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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가을바람 May 23. 2022

담북장 익는 계절

맛과 냄새로 기억하는 음식

  담북장.

 먹는 사람은 참 편하고 쉬운 음식이다.

푼에 나물 넣고 담북장 넣고 쓱쓱 비벼 양껏 먹으면 되니 마음 편하고 속 편한 음식이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은 참 번거롭고 어려운 음식이다.

서둘러서도 안 되고, 똑딱하고 쉽게 만들어지는 음식도 아니다.

시간이 만들어 주는 음식이다.



 우리 집은 가족이 많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엄마, 나와 세 동생들, 

여덟 명에 가끔 들르는 작은 아버지 댁 네 명, 그리고 작은 삼촌.

만두를 빚어도 기본이 100개였고 김장을 해도 150포기, 200포기는 기본이었다.

 담북장 비빔밥이 완성되려면 김장부터 해야 한다.

엄마 혼자 200포기를 할 수 없으니 온 가족이 작은 손이라도 보태야 했다.

그리고 그때는 김장 품앗이를 했다.

우리 집에서 김장을 하면 이웃 아주머니가 오셔서 해 주시고, 그 댁 김장할 때 엄마가 가서 도와 드렸다.

그런 날에는 맛보라고 몇 포기 가지고 오는 남의 집 김치 맛도 보게 된다.

하루라도 묵은 김치와 오늘 새로 한 김치 맛은 또 다르니 그 또한 재미난 일 중 하나였다.

우리 엄마는 제법 음식 솜씨가 좋았다.

김치뿐 아니라 명절 음식도 어쩔 수 없이 손이 커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맛을 보게 했다.



 어느 겨울밤이었다.

날씨도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심상치 않은 날이었다.

이웃의 오빠가 그 댁 노 할머니께서 며칠 식사를 제대로 못 하시다가 언 밤에 우리 엄마 김장 김치가 드시고 싶다고 하셨단다.

우리 집에는 김치, 과일, 고기 등 식재료를 넣어 놓는 김치 냉장고 구실을 하는 창고가 있었다.

가지고 온 김치통에 한가득 담아 총총히 들여보냈다.

그 밤에 그 김치에 맛나게 밥 한 술 뜨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틀 후에 노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담북장도 쉬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날 좋은 날 콩 한 말을 조금씩 펼쳐 놓고 쭉정이와 썩은 콩을 하나하나 골라내야 한다.

제대로 골라내지 않으면 나중에 쓴 맛이 힌다.

콩을 삶아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 씌워 띄워야 한다.

어릴 때에는 그 꿉꿉하고 쿰쿰한 냄새가 싫었다.

밖에 나가도 나한테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담북장을 띄우지 않는 상쾌한 집안이 그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냄새가 너무나 그립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 냄새가 진동하는 방 안에서 한숨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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