, 너 뭐야?"

족두리꽃의 싹이 빼꼼히 고개를 들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보일정도다.

그렇게 애를 태우더니 씨앗 하나가 살아났다.

처음에 꽤 많은 씨앗을 뿌리며 싹이 너무 많이 나오면 어쩌나 했던 걱정은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런데 실내에서 키우기엔 너무 키가 커지는 이 식물을 어디에 옮겨주어야 하나 걱정이 생긴다.

일단 살아나주어서 반갑고 기쁘다.


일일초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4월 5일. 식목일

식목일에 비가 내린다. 나무를 심고 씨앗을 뿌린 후 6일에 내리면 더 좋지만 워낙 메마른 상태이니 대지를 적시는 비가 아주 반갑게 느껴진다. 이 비가 오고나면 힘을 얻은 많은 생명이 살아날 것이다.


식목일이 되면 흙이 만지고 싶어진다.

물꽂이로 자라던 장미허브가 이제 작은 컵을 탈출하려고 하니 흙으로 이사를 시켰다.

그리고 물꽂이 상태에서 꽃까지 피운 아몬드 페페를 오랫동안 생각했던 흰꽃나도 샤프란의 화분 한 귀퉁이에 심어주었다. 잘 살아줄지는 모르겠다.

원래 그들은 한 화분에서 공생하며 살던 사이인데 억지로 분리를 하고, 몸살을 크게 앓았던 경험이 있다.

굳이 떼어내더니 다시 함께 살라고 하는 짓궂은 식집사의 마음이다.

아몬드 페페와 흰꽃나도 샤프란.

서로 아무 영향력도 없는 그 둘이 왜 공생을 하게 되었는지 아직도 답을 알지 못한다.


별거 아닌 식목일의 흙놀이를 마치고, 식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마음에 뭉클한 감동이 인다.

제한된 환경에서 이렇게 잘 살아주고 있는 나의 식물들이 참 예쁘고 기특하다.

고작 내가 하는 것이라곤 매일 식물에게 인사를 하는 것뿐인데..


"밤새 안녕?"


3월 23일
4월1일
4월 5일
물에서 흙으로..
12월에 잘라준 몬스테라에서 새로 나온 잎
식물들이 나와 함께 살아준다.


아몬드페페

흰꽃나도 샤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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