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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鳥鳴磵(조명간) / 새 우는 산 계곡

금삿갓의 漢詩工夫(251125)

by 금삿갓

鳥鳴磵(조명간) / 새 우는 산 계곡

- 王維(왕유)


人閒桂花落

인한계화락

○○●○●

사람이 한가하니 계수나무 꽃 떨어지고


夜靜春山空

야정춘상공

●●○○○

밤도 고요하여 봄 동산이 비었구나.


月出驚山鳥

월출경산조

●●○○●

달이 솟아오르니 산새들 놀라서


時鳴春磵中

시명춘간중

○○○●○

때때로 봄 시내에서 울어대노라

人心(인심)이 無事(무사)하야. 湛然淸虛之中(담연청허지중)에 見物性之自然(견물성지자연)하니 自開自落而已(자개자락이이)라. 人閒則日亦靜(인한즉일역정)이온 何況是夜(하황시야)리오. 夜靜(야정)에 雖鬧處(수뇨처)나 皆空(개공)이온 何況春山(하황춘산)이 息旣靜(식기정)하야. 一切皆空(일체개공)이리오. 有謂桂花落(유위계화락)은 與春字礙(여춘자애)나 然(연)이나 桂亦有四季開花者(계역유사계개화자)하니 不必以詞害意(불필이사해의)니라.

사람의 마음에 일이 없어서, 담연히 맑고 텅 빈 가운데 사물의 성질의 자연스러움을 보니 저절로 피고 저절로 떨어질 뿐이다. 사람이 한가하니 날도 역시 고요한데 하물며 이 밤이겠는가? 밤이 고요해 비록 시끄럽던 곳도 모두 비어 있는데, 하물며 봄 산이 쉬어 이미 고요하여 모두 다 비어 있음에랴. 계수나무 꽃이 떨어진다 말한 것은 春(춘)자와 더불어 거리끼지만, 계수나무 역시 사계절 꽃을 피는 것이 있어서 말이 뜻을 반드시 해하지는 않는다.


人閒夜靜時(인한야정시)에 萬籟俱寂(만뢰구적)하더니 忽然月出光射樹間(홀연월출광사수간)하야 驚却棲樹之山鳥(경각서수지산조)하니 月無心(월무심)하고 鳥亦無心(조역무심)하니 只是從閑靜中(지시종한정중)하야. 覺得如此(각득여차)라. 夜非鳥鳴之時(야비조명지시)로대 爲月出而驚(위월출이경)하니 天機忽動(천기홀동)하야. 鳥鳴在樹(조명재수)하야. 其聲(기성)이 在澗而此鳥與澗則同在春山之中(재간이차조여간즉동재춘산지중)하야. 非從無事(비종무사)라. 人(인)이 無心中一聽(무심중일청)에 又何知是鳥鳴春澗中也(우하지시조명춘간중야)리오. 因鳥名(인조명)하야. 遂以鳥鳴命題(수이조명명제)라.

사람이 한가하고 밤이 고요한 때에 모든 소리가 모두 고요하더니 홀연히 달이 나와서 나무 사이로 빛을 비추어 나무에 깃들인 새를 놀라게 하였다. 달이 무심하고 새도 무심하니 다만 이같이 한가함을 따라 조용한 가운데 이같이 깨달은 것이다. 밤은 새가 우는 시간이 아니지만 달이 떠서 놀라니 천기가 홀연히 동하여 새가 나무에서 울어 그 소리가 산골 시내에 있고, 이 새가 산골 물과 더불어 봄 산중에 함께 있어 따라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무심중에 한번 듣고 또 어찌 이 새가 봄 산골물 사이에서 우는 것을 알았겠는가? 새 이름으로 인하여 마침내 새가 운다는 것으로 제목을 지었다.


* 왕유가 친구 황보악의 별서인 운계에서 지은 《皇甫岳云溪杂题五首(황보악운계잡제오수)》 중의 하나.

산.JPG

* 王維(왕유) : 자 마힐(摩詰). 산시성[山西省] 출생. 9세에 이미 시를 썼으며, 서(書)와 음곡(音曲)에도 재주가 뛰어났다. 아우인 진(縉)과 함께 일찍부터 문명(文名)이 높았으며, 특히 기왕(岐王)의 사랑을 받아 731년 진사에 합격, 태악승(太樂丞)이 되었다. 후에 제주(濟州:山東省 荏平縣)의 사창참군(司倉參軍)으로 좌천되었으나, 734년 우습유(右拾遺)로 발탁되어 감찰어사 ·좌보궐(左補闕) ·고부낭중(庫部郞中)을 역임, 이부낭중에서 급사중(給事中)이 되었다. 안녹산의 난을 당하여 반란군의 포로가 되어 협박을 받고 할 수 없이 출사하였다. 반란 평정 후 그 죄가 문책되었으나 아우 진의 조력과 반란군 진중에서 지은 천자를 그리는 시가 인정받아 가벼운 벌로 치죄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다시 등용되어 상서우승(尙書右丞)의 자리까지 벼슬이 올라갔다. 그 때문에 왕우승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왕유는 육조시대(六朝時代)의 궁정시인의 전통을 계승한 시인이라 하여 장안(長安) 귀족사회에서는 칭찬이 자자하였고 존경도 받았다. 그의 시는 산수 ·자연의 청아한 정취를 노래한 것으로 수작(秀作)이 많은데, 특히 남전(藍田:陝西省 長安 동남의 縣)의 별장 망천장(輞川莊)에서의 일련의 작품이 유명하다. 맹호연(孟浩然) ·위응물(韋應物)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왕맹위유(王孟韋柳)로 병칭되어 당대 자연시인의 대표로 일컬어진다. 또 그는 경건한 불교도이기도 해서, 그의 시 속에는 불교사상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특색이다. 《왕우승집》(28권) 등이 현존한다. 그림은 산수화에 뛰어나, 수묵(水墨)을 주체로 하였는데, 금벽휘영화(金碧輝映畵)에도 손을 대고 있어 화풍 또한 다양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순정 ·고결한 성격의 소유자로, 탁세(濁世)를 멀리하고 자연을 즐기는 태도 등은 남송문인화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송나라의 소동파(蘇東坡)는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평하였다. 당시는 장안(長安)에 있는 건축의 장벽산수화(牆壁山水畵)나 《창주도(滄州圖)》 《망천도(輞川圖)》 등이 알려져 있었으나 확실한 유품은 전하여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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