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같은 재단 내에 청소년 문화의집 센터장님들과 회의를 했다. 회의의 내용은 문화의집마다 각기 다른 사업 운영 방식이나 혹은 함께 통일되어야 했던 문서의 내용들이었다. 2시간가량의 회의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식사를 하면서 기관별 분위기에 대해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던 시간이었다. 나는 직원들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 기관의 직원들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때 지도자들이 조금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활동을 펼쳐내기 위해 센터장들이 알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교육으로 담아 전하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현재 우리 기관에 있는 신입 직원을 대상으로 보고서를 첨삭 지도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타 기관 센터장님들은 직원 교육에 대해서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보고서 첨삭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사뭇 진지하게 내 얼굴을 보며 의견을 쏟아냈다. 다른 것도 아닌 보고서 첨삭은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하시며 말이다.
기관장의 의도와 달리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갑질로 인식할 수 있고 심하다면 직장 내 갑질로 신고될 수 있다고 했다. <직장 내 갑질> 나는 이 단어를 연간 들어야 할 필수 의무교육 또는 뉴스 보도를 통해서 들어본 적은 있으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래서 놀랐고 한동안 멍해졌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일까. 센터장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의 의견, 나의 생각들을 전달하는 것이 사업을 주도하고 진행해 나갈 담당자가 보았을 때 불편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이 더 자신의 생각을 강제하고 주입시키는 것이라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최근 그것으로 갑질 신고된 사례가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하셨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 없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난 그렇게 일을 배우고 익혀왔다. 입사 초반 나의 사업계획서에는 늘 빨간 줄이 있었고 문제를 지적했며 수정을 요구했다. 모두가 그렇게 교육을 받았던 상황이라 난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기에 그것이 맞는 줄 알았다.
게다가 난 이곳으로 발령받기 전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단순히 생각을 첨부하지 않기 위해 보고서 양식에 대해 공부했고 특히 사업계획서 상의 목적, 목표, 기대효과 등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교육자료로까지 만들며 연구했다. 그런데 여기선 안 된다니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난 이후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한참 동안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정말 잘못된 것인가, 그 방식이 과거와 왜 달라졌지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결론을 지은 건 다른 분들의 말처럼 내가 원했던 방식들이 그들에게는 혹은 내 의견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것이다, 과거에 연연하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나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버린 것이기도 했다. 즉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것이다. 보고서뿐만이 아닌 나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내 의견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선생님들의 주도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운영 방식이 일방적이지 않은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하며 생각을 정리한 이후, 나는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간 나눠서 선생님들과 함께 이 부분에 대해 대화를 시도했다. 내가 지금까지 잘못했던 것이 혹시나 있으면 사과드리고 또 운영 방식에 대해서 일방적이었다면 그러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함께 하면서 말이다.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혹은 지금은 틀렸지만 그때는 맞았던 것들은 아주 많을 것이다. 그중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바로 끊임없이 생동하는 삶의 현장에서 영원한 것은 절대 없다는 사실뿐일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고 있다면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말한 스티븐 코비의 말처럼 리더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점검하며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며 경험하고 고민하며 변화해야 할 것이다. 이제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나의 이 시간들이 점차 나은 것으로, 보다 좋은 곳으로 나아가길 바라본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 선생님들과의 유기적인 관계와 기관의 발전 방향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 밤, 그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바라보며 이곳에 생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