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인이 장문에 갇혀 있다가 또한 나와서 임금을 뵙는 예가 있어서, 반드시 감궁자가 이끌어 내야 한다. 그 궁문이 항시 닫혀있으므로 문을 여는 것이 다만 잠시 뿐이다. 이때에 비록 잠시 천안을 가까이할 수 있지만 궁녀의 맘속에 총애와 은혜를 바라는 마음이 없을 수 없다.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니니, 이 조회가 상례를 따름에 지나지 않을 뿐이란 것을 누가 알겠는가? 특별한 은혜가 있은 것은 아니다. 이미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니 필시 원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궁녀가 적적함을 지키어 문이 열리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뒤에는 도리어 수심을 동하는 구절이니 어찌하겠는가? 조회가 끝나 예전대로 문에 들어가니 감궁자가 물리치고 은자물통을 거두어 버리고 쇠사슬로 닫아버리니 이런 즈음의 감정이 궁중을 나갈 수 없음보다 더욱 비참하니, 이 문에 한번 들어가면 또 어느 날에나 다시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문이 닫힌 뒤에 잠을 자려해도 잘 수가 없고, 다만 궁에 가득한 밝은 달빛과 텅 빈 뜰에 떨어지는 꽃잎을 보인다. 습관이 되어버린 처량한 나날로 향하는 것이나, 지금은 또한 의연히 여기에 있다. 말이 여기에 이르니 글자마다 원망이, 골수에 들어오는 것 같다.
* 杜牧(두목) : 지금의 산시(陝西)성 성도(城都)인 시안(西安)에 해당하는 경조(京兆) 만년(萬年) 출신이다. 자는 목지(牧之)라 했고, 호는 번천(樊川) 또는 번천거사(樊川居士)라 했다. 『통전』이라는 역사서를 남긴 재상 두우(杜佑)의 손자이기도 하다. 문종 대화(大和) 2년인 828년에 진사가 되어 홍문관교서랑(弘文館校書郞)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일찍이 강서선흡관찰사(江西宣歙觀察使) 심전사와 회남(淮南) 절도사 우승유 밑에 들어가 감찰어사(監察御史)와 후베이성 황저우(黃州)와 안후이성 츠저우(池州), 저장성 목주(睦州) 등지의 자사를 지냈고, 조정에 들어가서는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이 되었다. 무종 회창(會昌) 연간에 고공낭중(考功郎中)과 지제고(知制誥, 국왕의 교서 작성직),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역임했다. 문장과 시에 능했던 두목은 이상은과 더불어 ‘소이두(小李杜)’로 불렸다. 대표작으로 「아방궁부(阿房宮賦)」 외에 「강남춘(江南春)」과 『번천문집(樊川文集)』 20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