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금치나물

by 그사이


시금치 값이 반값이 됐다.

두 단에 5000원도 싼값은 아니지만 얼른 두 단을 집어왔다.

연한 잎을 똑 끊어 맛을 보니 조금 심심하고 향기가 연하지만 싱싱하다.

시금치의 잎 하나라도 아까워 맑은 물에 살랑살랑 씻어 팔팔 물을 끓이고 소금을 조금 넣어 살짝 데쳐낸다.

오랜만에 시금치나물을 하니 삶는 시간을 약간 넘겼지만 그런대로 괜찮다.

찬물에 씻어 뜨거운 기를 빼고, 물에 담가두니 찰랑거리던 초록이 영롱해졌다.

평소 나물에 마늘을 많이 쓰지 않는 편인데 시금치가 연한 맛이니 마늘과 파 그리고 설탕도 조금 넣어 양념맛을 추가했다.

고소한 볶음 참깨와 참기름으로 마무리해 주니 얼른 먹고 싶게 너무 맛있어 보인다.


시금치나물을 위해 흰쌀밥을 했다.

입구가 작은 나의 입은 여러 번 바쁜 일을 해야 한다. 항상 밥 따로 반찬 따로.

오늘은 귀한 시금치나물을 특별 대접을 해줘 본다.

숟가락을 들어 제일 먼저 밥 한술을 뜨고, 그 위에 시금치를 올려 한입에 넣으니 맛나다.


스뎅 숟가락 위의 밥한술은

마치 백금 위에 하얀 진주와 초록의 에메랄드가 어우러진

오로지 나만을 위한 세팅 같다.

이게 뭐라고 온전히 행복하다.


‘이제 보니 나에게 특별한 대접을 해준 것이로구나.’



밥 짓고 글 짓는 맛집글이 4월에 멈춰있다.

작년 시월. 누워서 떡 먹듯 쉬운 소재일 것 같던 음식이야기의 연재북을 시작했다. 얼마간이 지나고 분명히 매일 세끼를 먹고살았는데 음식글을 쓸 수가 없었다. 첫 번째 고비가 찾아왔을 때 <기간 미정. 일시적 휴재>란 글을 썼었다.

목구멍으로 무얼 넘긴다는 것이 국민적 감정을 헤치는 글이란 생각도 들었다. 멈출까 고민하며 꾸역꾸역 글을 간헐적으로 썼다. 오늘 들여다보니 연재북이 한참 아래 순위로 내려가 있다. 세상에나 심지어 5월엔 글이 하나도 없었다.

"이건 아니지 않니?"

언제나 기분 좋게 나를 작가로 칭해주는 작가의 서랍을 뒤적이다 보니 구겨서 처박아 둔 듯한 여러 개의 맛집 글이 보인다. 30개를 채울 수 있을 만큼 글들이 퇴고를 기다리고 있다. 퇴고해 보려 했으나 여전히 너무 어려웠다.

발행 취소 글란 누르지 않던 버튼을 살며시 눌러본다. 시금치 두 단이 글 속에 담겨 있다.

"이걸 발행해야겠다."

우선 오늘 나는 일시적 휴재란 그 제목을 바꾼다.

<맛이란 미각이 아닌 감정>

그 시간이면 조용하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열 살짜리 작문반 아이를 생각해 본다.

시금치 글처럼 촌스럽고 순진한 초심의 글을 다시 쓰고 싶어진다.




이 글은 아마 읽으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금값이던 시금치 값이 내려 기분이 좋던 날이었지요. 즉흥으로 발행하고 보니 좀 우스운 생각이 들어 삭제하려던 글이었는데 아예 휴지통에는 넣지 못했습니다. 발행 취소글로 서랍 속에 오래 들어있었어요.

별거 아닌 시금치 글이 이토록 정이 가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전에 올렸던 글에 마음을 조금 더 담아 맛집 연재글에 넣어줍니다.

제가 소중히 아끼는 글이어서요.


연재북. <밥 짓고 글 짓는 맛집>

라이킷으로 격려해 주시면 마음의 힘으로 끝까지 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3화. 맛이란 미각이 아닌 감정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