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귤곰 Nov 11. 2022

주말의 소소한 일거리


올해 시작 무렵 가깝게 지내던 친구와 소원해진 적이 있다. 아이들 나이도 비슷해 주말에도 자주 만나 아이들과 함께 여기저기 다녔던 친구였다. 갑자기 그 친구를 안 만나게 되니 주말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주말에 아이와 할 것들을 찾아 숲 체험, 놀이 학교 등을 알아보는데 마침 휴대폰에서 띵똥하고 울리는 알림 하나, <한살림 도시 농부 학교 모집>. 안 그래도 평소에 시골 생활과 텃밭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인 <삼시세끼>를 보면서 내가 키운 채소로 요리를 해 먹으면 어떨까 궁금했다. 직접 흙을 만지고 텃밭의 채소들이 자라는 과정을 실제로 볼 수 있다면 아이에게 이만한 체험이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선착순으로 20팀을 모집하는 공고에 얼른 신청을 넣고 남편을 설득했다. 힘든 일을 싫어하는 남편이지만 이왕이면 같이 하고 싶었다. 가족이 다 같이 호미를 들고 밭에서 일하는 모습, 생각만 해도 좋다. 3월부터 10월까지 8번만 가면 된다고 남편에게 넌지시 얘기했다. 조금 주저했지만 별다른 얘기 없이 OK 했다. 다행이었지만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다. 1년에 8번이 아니라 1년 동안 내 땅을 갖게 되는 거였다. 8번은 교육 횟수였다.




3월 말, 처음 모여 밭을 만들었다. 2.5평의 내 땅을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흙을 쌓아 올리는 과정(두둑 만들기)이었다. 땅에 영양분이 필요하니 미리 흙에 퇴비를 섞어 만들어야 했다. 남편은 퇴비를 한 포대씩 어깨에 메고 옮겨 흙에 뿌린 후 삽으로 섞었다. 그런데 어라? 이 사람, 삽질을 잘한다. 퇴비를 옮기는 과정에서 냄새난다고 투덜투덜하더니 골고루 뿌리고 삽으로 흙을 섞고 갈퀴로 고르게 펴면서 두둑을 만드는 과정까지 혼자 다 했다. “왜 이렇게 삽질을 잘해?” 하고 물으니 “군대 갔다 왔잖아.”. 우리나라 군대가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구나. 그 이후로도 남편은 회사 갈 때 말고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텃밭에 같이 나갔다.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이 사람은 막상 일을 시키면 잘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이라 의욕이 앞선 우리는 봄 농사로 토마토, 가지, 고추, 상추, 시금치, 들깨, 당근, 감자 등 8 가지의 작물을 심었다. 텃밭 책에서 배운 대로 열매, 잎, 뿌리채소를 골고루 심어 봤다. 4월 초 씨를 뿌리고 나니 이젠 기다림의 시간. 싹이 올라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언제 싹이 올라오나, 언제 우리가 키운 걸 먹어볼 수 있나 잔뜩 기대를 하며 매주 텃밭을 갔다. 한 달이 지나자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두 달이 지나자 잎채소는 수확할 수 있었다. 우리 텃밭의 일등공신은 단연 상추였다. 어찌나 잘 자라는지. 일주일만 지나도 밭을 꽉 채운 상추를 똑 똑 딸 때면 기분이 좋았다. 우리 같은 막손도 텃밭을 할 수 있구나.


아이는 모든 과정을 체험처럼 여겼다. 자신의 손에 맞는 작은 목장갑을 손에 끼고 감자를 심고 물통에 물을 받아 뿌려 주었다. 당근을 솎아주며 잎은 이렇게 큰데 당근은 작다고 실망하기도 하고 바로 딴 토마토를 먹어보며 파는 거랑 맛이 똑같다고 신기해했다. 무당벌레를 옮겨 주며 잘 가라고 인사해주고, 거미를 보고 소리를 꺅 질렀다. 옆 텃밭에서 얻은 들깨꽃 튀김을 해 먹을 땐 세상 뿌듯했다. 그래, 이러려고 내가 텃밭 한 거지.


밭에 가면 재밌어는 했지만 늘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우린 왜 주말에 못 쉬냐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뿌린 씨앗을 거두어야 하는 것처럼 시작한 일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알려줬다. 사실 그건 나한테 한 말이기도 했다. 엄마도 좀 귀찮긴 해.


솔직히 주말마다 시간을 고 차로 30분을 가야 하는 것이 힘들어 여름 농사 끝나고 그만하고 싶었다. 도시에서 텃밭 하시는 분들은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직접 해보니 이해가 갔. 생각보다 시간이 필요하고 일이 많았다. 주말에 어디 놀러 가기라도 하면 밭에 들르지 않은 것에 마음에 걸렸. 잡초는 왜 그렇게 잘 자라는지. 장마철에는 갈 때마다 잡초가 채소보다 더 자라 있었다. 비가 많이 내려 잔뜩 젖은 밭은 덥고 축축했다. 한참 밭을 정리하고 땀범벅으로 차에 탈 때면 참 고생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올해 마무리는 잘 짓고 싶어서 가을 농사를 시작했다. 대신 품종을 대폭 줄여 무 하나에 올인! 무 하나만 잘 키워 겨울 내내 깍두기를 먹을 생각이다. 푸릇푸릇 잘 자라고 있는 무들을 바라보면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아,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