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펼치니 녹이 슬어있었다. 녹이 슬고도 빗방울 떨어지지 않게 제 역할은 해낸다. 우산을 접을 때면 한장 한장 곱게 접어 나가며 귀하게 여긴다고 했는데도 녹이 슨 것은 젖은 우산이 옆 사람에게 닿을까 서둘러 접고는 말리지 않아서였다.
물건을 사용하는 이의 태도는 물건에 고스란히 깃든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보다는 속으로 곪는 게 익숙한 나를 닮아, 그러고도 종종 그대로 방치하곤 하는 나를 닮아 우산도 녹이 슬었다.
우리도 녹슨 구석 하나씩은 있지 않나. 하물며 강한 쇠도 쓰다 보면 녹이 스는데 사람이라고 성할 수 있을까. 녹슬었다고 버리면, 내게 누군가 그런다고 생각하면 왠지 슬퍼서 우산을 버리지 않는다.
어느 날은 녹이 슬고도 녹물 하나 없이 내리는 비 다 막아주는 녀석이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녹이 슬어 삭아진 마디 품고도 비를 막아내야만 하는 것이 짠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버려지는 그것보다는 쓰이는 기쁨이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뒤이어 한다.
비가 오면 사람은 다 이 연약한 것에 기댄다. 힘이 센 사람도, 가진 게 많은 사람도 쇠 살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펼쳐질 수 있는 우산대에 고정된 얇은 천 하나에 의지한다. 그 사실을 자주 상기하려고 한다.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그런 연약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산 없이는 꼼짝도 못 하는 사람의 연약함과 무게도 없는 말 한마디에 꼼짝 못 하는 마음의 연약함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작고 별것 없어 보이는 것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괜히 소중히 여기게 된다. 연약한 것들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한다.
가져도 가져도 계속 채워야 할 것 같이 허전한 나날이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적어도 많이 가지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덤벙대고 소중히 여기는 것에는 서툰 내가 녹슨 우산을 들여다보고 볕 잘 드는 곳을 찾아 펼치는 모습. 그런 나를 떠올릴 때마다 자신을 조금 더 따듯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나는 작은 것을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고.
비가 오는 오늘도 녹슨 하늘색 우산을 집어 든다. 우산을 펼쳐 짙은 주황색으로 녹이 슨 자리를 한번 바라보다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우산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집에 돌아오면 잊지 않고 펼쳐놓고 말린다. 이미 녹이 슨 자리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제라도 더 녹슬지 말라고 뒤늦은 돌봄을 한다.
우산이 바짝 마르면 곱게 접어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