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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가을바람 May 14. 2022

배앓이도 멈추는 닭개장

엄마손은 약손

 배에서 계속 부글부글 신호가 왔다.

조금 전에 약을 먹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여전히 배 속에서 난리가 났다.

첫째, 둘째 날은 괜찮았는데 셋째 날 낮부터 이상했다.

먹는 것도 겁나게 배앓이가 멈추지 않았다.

꿈꾸던 제주도로의 졸업 여행 마지막 날들이 엉망 되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좋은 것을 보는데도 하나도 신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서 닭개장을 끓였다.

아버지도 달게 드시고 맛있는 추억의 음식, 엄마 손맛을 닮은 음식이었다.)



 어려서부터 배앓이를 자주 했다.

 "엄마 손이 약손이다."

엄마가 배를 쓸어 주면 정말 거짓말처럼 나았다.

큰 외숙모 댁에 갔을 때도 하필 큰 외삼촌 제사 후 음복하고 탈이 나기도 했다.

큰 외삼촌의 정확한 생사는 모르나 전사 통지서의 날짜로 제사를 지냈다.

큰 외숙모는 부군의 제사 음식에 탈이 난 조카딸 배를 쓸어 주어야 했다.

 "큰 아지매 손은 약손이다."



 여동생 둘이 차례로 결혼하고 제일 아쉬운 순간이 있다.

 아버지와 남동생 밥 챙기느라 국, 물 시중에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다 어느 날은 한밤중에 체기가 왔다.

엄지와 검지 사이를 멍이 들도록 눌러도 쉬이 가라앉지 않고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게 누가 등 한번 두드려주었으면 좋을 가 있다,

여동생들이 있을 때에는 밤새 등 두드려주고 배 쓸어 주었는데 혼자서 꼭 죽을 것 같이 아프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가 깨면 살았구나 싶었다.




 공항 밖과 하늘은 빗줄기가 세지고 비행기 시간은 자꾸 밀려나고 배는 여전히 야단이었다.

비행기에 탈 사람은 많아지는데 모두 함께 탈 수 없어서 동네별로 나누었다.

 출발 시간이 밤 10시가 넘어서 귀가 시간이 늦어지니 안전을 위해 같은 동네에 사는 학생들끼리 모여 가기 위함이었다.



 저기 앞에 우리 집이 보이고 열두 시를 지났는데도 주방 쪽 불이 켜져 있었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에 현관문이 먼저 열렸다.

 "왔나?"

 엄마의 반가운 목소리에 투정이 나왔다.

 "엄마, 나 배 아파!"

 "어야노, 닭개장 낋있는데.."

"닭개장 먹을 거야."

 "배 아프다문서."

뜨겁고 뻘건 닭개장 한 그릇에 밥까지 말아먹고 나니 정말 집에 온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배앓이도 말끔히 나았다.

 사실 아저 멀리 우리 집이 보일 때부터 이미 괜찮았던 것 같다.

아마도 닭개장이 살살 배를 쓸어 준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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