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삶
파마를 안 하겠다고 단발로 자른 머리는 오히려 손이 많이 갔다. 전에는 반곱슬에 부스스한 머리끝을 파마로 동글동글하게 유지했었는데 컬이 없으니 생각보다 정리가 안됐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삼각김밥이 되기 십상이다. 열심히 말려도 머리카락은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고 자기들끼리 춤을 추고 있었다. 쭉쭉 뻗는 머리를 해보겠다고 칼단발을 했던 게 문제였나 보다. 아무래도 층을 좀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용실을 예약해두고 나니 갑자기 또 잡생각이 올라왔다. 머리카락에게 자유를 주고 돈도 줄여보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는 게 맞나,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은데, 그래도 파마보다는 싸니 괜찮은 건가.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이상한 경제구조 속에서 커트 비용 또한 과거에 비해 많이 올랐다. 집 근처 미용실은 25,000원. 우리 동네만 비싼 건지. 기장은 그대로 두고 층만 내고 싶은 건데 돈이 좀 아까웠다. 이것도 셀프로 해볼까.
긴 머리를 처음 자를 때 셀프 컷에 대해 검색했었다. 안 나오는 게 없는 인터넷 세상. ‘단발 레이어드 셀프 컷’으로 검색어를 넣고 관련 동영상을 50번쯤 봤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데 내가 하면 망치겠지?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남편이 그런다. “그들은 전문가잖아. 그러니까 자기 머리도 잘 자르겠지. 망쳐서 미용실 가고, 헛고생하지 말고 그냥 내일 미용실 가.” 의욕을 꺾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남의 편 님.
에라 모르겠다. 남편 말대로 망치면 미용실 달려가지 뭐. 망쳐도 내가 망친 거니 남 탓할 일도 없고.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의외로 내가 금손일 수도 있고. 밤 9시가 넘어 화장실로 들어갔다. 비닐에 구멍을 뚫어 커트보처럼 덮어쓰고 동영상을 켰다. 가이드가 되는 머리를 잡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싹둑 잘랐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뭐가 되든 완성시켜야 한다. 내 손보다 빨리 가는 영상을 뒤로 당기며 시키는 대로 잘랐다. 뚜껑을 자르고 옆머리랑 연결하고 위아래 층을 연결하고. 이만큼 잘라야 하나, 더 잘라야 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내 사랑스러운 작은 조력자가 옆에서 “잘라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될 땐 자르지 말랬잖아.” 말해줬다. 고마워!
얼추 마무리하고 머리를 털고 말려봤다. 오! 생각보다 괜찮다. 염색은 몰라도 커트는 망치면 맹구처럼 보일까 두려움에 엄두도 못 냈는데. 이만하면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 디테일이 깔끔하게 떨어지진 않지만 시도했다는 게 중요하다. 자급자족 스킬을 하나씩 늘리는 게 목표인데 할 수 있는 게 오늘도 성공이다. 역시 안 해보면 모른다. 해봐야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다.
미용실에 가야 할 이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파마를 중단하고 염색은 셀프로 하자고 하면서 미용실은 커트만 하러 가려고 했는데 그것마저도 이유가 사라졌다. 물론 디테일한 예쁨을 포기해서 일 수도 있고 다음엔 망할 수도 있다. 자르다 망하면 미용실로 달려가면 되지 뭐.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이 좋다. 반드시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는 것. 두 번에 한 번만 갈 수도 있고 점점 스킬이 늘어나면 셀프 컷의 달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상상도 해본다.
다음엔 뭘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