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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Aug 15. 2022

녹슨 우산

 우산을 펼치니 녹이 슬어있었다. 녹이 슬고도 빗방울 떨어지지 않게  역할은 해낸다. 우산을 접을 때면 한장 한장 곱게 접어 나가며 귀하게 여긴다고 했는데도 녹이  것은 젖은 우산이  사람에게 닿을까 서둘러 접고는 말리지 않아서였다.


물건을 사용하는 이의 태도는 물건에 고스란히 깃든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보다는 속으로 곪는 게 익숙한 나를 닮아, 그러고도 종종 그대로 방치하곤 하는 나를 닮아 우산도 녹이 슬었다.


우리도 녹슨 구석 하나씩은 있지 않나. 하물며 강한 쇠도 쓰다 보면 녹이 스는데 사람이라고 성할 수 있을까. 녹슬었다고 버리면, 내게 누군가 그런다고 생각하면 왠지 슬퍼서 우산을 버리지 않는다.


어느 날은 녹이 슬고도 녹물 하나 없이 내리는 비 다 막아주는 녀석이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녹이 슬어 삭아진 마디 품고도 비를 막아내야만 하는 것이 짠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버려지는 그것보다는 쓰이는 기쁨이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뒤이어 한다.


비가 오면 사람은 다 이 연약한 것에 기댄다. 힘이 센 사람도, 가진 게 많은 사람도 쇠 살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펼쳐질 수 있는 우산대에 고정된 얇은 천 하나에 의지한다. 그 사실을 자주 상기하려고 한다.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그런 연약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산 없이는 꼼짝도 못 하는 사람의 연약함과 무게도 없는 말 한마디에 꼼짝 못 하는 마음의 연약함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작고 별것 없어 보이는 것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괜히 소중히 여기게 된다. 연약한 것들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한다.

 가져도 가져도 계속 채워야 할 것 같이 허전한 나날이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적어도 많이 가지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덤벙대고 소중히 여기는 것에는 서툰 내가 녹슨 우산을 들여다보고 볕 잘 드는 곳을 찾아 펼치는 모습. 그런 나를 떠올릴 때마다 자신을 조금 더 따듯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나는 작은 것을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고.


비가 오는 오늘도 녹슨 하늘색 우산을 집어 든다. 우산을 펼쳐 짙은 주황색으로 녹이 슨 자리를 한번 바라보다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우산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집에 돌아오면 잊지 않고 펼쳐놓고 말린다. 이미 녹이 슨 자리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제라도 더 녹슬지 말라고 뒤늦은 돌봄을 한다.


우산이 바짝 마르면 곱게 접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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