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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곰 Jul 23. 2022

비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소박한 삶



한참 미니멀리즘에 빠져있을 때가 있었다. 인터넷 카페에서 딱 필요한 물건들만 있는 정갈한 집의 사진을 보니 우리 집이 물건으로 가득 차 있어 답답해 보였다. 아이 어릴 때 온갖 육아템을 사느라 몽땅 부었던 퇴직금. 그때 샀던 것들과 그전부터 쌓아뒀던 물건 비우기에 몰두했다.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을 몇 권 보니 지난 1년 동안 쓰지 않았던 물건들은 앞으로도 쓸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창고 구석에 있던 물건들을 꺼냈다. 팔면 돈이 될 것 같은 물건들은 팔고 남들도 쓰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은 온라인에서 나눔 하기도 하고 그것도 귀찮아지면 그냥 버렸다.


자잘한 짐들은 정리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여전히 집은 답답해 보였다. 이참에 남편과 늘 한 몸으로 있어 보기 싫었던 소파를 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인조 가죽이 삭아서 가루가 떨어지던 걸 테이프로 간신히 가려가면서 사용하고 있었던 터였다. 침대도 프레임이 거창하게 느껴져 매트리스만 놔두고 버렸고, 화장대도 나눔 했다. 남편은 신혼 가구들이 버려지는 걸 탐탁지 않아했지만 나는 큰 가구들을 비워야 집이 깔끔해진 게 눈에 확 띈다며 남편을 설득했다.


한동안 비우는 것에 열중하고 나니 슬슬 불편한 것이 느껴졌다. 소파가 없어지면 자연스레 식탁에서 진솔한 얘기들을 나눌 거라 기대했지만 마땅히 앉을 곳이 없어 방황했고, 프레임이 없으니 바닥과 밀착된 매트리스에 곰팡이가 필까 싶어 바닥만 있는 프레임을 샀다. 막상 버리고 나니 필요해져 다시 사게 된 물건도 있었다. 짐은 대체로 줄었지만 버리고 다시 사는 일이 반복됐다. 옆에서 다 지켜보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이게 무슨 돈XX이니." 나도 아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마, 흑.


옷도 마찬가지였다. 살 빼면 입어야지 했던 옷, 유행이 지나 이젠 입지 않는 옷이 옷장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보기 싫었다. 여유로워진 옷장을 기대하며 정리한 옷을 분리수거장 옷 수거함에 넣었다. 하나를 사면 하나는 버린다는 미니멀리즘 원칙을 잘 지켰다고 뿌듯해했다.




그러다 우연히 옷에 대한 다큐를 봤다. 우리가 무심코 옷 수거함에 넣었던 옷들이 수입국에서는 쓰레기 더미가 되어 그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영상 속 옷 쓰레기는 내가 수거함에 넣었던 옷이었다. 나는 안 입는 옷, 못 입는 옷이지만 필요한 나라에서는 감사하게 입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루로 묶여있는 옷 더미를 하나 구매해서 열어보면 갖가지 옷들이 무분별하게 섞여 있다. 분명 그들에게 필요한 옷들도 있지만 그 나라 환경에 맞지 않거나 낡아서 입지 못하는 옷들도 수두룩 했다. 옷을 구매한 사람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옷은 수입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하고도 그들 안에서도 소비되지 못하는 옷은 한쪽 구석에 쌓여 쓰레기 더미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풀이 있던 곳에 옷이 있으니 그곳의 소들은 옷을 씹어 먹고 있었다.


세계 인구 28위의 우리나라는 옷 수출로는 세계 5위다. 인구수에 비해 참 많은 옷을 수출하고 있다. 저렴하게 옷을 살 수 있고 유행에 민감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 철 입고 버리는 내구성이 약한 옷은 유용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그렇게 버려지는 옷들로 누군가는 고통을 받고 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버리는 물건들이 반드시 어딘가에는 쌓이고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내 눈앞에서 없어진다고 물건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지금 나에게 필요 없으니 버리고 필요해지면 또 샀던 돈 낭비 미니멀리스트. 인터넷에 올리고 만날 약속을 잡는 게 귀찮아서 나눔 하지 않고 버리기도 했던 가짜 미니멀리스트. 내가 버리는 물건을 사정이 어려운 이는 감사히 쓸 거라고 생각한 오만한 미니멀리스트. 그게 나였다. 제로 웨이스트를 기반으로 다시 미니멀리즘에 도전하는 지금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버리는 것을 신중히 생각하고 사는 것은 더 고민하며 사람과 환경을 배려하는 나의 미니멀리즘 시즌2를 더욱 값지게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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