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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걸으며

by 금삿갓

일전에 상암동에 들러서 오찬을 하고 하늘공원의 억새밭을 산책한 후에 좀 더 걸으려고 공원 주변의 메타세쿼이아 숲길로 들어갔다. 늦가을을 맞아서 이 나무들도 이젠 푸름을 다하고 주황색으로 변해 있었다. 몇 년 전 여름에 이 길을 걸을 때는 초록의 향연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또 다른 감흥을 준다. 나무 밑 오솔길에는 그늘에서 잘 자라는 맥문동(麥門冬)이 겨울이 오거나 눈이 내리든 말든 짙은 녹색을 자랑하면 생기가 돈다. 잎이 가녀리게 생겼는데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이곳의 원래 이름이 난지도(蘭芝島)니까 난초(蘭草)와 지초(芝草)가 많아서 붙인 이름일 것이다. 생긴 모양이 난초나 맥문동이 비슷하니 제 자리를 잘 찾은 듯하다. 난지도는 그 좋은 이름이 1978년부터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15년 동안 이용되어, 쌓인 쓰레기 더미가 90m 산 높이가 된 것이다. 침출수를 뽑아내고, 부패가스를 채집하여 화력발전소를 돌리고, 생태공원을 조성하여 옛날의 냄새나던 쓰레기장은 멋진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이젠 정말 시민에게 매우 필요한 공원이 된 셈이다. 줄지어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으면 지자체에서 설치한 각종 시설도 있고, 많은 멋진 시를 읽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시인의 거린 셈이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필자 금삿갓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뒤쪽에도 제법 많이 조성되어 있다. 경부고속도로 변에 조성된 숲길인데 ‘길마중길’이라고 부른다. 이곳에도 메타세쿼이아·은행나무·소나무·느티나무·단풍나무 등 다양한 숲이 무장애로 2.5Km 조성되어 있다. 수령(樹齡)도 난지도 것이랑 비슷하다. 우리나라 재래종이 아닌데 우리 땅에서도 마치 제 고향인 것처럼 잘 자란다. 그래서 원산지를 찾아보니 중국이다. 그런데 이 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살아있는 화석이란다. 메타세쿼이아는 중생대 백악기에 출현하여 신생대 제3기 전기까지 아시아와 북아메리카에 널리 자생했다가 멸종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9년 일본의 교토제국대학 교수이자 식물학자인 미키 시게루(三木茂)가 처음 화석을 발견했는데, 생김새가 세쿼이아(Sequoia)와 유사했다. 그래서 1941년 자신이 발견한 신종 화석을 발표하면서, 라틴어 메타(Meta) 즉 나중에란 뜻을 접두어로 붙여서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로 명명했다고 한다. 1941년 국립중앙대학 임학과 간탁(干鐸) 교수가 쓰촨성과 후베이성 일대의 식물종 조사를 하던 도중 모도진(謀道鎭)을 지나갈 때 "모도계(謀道溪)"라는 작은 시냇가에서 비교적 특이하고 흔치 않은 큰 나무를 발견했다. 그 지역에서는 흔히 "물소나무(水桫)"라고 불리며 그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표본을 구할 수 없었다.

1943년 왕전(王戰) 중앙임업실험소 교수가 후베이성 은시(恩施) 근교를 신농가 과학 시찰을 가던 중, 그 해 7월 21일 만현 (萬縣 : 현재 충칭시 완저우구) 마도계(磨刀溪에서 1억 년 전 공룡시대, 세계 다른 지방에서 널리 분포했다 멸종된 오래된 수종의 살아있는 화석인 메타세쿼이아의 가지와 구과(球果) 표본 여러 점을 채취해 자세히 연구했다. 이 식물은 1948년 북경대 기념생물학 연구소 소장 호선숙(胡先驌)이 정만균(鄭萬均) 교수와 함께 공식적으로 '수삼(水衫) 나무'로 하고, 학명은 미키 시게루(三木茂)가 발표한 메타세쿼이아로 명명되어 발표하자, 국내외 식물학계와 지질학계를 뒤흔들었다. 그는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첫 발견 당시 중국에 약 4,000그루 정도만 남아있던 멸종위기종이었다. 중국이 원산지인 이 나무는 실제 존재 사실을 중국인이 최초로 발견했으나 잎과 씨를 채집하지 못했고, 2년 후 표본을 채집하였으나, 일본이 먼저 화석의 분석으로 학명을 정하였기 때문에 중국은 그 기회를 놓쳤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고생물학과장인 랄프 워크스 체니(Ralph Works Chaney) 박사는 1948년에 메타세쿼이아를 현장 조사하기 위해 특별히 중국을 방문했다. 이렇게 해서 이 품종이 미국으로 퍼지고, 전 세계 50개국 이상으로 분포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처음 1956년대에 들어와서 그 후 가로수로 많이 식재되었다. 지금은 알래스카를 포함한 북위 60도까지 확장되었다. 호선숙 교수는 메타세쿼이아를 칭송하면서 스스로 35련(聯)의 칠언배율(七言排律) 시를 지어 노래 불렀다.

이 나무는 크기는 보통 35m 정도 자라며, 최대 50m까지 큰다. 평균 수명은 100년 이상이고, 400년 넘게 자라는 개체도 발견된다. 씨로도 번식되고 삽목(揷木)으로도 가능하다. 번식방법이나 성장 속도도 좋아서 단기간에 넓게 분포되었다. 이는 관상용 가치·경제적 가치 모두 뛰어나다. 나무의 모양으로 언뜻 봐서 목우송이나 삼나무와 헷갈릴 수 있는데, 잎으로 확연히 구분이 가능하다. 메타세쿼이아는 잎이 한쌍씩 정확히 대칭되게 마주 나고 삼나무는 침엽수 형태이다. 더우기 메타세쿼이아는 낙엽이 되지만 삼나무는 사철 상록수로 화연히 구분이 가능하다. 편배나무(히노끼)도 상록수이고 잎은 측백나무잎과 비슷하다.

메타세쿼이아는 암수꽃이 같은 나무에 피어서 솔방울 보다 훨씬 작은 열매를 맺는다. 산책하면서 느끼는데, 이 나무는 정말 하나도 구부러지거나 곁가지가 몸통처럼 커지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냥 올곧게 하늘을 향해 자란다. 산책길에는 이 나무가 줄지어 있고, 중간중간 은행나무나 다른 수종이 있다. 그러니까 다른 나무들도 덩달아 구부러지거나 옆으로 가지를 많이 벌리지 않고 위로 곧장 자란다. 마치 사자성어(四字成語)인 봉생마중(蓬生麻中)을 증명하듯 한다. 봉생마중(蓬生麻中) 불부자직(不扶自直) 즉 쑥이 삼밭에 나면 도와주지 않아도 절로 곧게 자란다는 뜻이다. 그냥 길섭에서 나고 자라는 쑥들은 이리저리 마구 구부러지게 자라는데, 빽빽한 삼밭에서 삼대랑 생존경쟁을 해야 하니 구부러질 여유가 없을 거다. 이곳의 다른 나무들도 위로만 잘 자라는 메타세쿼이아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인간 세상도 다를 게 없다. 곧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굽은 사람이 견딜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판에는 곧은 나무는 찾아볼 수 없고 온갖 굽고 휘어지고 뒤틀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무들이 곧게 잘 사는 백성들을 바로 인도하겠다고 악다구니를 쓰는 꼴이 정말 한심스럽다. 시베리아 벌목공들을 불러와서 모조리 베어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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