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만나는 사람
<봄날의 산책>
벚꽃길을 따라 쭈욱 내려가면 지하철 역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대형 마트가 나온다.
마트를 지나면 시냇물이 흐르는 긴 산책로가 나온다.
냇가 산책로에 가면 백로와 오리가족도 만나고, 갈대와 일반 산책로와는 다른 꽃들도 만난다.
산책코스는 여러 루트지만 해가 지날수록 최종 목적지가 점점점 가까워진다.
올해는 비누가 작년 봄과 확연히 달라 작년에 쉬던 벤치까지 가지 못한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만나는 첫 번째 벤치에 앉아 있다가 돌아온다.
벚꽃이 버찌가 되어 떨어지는 시기를 제외하면 앉아있기에 좋다. 조용하고 풍경이 좋은데..
내년 봄엔 이 벤치까지 스스로 걸어서 올 수 있을지 그런 생각이 든다.
비누를 안고 있는 느낌이 좋아 미루고 있는 개모차를 사야 하나 또 고민을 하며 천천히 걷다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 할머니가 개모차를 힘들어 보이게 밀며 다가오신다.
산책길에 반려인을 만나면 동지를 만난 것 같아 마음이 열린다.
할머니는 강아지 유모차를 멈추고 가만히 비누를 쳐다보신다.
할머니의 강아지는 어떤 강아지일까 궁금하여 슬쩍 들여다보니..
강아지 유모차엔 커다란 수박이 들어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벌써 수박이 나왔나요?”
“손주가 수박을 좋아해서 사 오는데 여기 실으니 딱 좋아요”
유모차를 어디서 얻으셨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열세 살 강아지를 떠나보내셨다며 이내 눈물이 그득해지신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한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반려인들은 대부분 펫로스를 경험하며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내가 반려인이 아니었던 예전에 아는 분은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힘들어하다가 신경정신과에 상담치료를 다니는 걸 보았다.
그때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지 않을 거란 자신이 없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마음의 소용돌이를 겪고 나니 더욱 자신이 없다.
몇 년 전부터 펫로스에 대한 무서운 두려움이 몰아쳤다. 괴로웠고 해답이 없는 두려움에 떨다가 비누와 밖으로 나갔다.
좋은 날뿐 아니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낮이나 밤이나
매일 우린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며 사진도 찍고 일기를 썼다.
둘만의 시간 속 추억이 쌓이며 두려움이 희석되었다.
작년엔 참 많은 사진을 찍었다.
비누는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해서 누가 봐도 예쁜 사진을 찍으려면 자세를 낮추고 기묘한 자세로 수십 장을 찍어야 한다. 사진을 찍다가 누군가 다가오면 무안하기도 하다.
수십 장 찍는 사진과 동영상은 잘못 나온 것도 소중해서 핸드폰은 매일 메모리부족에 시달린다.
올해가 들어 안고 다니는 시간이 늘어나니 사진을 찍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전엔 비누와 함께 사진을 찍은 일이 없었다.
그런데 안고 다니는 시간이 많아지자 비누와 셀카를 찍는 일이 많아지는 좋은 점도 있다.
너와 내가 함께인 사진 속에서 빠르게 지나고 있는 비누의 시계를 실감하게 된다.
나는 다시 흔들린다.
할머니는 비누를 쓰다듬으시며 “아가,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
그리곤 내 등을 어루만지시며 미래를 이해하신다는 듯 “힘내요..” 하신다.
순간 마음의 바닥에서 쿵!
하마터면 나는 벚꽃이 날리는 길거리에서 울뻔했다.
아직은 비누와의 내년 봄산책이 없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이별에 대한 준비가 어디 있고, 준비한다고 잘할 수 있을까?
할머니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바람이 내 마음에도 찬바람이 되어 휘익하고 불었다.
따뜻한 봄날의 산책길에서..
* 반려생활의 에티켓을 지킵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