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이백이 벗과 더불어 대작한 것이다. 산꽃이 성대히 핀 때에 술상을 꽃떨기 속에 마련한 두 사람이 더불어 서로 술을 권할 적에, 이백이 잔을 들어 객에게 권하고, 객이 술잔을 들어 이백에게 권하여, 한잔 또 한잔하여 몇 백 잔에 이르러 술이 이미 깊이 취한 것이다. 이백이 객에게 말하되 “나는 이미 취해서 막 졸음이 쏟아지고, 그대는 또한 돌아가고자 하니, 내일도 만약 오늘 같은 놀이에 뜻이 있다면 그대는 거문고를 안고 와서, 다시 이곳에서 잔을 주고받으며 서로 즐겨서 다 못한 흥미를 즐길 것이나, 또한 꽃을 날리는 바람이 불까 걱정일 뿐이다. 위의 두 구절은 술잔이 교차함을 말했고, 아래 두 구절은 다시 후일을 기약할 것을 묻는 말이다.
* 이백(李白) :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의 시인. 자(字)는 태백(太白)이고. 호(號)는 주선옹(酒仙翁)·해상조오객(海上釣鰲客)·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꿈에 태백성(太白星)을 보았다고 한다. 성품이 호방하여 세속에 매이지 않아 천하를 유람하며 시주(詩酒)로 생활하였다. 시풍이 웅기하고 호방하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언어의 흐름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음률의 조화와 변화가 다양하다. 천보(天寶) 원년(元年: 742년) 가을에 처음 장안(長安)에 나와 하지장(賀知章)을 만나 적선인(謫仙人)으로 찬양되면서, 그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다. 그 뒤 현종(玄宗)을 알현하여 시문의 재능을 인정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으로 임명되고 궁정 시인이 되기도 했으나, 일생을 불우하게 방랑하며 보냈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 되며 한시(漢詩)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져 이백(李白)은 시선(詩仙), 두보(杜甫)는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성당(盛唐) 시기 시가(詩歌) 예술의 최고봉에 올랐다. 지금까지 전하는 시가 1천여 편에 달하고 이태백시집(李太白詩集) 30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