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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안심

빵과 분리불안

by 그사이


집에 빵이 떨어졌다.


온 가족의 아침으로 빵이 주식이 된 건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니까 십 년쯤 된다. 시어른들이 오실 때를 제외하곤 아침으로 빵을 먹는 것은 불문율이다.

다른 게 먹고 싶다면 각자 알아서 하기다.

주변에선 빵은 간식이지 식사로 먹긴 부족하다고 하기도 하고, 빵을 제대로 먹도록 준비하는 일이 번거롭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아침으로 먹는 우리 집엔 언제나 빵과 각종의 샌드위치 재료를 밑반찬처럼 구비해 두게 되어 빵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빵인데 우리 집 안에 빵이 떨어졌다는 건 마치 쌀이 떨어진 것과 같다.

간혹 나는 빵과 분리불안을 느낀다.

"어쩐지 불안하더라니 빵이 없군."

아무리 뒤져도 냉동된 빵조차 찾을 수가 없다. 내일 아침식사에 비상등이 켜졌다.

빵을 찾다가 거울 앞으로 간다.

“어디 내 모습을 좀 보자. 몰골이 말이 아니군. 어쩐담. “

사실 맨 얼굴로 문밖을 나가는 게 민폐인 내 모습이 문제가 될 건 없다. 코로나 시절이 지나고 나니 언제 어느 때 마스크를 써도 이상하게 보는 이가 없다. 모자처럼 마스크는 아주 고마운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문제는 문밖을 나가 빵을 사 오는 일이 내게 너무 귀찮다는 거다. 몇 천 원을 주면 맛있는 빵을 한 봉지 살 수 있지만 나는 빵을 만드는 일보다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다. 더군다나 집순이인 내가 요즘처럼 귀차니즘에 빠져있을 때 문밖으로 나가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어쩌겠어... 그까이꺼 대충빵을 만들어 볼까?'


레시피를 찾아 꺼내기도 귀찮다.

재료는 대충 강력분 세 컵 정도, 이스트 한 봉지, 따뜻한 물 한 컵, 소금 반술, 식용유 한술 반 정도. 끝.

이스트를 따뜻한 소금물에 활성화시키고, 강력분과 물을 넣어 반죽을 조물조물한 뒤 매끈해지면 동그랗게 만든다. 대충.

날이 알맞게 뜨뜻하니 날씨 요정의 도움으로 1시간 만에 1차 발효가 토실하게 부풀어 올랐다. 반죽을 잡아당기니 반죽의 하얀 실이 주욱 늘어나는 것이 제대로 발효가 됐다. 대충.

애써 부풀어 오른 반죽을 꾹꾹 누르고 접어서 공기를 빼주고 다시 둥글둥글 동그라미를 만들어 30분간 2차 발효를 마쳤다. 대충.

그렇게 대충대충 했는데 고맙게도 반죽이 아기 엉덩이처럼 보드랍고 예쁜 모양이 됐다.


“이제 굽자.”

예열된 오븐에 210도로 구워 노릇하게 겉색이 나면 180도로 20분간 구워준다. 이건 대충이 아닌 몸에 밴 버릇이다. 베이킹은 과학적 정확함이 꼭 필요하다.

드디어 대충대충 빵이 완성됐다.

칼날을 갈지 않고 대충 모양을 냈더니 빵의 얼굴이 못생겨진것이 꼭 내 맨 얼굴같다.

썰어서 맛본 대충빵은 달지 않고 담백한데도 진하고 고소하다. 집 빵이기에 가능한 맛이다.

빵과 얼굴이 닮은 나는 은은한 빵맛을 닮고 싶어진다.


6월이지만 한여름처럼 30도는 웃도는 오후. 오븐의 열기로 집안이 더 후끈해졌지만 마음이 편안해진다.

휴, 내일 아침은 안심이다.

내 맨 얼굴같은 빵
은은한 대충빵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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