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책을 먼저 좋아해야 할까,

아이 스스로를 먼저 좋아해야 할까?

by 가을꽃나무

요즘 들어 ‘책육아’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유아 책을 펼치면 늘 따뜻하고 친절한 문장들로 가득하다.

'사과가 데굴데굴 굴러가요. 뽀득뽀득 씻어요. 아삭아삭 맛있어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내용을 꼭 책으로 보여줘야 할까?

직접 해보면 되는 일 아닌가?


직접 떨어진 사과를 줍고, 씻고, 한입 베어무는 순간.

짧은 놀이가 되고 이미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다 겪는다.

책은 그 경험을 다시 언어로 묶어주는 도구일 뿐, 출발점은 아니다.


요즘 부모교육서를 보면 대부분 ‘책을 중심에 둔 육아법’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어줘야 하고, 책과 친해져야 하고, 책으로 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순서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은 아이의 세계를 넓히는 도구이지, 세상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아이의 삶이 먼저고, 책은 그 삶을 번역해 주는 보조 언어여야 한다.


솔이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다.

무언가를 보고, 만지고, 흥미를 느끼는 순간에 배움이 가장 깊게 자리한다.

그런 경험이 충분히 쌓인 뒤라면, 책은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가 된다.

그러니 책육아란 ‘책을 중심으로 한 교육’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배움’이어야 하지 않을까.


도서관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차라리 책과 친하게 하고 싶다면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 체험을 시키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다양한 경험들이야말로 진짜 ‘현장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배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육아서나 부모교육서가 절대 써주지 못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책육아 담론은 ‘책은 무조건 좋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삶의 순서가 뒤집힌다.

경험 → 느낌 → 언어 → 생각 → 표현이 자연스러운 발달의 흐름이지만,

책 중심 육아에서는 언어가 경험보다 앞서버린다.


솔이는 사과를 씻고, 물을 튀기며 놀고, 냄새를 맡고, 베어문다.

유아책 속 이야기의 전 과정을

이미 몸으로 겪고 있다.

굳이 책 속의 ‘사과가 데굴데굴 굴러갔어요’를 또 읽어야 할까.

그건 아이에게 배움의 반복이 아니라, 감각의 단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언니가 물었다.

“책은 매일 읽어주니? 읽어줘야지, 왜 안 읽어줘?”

나는 그저 웃었다.

설명해도 결국 논쟁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언니는 책으로 삶의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이다.

책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받고, 다시 일어선 경험이 있다.

그건 성인으로서의 독서다.

하지만 아이는 다르다.

아이는 지금, 세상을 처음 배우는 중이다.

삶 자체가 이미 첫 페이지의 시작이 아닐까!

책은 그 삶을 번역해 주는 보조 언어면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모순은,

현대 육아의 중심을 건드리는 질문이라는 것을.

‘책 중심의 육아’와 ‘경험 중심의 배움’의 차이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다.

그건 인간 발달의 순서에 관한 문제라는 생각이 다.


나는 믿고 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책이 아니라 삶을 통한 배움이다.

책은 아이의 세계를 넓히는 도구일 뿐,

결코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부모교육서는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을 말하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아이 스스로 삶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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