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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Z Mar 03. 2023

너는 누구?


나뭇잎 위에 꼬물꼬물 초록색 애벌레가 한 마리 기어간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와작 와그작거리며 제 몸보다 큰 잎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오동통 살이 오른 벌레가 분비물로 고치를 만들어 그 안에 머무른다. 한참을 기약 없이 보내다가 고치에 금이 간다. 등이 터지고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안쪽에는 고운 파란색과 검은색이 만나 오묘한 무늬가 바깥쪽에는 뱀 눈처럼 화려한 무늬가 펼쳐진다. 얇고 넓은 날개로 팔랑팔랑 난다. 자유롭게 개나리, 벚꽃, 라일락 등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닌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았다. 집에서 부모님께 칭찬받고자 열심히 공부하고 맏이로 동생을 돌봤다. 학교에서, 교회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순종하려고 노력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발버둥 쳤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내 삶에 주인은 남이었다. 다른 이가 원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남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와장창 나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깨지고 나서 인정했다. 못한다.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 그 이후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할 때 보람을 느끼는지, 어디에 의미를 두는지.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한다. 가고 싶으면 어디든 찾아 떠난다. 새로운 경험을 즐긴다.

 

 

내가 동물이 되면 어떤 동물일까를 생각하면서 머리가 복잡했다. 사자, 호랑이, 여우, 고양이, 나무늘보…… 어떤 것도 내 마음을 확 끌지 않았다. 고민은 더해졌다. 그러던 중 나비가 떠올랐다. 나의 느긋함, 조심스러움, 눈웃음, 예민함, 게으름 등 한 조각씩 생각한다면 위에서 말한 동물들을 통해 소개할 수 있다. 하지만 나비라면 내 삶을 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를 소개하기에 적합한 곤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락팔락 나비가 내 마음에 날아들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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