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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Apr 16. 2022

혼자만의

1.오전의 일기

와이파이를 껐다.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다.

어제는 유난히 웅크려 잠이 들었다. 베개도 베지 않고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무릎이 배에 닿게 접고는 그 사이 팔꿈치를 넣어 이불에 머리를 파묻었다. 첫 번째 깼을 때는 출근 시간이었다. 평소와 똑같은 아침 풍경에 금요일인지 토요일인지 잠시 헷갈렸다가 토요일이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팔짱을 끼고 두 팔을 쓰다듬어주었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남은 게 많지 않다. 요즘에는 어린 시절 읽었던 황금 뇌를 가진 사나이 이야기가 자주 떠오른다. 짧은 동화였는데 황금 뇌를 가진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여자가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조금씩 황금 뇌를 긁어준다. 계속 주다가 마지막에는 하나도 남지 않은 채 마지막 부스러기 황금을 건네며 이야기가 끝난다. 나도 긁어서 내어주다 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아닐까. 빈껍데기로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온다.


 어제는 바구니에 담긴 쑥을 보고 저 쑥이 나보다 싱싱하다며 동료와 웃었다. 지침을 지나면 지친다는 감각이 무뎌지고 유희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마들렌을 사러 갈 생각 하나로 하루를 버텼다. 그 설렘에 미소를 짓는 나를 보며 작은 빵 하나로도 웃는 난데, 하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했다.


자꾸만 혼자 있고 싶어지는 마음. 굴속에 웅크려있어지고 싶고 싶어지는 마음.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숨어 봄 잠을 자고 싶다. 찾지 마시라고 하고. 함께하기 위해서 혼자가 된다는 그리고 때때로 그 사실을 미안해한다.


 밤새 구부려놓은 허리를 뻗어 기지개를 폈다. 켜다와 펴다를 알아보다가 ‘기지개를 켜다’에 싹트다 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싹이 텄을까. 나가서 걸어야겠다. 컴컴한 곳까지 햇볕을 쬐어 자라게 해야지. 슬픔을 접고 접어 호주머니에 챙긴다.

.

.

2.오후의 일기 

홀로 천천히 걸었다. 호주머니에는 월요일로 유예해둔 슬픔이 들어있다. 반 아이의 부모님이 하시는 베이커리에 가서 빵을 사고 푸딩 두 개를 받아왔다. 가려던 카페는 오늘 휴무고 근처에 햇빛이 잘 드는 카페를 찾아 들어왔다. 멍하니 앉아 창밖에 지나가는 것들을 보고 있으니 완전히 나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하는 착각에 빠진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음료 한 잔을 두고 창밖을 구경할 여유, 10분 남짓을 걸어 빵을 사는 여유, 예정 없이 지나게 된 가게를 들어가 볼 여유 같은 것들. 퍽퍽한 카스텔라에 우유 한 모금 같은 것들 말이다. 숨도 못 쉴 것 같을 때 그것들을 내려가게 해줄 것들이 필요하다.


카페 문에 달린 판은 뒤집는 것 한 번으로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앞면은 Open 뒷면은 Close.

오전엔 Sad 뒤집어 오후엔 Happ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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