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new year를 외치며 새해를 맞이하며 만난 1~2월, 청소년기관에서의 이 시기는 전년도 사업을 정산하고 금년도 사업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실행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청소년활동 프로그램의 폭을 넓히기 위해 공모사업을 신청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10여 년 전만 해도 공모사업은 그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예산이 넉넉지 않을 경우, 사업비를 충당하기 위해 도전하곤 했던 선택사항의 업무였지만 언젠가부터 대한민국 대부분의 청소년기관이 서로 하나의 파이를 나눠먹기 위해 달려드는 공모사업 전쟁이 되어버렸다. 이 말인즉슨 청소년활동 예산이 부족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고 또 하나는 공모사업 선정을 청소년기관의 성과로 바라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나 또한 그렇게 부족한 예산을 받기 위해, 또는 성과를 내기 위해 매년 동료들과 공모사업에 도전하며 연초를 보내왔다. 국비, 도비, 시비 외에도 어느 단체와 기업 등을 가리지 않고 보조금을 어떻게든 받아내고야 말겠다고 밤을 새워 프로그램 계획서를 쓰기도 하고 마라톤 회의를 하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고생하며 만든 프로그램이 선정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그만큼 보상(성취감)을 받은 것 같아 다행이지만 모든 것이 원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있기도 해 맥이 빠지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공모사업 신청을 하고 난 이후 "선정돼도 문제고 안돼도 문제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말의 속 뜻은 선정이 되면 확실히 청소년활동의 좋은 사례를 우리 기관에서 펼칠 수 있으니 좋겠지만 그만큼 업무량이 늘어날 것이 짐짓 두렵다는 말이고 선정이 되지 않는다면 그동안의 수고로움을 누구에게도 보상받을 수 없으니 허탈감과 패배의식이 커져가니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매년 공모사업 시즌마다 우린 '선택과 집중'에 대해 고민하며 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 팀의 업무량에 덜 부담스러우면서도 청소년의 실제적 욕구에 잘 부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2022년 난 그동안 이런 고민을 해왔던 수련관에서 문화의집에서 자리를 옮기며 관리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자리와 역할이 바뀌었지만 공모사업에 대한 고민은 줄어들지 않았고 올해도 당연히 이 문제를 가지고 생각을 더해왔다.
경기도 공모사업은 신청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인사발령 이후 쉴 새 없이 휘몰아친 몇 가지 업무와 미팅이 정신 차릴 기회를 주지 않았다.(아니, 스스로 적응하느라 공고문 열람을 미룬 것이기도 하다.) 뒤이어 떠오른 여성가족부 청소년활동 공모사업은 충분히 도전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팀 내 회의도 하고 구상도 여러 일 해보았는데 마감 5일 전, 나는 그것마저 우리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신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결정하게 된 이유를 몇 글자 적어본다.
첫 번째는 청소년의 욕구를 아직 잘 모르겠다는 이유다. 우리 문화의집 직원은 나를 포함해서 4명인데 그중 1명은 행정담당자이고 나머지 3명 중 두 명은 이곳에 발령받은 지 이제 불과 두 달쯤 되었다. 업무의 숙련도와 적응 과정도 문제였고 무엇보다 지역의 상황과 청소년의 욕구를 미쳐 확인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전임자들의 인수인계와 전년도 사업의 결과 보고 등을 보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할 수야 있겠지만 억지를 부리며 사업을 만들다 탈이 날 것 같았다. 우선적으로 청소년 욕구조사의 시급함을 느꼈기에 지금은 그것을 확인하고 파악할 시간이라고 판단했다.
두 번째는 상황적으로 아직이라고 판단했다. 공모사업 신청 기간이 1~2월이 대부분이라 시기를 놓치면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 기관의 1~2월의 방향은 공모사업보다 지역밀착형, 마을공동체와의 연결이라고 여긴 것이다. 공모사업을 작성하다가 마을과의 연계가 늦어지는 것은 마을과 함께 활동을 펼치는 이곳의 생태계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더불어 연초에 불어닥치는 각종 요구자료와 보고서가 산적해 있어 까딱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을 보내다 2022년의 스타트 지점부터 과부하에 걸릴 것도 우려가 됐다. 공모사업 없이도 우리 선생님들은 야근을 하고 있었으니 더 큰 부담을 드릴 수 없었다.
세 번째는 바로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이유가 내겐 가장 크다) 두 번째 이유에서 언급한 마을공동체와의 연결이 우리 기관의 장점이다. 전국적으로도 알아주는 마을활동가분들을 동네를 산책하면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도 우리 기관에게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시간만 나면 동네로 나가 그들을 만나고 있다. 1월 한 달만 해도 지역 내 학교의 선생님들과 파출소장님, 동주민센터의 동장님과 관계자, 마을활동가들과 만났고 앞으로도 이러한 만남을 지속하려 한다. 짬을 내서 만나고 지나가다 만나서 인사하는 것을 자연스레 자주 하고 있는 것이다. 공모사업으로 얻어올 수 있는 혜택(사업비와 프로그램의 인정 등) 과는 다른 가치겠지만 마을 내 많은 분들과 함께 하면서 만들어 갈 청소년 프로그램을 기대하며 꿈꿀 수 있다는 대안이 있기에 공모사업을 당장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여러 이유가 돼먹지 않는 핑곗거리이고 스스로의 정당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모사업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것은 지극히 한시적이란 말을 덧붙여한다. 청소년의 욕구를 파악하고 마을과의 협업 포인트를 찾아내고 우리에게 그것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면, 그리고 공모사업의 기회가 그 타이밍에 다시 찾아온다면 밤을 새우던 주말을 반납하던 나는 도전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며칠 동안 공모사업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해서 지끈거렸던 머리가 이제 조금씩 맑아지는 것 같다. 제대로 된 목적도 없이 그저 공모사업 하나는 써야 할 것 같아 허우적거렸던 지난날의 나와 함께 고민해 줬던 우리 써니쌤에게 미안할 뿐이다. 다만 이 시기 우리가 고민했던 흔적들이 계속해서 켜켜이 쌓여나가 지역의 청소년에게 좋은 것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우리는 청소년활동으로 청소년을 만나는 청소년지도사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